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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라 Aug 29. 2022

Work #5

사람들은 실제로 만났을 때 최고의 시너지를 낸다.

2020년은 나의 삶을 통째로 바꾸었다. 첫 휴학이었다. 15년간 머물던 학교에서 잠시 멀어진 건 처음이었다. 같은 반 친구들이 아닌 사람들을 만나는 건 예상한 것 이상으로 낯설었다. 같은 학교에 다른 반 친구를 만나는 것과 완전히 다른 차원이었다. 나는 휴학생 신분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인턴으로 일했다. 오롯이 나 자신으로,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정의되곤 했다. 그저 학교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학생이 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노력한 만큼 내가 달라질 수 있었다.


변곡점은 코로나였다. 전염병 자체의 이슈는 아니었다. 만나는 사람의 집단과 만나는 방법이 급격하게 변하고 있었다. 학교는 너무나도 당연하게 같은 공간에서, 정해진 사람들을 만나는 환경이었다. 나의 노력 여부와 상관없이 일정 시간이 지나면 서로를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코로나는 그 환경을 싹 밀어버리고 새로운 세상을 열기 시작했다. 직접 상대를 만나러 가는 건 실례인 세상. 온라인 환경에서 나의 관심사와 일 등으로 사람을 만나는 세상. 내가 온라인 환경에 얼마나 적응하려고 노력하는지, 그 환경에서 얼마나 다양한 사람들에게 다가가는지가 코로나 이후 세계의 인간관계를 좌우했다.


편리함을 경험한 사람은 그 전으로 돌아가기 어렵다고 했던가. 자고 일어난 자리에서 그대로 일하고 회의하는 일상은 상상 이상으로 편했다. 고백하자면, ‘아, 그냥 집에서 수업 듣고 싶다.’ 라고 불평하듯이 생각한 거지, 실제로 그렇게 되면 나의 삶이 얼마나 달라질지까지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하나둘씩 많은 사람들이 감히 상상도 못한 일상에 빠른 속도로 적응했다.


분명히 변하지 않는 일상은 남아있었다. 코로나가 불러온 불안에도 불구하고, 동료들의 의견이 심도 있게 오가야 하는 회의는 어떻게 해서든 오프라인으로 진행했다. 코로나 1년 차 때라, 이 회의가 제대로 굴러가려면 우리는 무조건 만나야 한다는 직감을 느꼈을 뿐이었다. 조금 더 속도감 있고, 더 많은 이야기가 오갈 수 있는 게 오프라인이라고 생각했다. 점차 시간이 지나고 이제 코로나 3년 차다. 이번 입문과정은 코로나 연장선에 있고, 우리 모두 코로나 이후 삶에 적응된 상태에서 진행되었다. 그래서 더욱 분명하게 우리가 직접 만나야 하는 시간과 그 효과를 느꼈다.




이번 과정은 전무후무하다. 1주차는 오프라인, 2주차는 온라인, 3주차는 오프라인이었다. 우여곡절이 물론 많았지만, 이번 과정을 통해 말로만 읽고 보던 ‘오프라인의 효과’를 몸소 체험했다. 1주차는 이론과 암기할 지식이 많은 과정이었다. 특히, 새로운 사람들과 친해지고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만으로도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서로 투자해야 했다. 그래서 더 힘들었냐고?


아니다. 간단한 스킬, 게임 위주였던 2주차 온라인 수업이 훨씬 더 체력적으로 힘들었다. 여러 학자가 말한 것과 같이, 온라인 화면이 집중시간을 단축시키고 피로도를 금세 높여서였을까? 교육 진행자가 아닌 참여자로서 느끼기에 그건 충분한 원인이라고 볼 수 없었다. 우리는 피곤하거나 힘들면 그 감정을 공유한다. 어쩌면 한 공간에 있는 순간에서 은밀하게 스며드는 ‘함께하는 기운’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저 나와 똑같은 상황을 공유하고 있는 사람이 가까이에 있는 것만으로도 힘이 아닌 위로가 된다. 특히, 그 상황이 힘들다면 그 위로는 더 강해진다.


