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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라 Aug 11. 2022

Work #3

1등이 아니어도 평균이 좋으면, 1등 할 수 있다.

3주 간 온오프라인을 오가며 신입사원 입문교육을 들었다. “일생에 한 번뿐인, 어쩌면 한 번도 없을지 모르는” 교육이었다. 교육 종료 후 11일의 기나긴 휴가를 가졌다. 덕분에 신입사원으로서 6개월과 입문과정에서 얻은 인사이트를 찬찬히 들여다볼 여유가 있었다.


여러 글에 걸쳐서 인사이트를 풀어보려고 한다. 이번 주제는 사람관계다. 운 좋게도 기업, 특히 제조업에서 수시 채용된 신입사원 연수에 꽤 많은 인원이 모였다. 나를 포함하여 70~80명에 달하는 인원이었다. 혹자는 많다고 느끼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한 번에 그 인원과 다 친해질 수 있는 기회라고 보면, 결코 적지 않은 수다. 3주만에 70~80명을 만나고 친해질 수 있는 시간이 살면서 얼마나 되겠는가?

1등이 아니어도 평균이 좋으면, 1등 할 수 있다.




반전은 언제나 짜릿하다. 솔직히 우리 팀이 하위권이라고 생각했다. 1주차 과정은 주로 회사의 브랜드 가치와 역사를 배운다. 그리고 팀워크를 높이기 위한 단체활동을 한다. 우리 팀에는 주요 계열사 소속인 사람이 없었고 체육에 특출난 팀워크를 발휘하기도 어려웠다. 더 흥미로운 사실은 우리 팀이 어떤 기준을 대도 정확히 반으로 나뉜다는 점이었다. MBTI E와 I도, S와 N도 다 3명 따로, 3명 따로 이렇게 갈라졌다. 오죽하면 팀명이 반반이었을까. (혹자는 외모가 반반하다는 의미까지 더해서 해석했다.)


반전은 과정 후반부부터였다. 우리 회사와 관련된 신문 기사를 읽고 우리 회사 조직문화를 고안하는 과제가 있었다. 교육팀에 있으면서 여기저기서 들었던 계열사 복리후생 제도를 고민하고 있었다. 그때 한 동기(우리는 그를 꿀벌박사라고 부른다. 왜인지는 차차 뒤에 나온다.)가 말했다. “로또 어때?” 그 동기 한 마디에 우리 팀원들의 아이디어가 차곡차곡 쌓였다. 결과적으로 ‘연말에 시가총액의 5%에 직원들의 참가비 5,000원씩을 합산한 전체 금액으로 1등부터 3등까지 실시간 랜덤 추첨 로또’ 아이디어가 나왔다. 단순히 운에 기댄다고 하기에 시가총액을 높여야 하므로 직원들의 사기도 올릴 수 있는 기회였다. (여기서 MZ세대 신입사원은 확실히 급여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면, 잠깐 멈추어서 내가 당첨자라고 생각해보자. 꽤 좋은 복지일 수 있다.)


13개의 팀이 하나씩 아이디어를 냈고, 카카오톡 투표로 최종 아이디어를 결정했다. 재밌게도 “투표 마무리합니다!” 라고 선언되기 전까지, 투표 결과는 매우 빠르게 계속 바뀌었다. 눈치게임처럼 내 표를 이리저리 옮긴 것이었다. 그런데 웬걸, 운 좋게도 선언의 순간에 우리 조가 1등이었다. 더 웃긴 건 바로 1초도 지나지 않아 다른 조가 1등으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행운의 여신이 우리 편에 선 순간이자 우리 조도 뭔가 잘 될 수 있다는 기회를 엿본 날이었다.


동기 모여라 활동이 이어졌다. 우리 동기가 직접 레크레이션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진행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재밌었지만, 인물퀴즈, 꼬깔콘 쓰고 물건 찾기, 노래 맞히기, 헤쳐 모여 게임을 동기들끼리 하면서 재미가 없을 수가 없었다. 우리 팀과 다른 팀이 큰 하나의 팀을 이뤄서 13개의 팀이 4개 팀으로 묶였다. 역시 인물퀴즈 1등, 꼬깔콘 1등, 노래 퀴즈 1등, 헤쳐 모여 1등은 다 다른 팀에서 나왔다. 그렇다고 우리가 노력을 안 했나? 그건 결코 아니었다.


