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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에세이

우리 둘만으로 온전한 세상

by 보라

꽃이 없어도 살 수 있다면

꽃이 없는 과일은 어떻게 살아남았을까? 무화과(無花果)는 이름 그대로 ‘꽃이 없는 과일’이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초등학교 과학 수업 때 식물은 벌레가 꽃가루를 옮겨주거나 바람에 꽃가루를 날려보내서 번식한다고 배웠다. 그런데 꽃부터 없으면 번식이 안 되는 게 아닌가?


“꽃은 없고 열매만 열린다고 하여 무화과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실은 무화과의 꽃받침이 비대해지며 열매 껍질 속으로 수술이 숨겨지게 된 것이다.”(색이름 78쪽) 이렇게 무화과색을 설명한 구절에서 아-하! 모먼트가 있었다. 꽃이 없던 게 아니라 ‘숨은’ 것이었다. 그럼 꽃가루가 바람에 날리기는 어렵겠지만 벌레가 꽃가루를 옮겨줄 수는 있겠네! 여기서 호기심이 피어나 무화과가 살아가는 여정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무화과는 매우 독특하게 살아간다. 무화과 바깥에서는 꽃이 전혀 안 보여서 벌, 새, 바람은 그 꽃에 가지 못한다. 무화과 꽃으로 가는 입구는 작은 구멍 하나뿐이다. 그 사이로 기어들어가야만 숨겨진 꽃을 발견할 수 있다. 틈으로 파고드는 유일한 생명체는 무화과벌이다. 마치 악어와 악어새처럼 서로가 없으면 못 사는 사이지 않은가!





생과 사의 메이트가 되면

둘은 모든 생(生)과 사(死)를 함께 한다. 무화과벌은 꽃가루를 몸에 묻히러 들어가서 무화과에 알을 낳는다. 이 벌의 운명은 두 갈래로 나뉜다. 하나는 무화과 속에서 죽는다. 다른 하나는 몸에 묻힌 꽃가루를 다른 무화과로 옮긴다. 수정과 번식이 한 차례 지나면, 새로운 삶이 시작된다. 무화과는 자기 자신 안에서 벌의 알을 키운다. 벌의 유충은 꽃 안에서 자라고 성체가 되면 꽃가루를 몸에 잔뜩 묻힌 채 무화과 밖으로 나간다. 다시 벌의 운명은 선택의 기로에 놓이고, 이 과정은 먼 옛날부터 반복되었다.


놀라운 건 무화과 종마다 딱 한 종의 무화과벌만이 들어간다는 사실이다. 아무 벌이나 무화과 안에 들어갈 수 없다. 무화과는 수분해줄 누군가가 필요했고, 그가 오래 살아남도록 그의 자손을 돌보기로 했다. 무화과벌은 알을 낳고 키울 장소가 필요했고, 그 장소가 오래 유지되도록 알을 낳으면 자신을 바치기로 했다. 무려 수천만 년에 걸쳐 단 하나의 평생의 단짝과 손발을 맞춰온 셈이다.


오래 우리가 함께 하면

과학계는 ‘공진화’로 둘의 관계를 설명한다. 공진화는 두 생물종이 서로에게 의존하며 진화하는 현상이다. 쉽게 말하면, ‘난 너 없이는 못 살아’ 하는 사이다. 재밌는 건, 악어와 악어새는 공진화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저 그 둘은 ‘공생’ 관계이지, 공진화는 아니다. 공생은 ‘지금’ 서로 밀접하게 상호작용하는 관계를, 공진화는 ‘오랜 시간에 걸쳐’ 서로에게 영향을 주며 함께 진화해온 관계다. 장시간 진득해진 관계는 더 이상 둘이 아니다. 상대에 맞춰 나를 바꾸기 때문이다. 내 몸을, 삶의 여정을, 머나먼 내 자손을 내가 아닌 너에게 맞춘다. 그래야 내가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오래 같이 살며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그에 따른 변화가 일어나면 공진화다. 핵심은 관계의 깊이가 아니라 ‘관계가 서로를 어떻게 변화시켰는가’이다. 또 한 번의 아-하! 모먼트가 찾아왔다. 연애와 결혼의 경계선에 대한 고민의 답이 어렴풋이 보였다.


연애와 결혼 그 사이에서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 친구들이 많은 나이, 하나둘씩 제 짝을 찾아가는 친구들이 생겼다. 그들을 보며 ‘연애에서 결혼으로 넘어가는 경계선은 어디일까?’ 고민했다. 결혼을 앞둔 친구들에게 이 질문을 물으면 하나같이 같은 답을 주었다.

얘(상대)가 없는 삶이 상상이 잘 안 되더라고.


이 말을 들을 당시에는 그저 예비 신혼부부들은 행복에 젖어 하는 달큰한 말인 줄 알았다. 그런데 웬걸, 무화과로 글을 쓰며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이해됐다.


뜨거운 사랑을 해도 결혼하지 않는 커플이 있다. 지금은 그들의 사랑이 한없이 깊을지 모른다. 그 관계가 나를, 상대를, 우리를 바꾸지 못하면, 서로 없어도 각자 잘 살 수 있다. 반면, 잘 만나는지도 모르다가 갑자기 결혼 소식을 알리는 커플이 있다. “다른 사람이랑 노는 것보다 이 사람이랑 노는 게 제일 재밌고 편해.”, “전에 난 한 번도 책이란 걸 거들떠보지도 않았는데 이 사람이랑 만나면서 책장이 그득해졌어.”, “퇴근 후나 주말에 침대랑 딱 붙어있는 게 그렇게 좋았는데 이젠 시간만 나면 러닝 뛰어.” 이런 말을 들으면 이제 번뜩 생각날 것 같다. ‘아, 얘네 안 헤어지고 결혼하겠구나.’


무화과 덕분에 어떤 관계가 ‘불가분한 관계’인지 가름하는 노하우를 얻었다. “우리 관계는 우리를 얼마나 변화시켰을까?” 라는 질문을 지금이 아니라 ‘장기적인 관점’에서 답해보는 것이다. 그 결론이 우리 둘만으로도 세상이 온전하다는 판단이라면, 나는 변화된 나에 만족하며 남은 내 모든 것을 기꺼이 우리에게 쏟아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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