웃픈 일화도 있었다. 갑작스럽게 온라인으로 전환되면서 모든 회의와 프로젝트도 온라인으로 전환되었다. 온라인 회의를 하면 어느샌가 잠과 사투를 벌이는 동료가 있어도 서로 챙겨주기 어려웠다. 설령 다 같이 깨어있어도 귀가 시간이 없기 때문에 회의 시간이 늘어나기 일쑤다. 오프라인이었다면 밤 11시까지 모여서 보드게임을 하기 위해 회의를 일찍 끝냈다. 때로는 다 같이 매점에 가서 과자와 아이스크림, 떡볶이를 사와서 먹으며 쉬는 시간을 보냈다.


연속은 자연스럽지만, 오히려 분리가 힘들다. 온라인으로 과정을 듣는 동안 앉은 자리에서 새벽까지 업무 창을 켜도 ‘집에 가야 한다!’는 경종이 머릿속에서 울리지 않았다. 웬만해서 집에 가야 하는 환경이 아니라면 ‘이만하면 됐다!’는 말, 혹은 작은 생각조차 안 들기 마련이다. 자고 먹고 일하는 상황에 시간과 공간적 경계선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되레, 우리가 ‘놀고 있다’고 생각한 게임과 간식 시간은 적절한 시공간적 변환점을 찍어준다. 심지어 놀기 전까지 ‘다 같이’ 모여서 열심히 했으니까 이제 충분히 놀 자격이 있다고 느끼게까지 해준다.

오프라인은 온라인에서 무시되는 가치를 제공한다. 서로에게 전해지는 위로, 자연스러운 분리, 그로 인한 적절한 집중도와 만족감까지.


두 환경의 차이를 극명하게 느낀 건 팀 프로젝트를 할 때였다. 온라인 회의 때 동료가 말하는 와중에 집중해 듣지 못하고 인터넷 검색창에 머릿속에 떠오르는 의문을 해결하기 바빴다. 서칭과 대화가 계속 되고 있었다. 그 어느 하나 제대로 완수하지 못한 채로. 그래서인지 온라인으로 회의를 하면 어색하게 조성되는 침묵이 있다. 상대가 방금 무슨 말을 했는지 제대로 못 들었거나, 지금 상대가 어떤 기분으로 말하는지 모호하거나, 우리 모두의 생각은 어디서 모이고 어디서 흩어지고 있는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오프라인으로 과정이 전환되고 나서 팀 프로젝트를 본격적으로 준비하기 시작했다. 온라인에서 아이데이션을 거쳐서 이제는 직접 조사하고 결과물을 하나씩 만들어갔다. 똑같이 모두가 컴퓨터를 붙들고 있어야 했지만, 온라인 회의 때와 사뭇 다른 집중도를 느꼈다. 서로가 하는 말에 집중하게 되고, 진행과정에서 자신이 맡은 역할이 뚜렷하게 드러났다. 서로가 없으면 완전한 결과물을 낼 수 없음을 자연스럽게 이해했다. 동시에 동료의 피곤과 만족을 즉각적으로 알아차렸다. 이 모든 조합 덕분에 프로젝트를 무사히 마무리했고, 입문과정도 끝을 맺었다.




모든 일이 하나의 답만 존재하는 게 아니듯이, 오프라인이 항상 옳을 수도 없다. 온라인 환경이 존재한 덕분에, 거리에 상관없이 강의를 듣고 한정된 공간을 넘어서 방탈출 게임을 할 수 있었다. 이제 온라인 도움 없이 그 어떤 것도 제대로 기능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 정도다. 중요한 건 '최고의 시너지를 낼 수 있는 환경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이다. 기본적으로 오프라인이 온라인보다 시너지를 발휘하기에 용이한 건 사실이다. 하지만 코로나와 같이 공동체가 집단적 위험에 빠질 상황이라면? 마치 트롤리 문제처럼 여러 가지 조건 속에서 오프라인과 온라인은 앞으로 계속해서 뗄 수 없는 관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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