종합 결과는 모든 게임의 점수를 합산해서 나왔다. 3등부터 불리는데, 2등까지 우리 팀 이름이 나오지 않을 때 조금은 알 수 있었다. ‘아, 우리 팀이 1등이구나.’ 실제로 우리 팀은 1등이었다. 우린 모든 게임에서 2등 혹은 3등이었다. 베스트 플레이어는 아니지만, 이것저것 잘하는 팀이었던 것이다. 그 덕에 1등이 속한 팀이 종합 결과 3등 안에 들지 못했을지 모르지만, 우린 기분 좋게 활동을 마쳤다.


하이라이트는 팀 프로젝트였다. 3주 내내 전사 신사업을 제안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디자인씽킹, 사업 기획 등 다양한 수업을 들었다. 우리 팀은 초반부터 꽤 열심히 온오프라인을 넘나들며 회의했다. 그런데도 프로젝트 주제를 2번이나 바꿔야 했다. 우리 내부적으로도 ‘그건 안돼’ 한 주제가 많았다. 최종적으로 정한 주제가 2번 엎어진 것이다. 한 치의 거짓 없이, 주제를 계속 바꿔야 할 때 우리 프로젝트는 진전이 없어보였다.


감사하게도 한 동기가 로봇꿀벌 아이디어를 냈다. 처음 그 아이디어를 들었을 때, 다들 의아했다. 이해가 안 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러 주제를 알아보고 피드백 받으면서 깨달았다. 우리가 이 주제를 해야 하고, 할 수 있겠다는 것을! 결국 우리 주제는 로보비(로봇꿀벌 이름이다.)가 되었다.


팀 프로젝트를 하면서 알았다. 우린 주요 계열사에서 오지도 않았고, 체육 활동 1등도 아니다. 하지만 조합이 정말 대단했다. 자료를 많이 알고 아이디어가 신선한 동기(꿀벌 아이디어를 낸 그 동기가 꿀벌박사다.), 어렵기만한 숫자 싸움인 회계 처리를 해낸 동기, 문이과를 넘나들며 필요한 정보를 적재적소에 넣는 동기, 힘들 법한 시간을 재밌게 만들어주는 동기, 리더로서 팀원들을 알뜰살뜰 챙기는 동기가 우리 팀원이었다. 반반의 특성을 나눈 우리 팀원들 덕분에 다양한 역할(회계, 기술, ESG 등,,,)이 필요했던 프로젝트를 끝까지 훌륭하게 완수할 수 있었다.


우리 모두 각자의 분야에서 1등인지는 장담할 수 없다. 하지만 우리 합은 그야말로 1등이었다. 우리 팀 프로젝트 발표를 마쳤을 때, 다른 팀원들로부터 많은 칭찬을 들었다. 그 칭찬을 들으면서 솔직히 우리 팀이 하위권이라고 생각한 게 정반대로 뒤집혔다.


우리 조는 왕관 모양을 닮은 조 이름(S12와 �, 닮지 않았나?)답게 전체 과정 프로젝트 1등을 차지했다. 심지어 우수 사원, 최우수 사원도 우리 조원이었다.




한창 어릴 때, 높은 대학교일수록 전과목 성적을 다 보는 이유가 궁금했다. 한 분야 전문가가 제일 좋은 거 아닌가?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학부 입시 때 전체 성적이 우수한 학생을 선호하는 건 마치 어릴 때 부모님이 미술, 피아노, 수학, 영어를 골고루 시키는 이유와 같을지 모른다. 아직 전문 분야가 확립되지 않은 때에 가장 중요한 건 열심히 하려는 의지와 무엇이든 배우려는 호기심이다. 그 두 가지가 결합되면 한 분야에서 1등을 하지 못할 지라도, 그 평균은 1등에 귀결된다.


이번 신입사원 입문과정은 내게 ‘지금 내게 뭐든 열심히 하려는 의지와 배우려는 호기심이 있나?’를 검증하는 시간이었다. 그리고 지난 나의 성과들(신설 고등학교에서 서울대에 가고, 운 좋게! 브런치 작가가 한 번에 되고, 비교적 어린 나이에 유의미한 일 경험과 선배들이 많고, 입사 후 처음 들은 교육과정에서도 1등을 한 경험 등 뭐라 이어지지도 않고 설명하기도 어려운 일들이 많았다.)이 1등이 아니어도 우수했던 이유 또한 그 의지와 호기심 덕분이었음을 알게 된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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