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마음과 사랑하는 마음이 헷갈릴 때는 지났다
"나 인스타360 안 사기로 했어."
"왜?"
"지금은 경험, 자기관리, 취향에 조금 더 투자할래."
"그래!"
일요일 아침, 카메라를 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실제로 사지 않았다. 하루 동안 고민이 물거품이 되지 않도록 내 다짐을 그에게 전했다. 그는 순순히 내 절약을 응원했다. 가격, 성능, 할인 이벤트까지 열심히 알아봤는데도 왜 사지 않느냐 되묻지 않는 그가 되레 이상했다. 그 정도로 인스타360을 사려는 욕망이 내 안에 들끓고 있었는데, 그는 단 한 번의 재고조차 권하지 않았다.
그날 밤, 그와 만났다. 시원한 밤 공기를 가르며 러닝할 생각만으로도 발걸음이 가벼웠다. 그가 날 보자마자 웃는 얼굴로 말했다.
"나 카메라 샀어! 오늘 아침에 샀는데 오늘 바로 왔더라!"
"대박! 근데, 오늘 만약 러닝을 안 했으면, 일주일 동안 이걸 얘기 안 하려고 했어?"
"응, 꾹 참았다가 일주일 뒤에 얘기했겠지?"
장난스레 웃는 얼굴에 침을 못 뱉는다고 했던가. 카메라가 담긴, 포장이 그대로인 박스를 내게 내밀며 그는 조잘조잘 떠들었다. 괌에서 액션 카메라로 찍었던 영상을 다시 보느냐 물으며 그 영상을 찍어서 기록만 남기는 건 조금 아까울 수 있다고 얘기했던 그다. 한편, 기록을 편집해서 콘텐츠로 아카이빙해두거나 누군가 볼 수 있도록 업로드하면 그건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그랬던 그는 내가 하루 동안 '사지 말자'고 마음을 굳힐 때 '내가 편집을 해볼까?'라고 생각했고 50%나 할인하는 카메라를 구입했다.
솔직히 말한 것보다 훨씬 고마웠다. 나의 사고 싶은 마음을 알았지만 보채지 않았던 것. 기록을 좋아하는 나에게 편집해야 된다고 밀어붙이지 않은 것. 되레 내가 하고 싶은 걸 더 잘하도록 응원해준 것. 그 하나하나가 말 한 마디마다 느껴졌다. 나였다면 "카메라를 살 거면, 편집하겠다고 약속해!"라며 그가 그 물건과 행동을 책임지게 했을 것 같았다. 그런데 그는 여러 질문을 하고, 내게 생각하도록 하고, 내 우선순위를 알게 하고, 그렇게 다 하고 난 다음에야 내가 하고 싶은 걸 여념 없이 지원해주었다.
한편, 부담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50% 할인이었다고 해도 결코 작은 돈이 아니었다. 올해 꽤 여러 번 우리는 돈을 아껴보자 다짐했다. 그런데 그는 단번에 샀고, 받은 그대로 내게 건넸다. 우리가 여행 다닐 때, 놀러 다닐 때, 스포츠할 때 자주 쓰자는 말과 함께. 그리고 나의 이번 여행에서도 꼭 써보라는 말과 함께. 돈도 돈이지만, 그의 배려가 내 것보다 크다는 걸 느꼈다.
설레는 마음으로 카메라를 들고 러닝을 나갔다. 촬영은 기대 이상이었다. 작은 카메라는 한 손에 쏙 들어왔고, 녹화되는 장면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어서 너무 신기했다. 그 작디 작은 화면 안에 담기는 나와 그가 멋었다. 그렇게 달리던 와중에 그가 말했다.
"그, 나 소비 쿠폰 있잖아. 그거 아직 남았는데, 오늘 집 가는 길에 아이스크림 잔뜩 사려고."
"엥? 아이스크림은 왜?
"맨날 저녁 먹고 아이스크림 찾잖아. 이번에 남은 거 싹 아이스크림 사서 냉장고 채워두게."
"ㅋㅋㅋㅋㅋㅋ아니, 뭐래!!!"
반주와 함께 저녁을 먹으면 나는 그렇게 아이스크림을 찾는다. 그게 집이든, 식당이든, 여행 가서든 항상 찾았다. 밤이든 새벽이든 그는 항상 내 성화에 못 이겨 편의점에 같이 걸어갔다. 은은하게 취기가 돌아 기분이 좋겠다, 밤 공기는 언제 어디서든지 어두우면서도 향기롭겠다, 심지어 내가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을 사러 가는 길이겠다, 그 길에 나는 흥에 취해 깡총깡총 뛰거나 춤을 추며 걸었다. 재밌어 보일 수 있겠지만, 그의 눈에는 취한 애가 비틀거리는 것처럼 보였을 수도 있고, 실제로 위험하기도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냉장고에 아이스크림을 두둑하게 쟁여두어야 겠다는 다짐을 했으려나.
각자 집에 가고 두 장의 사진이 카톡에 와있었다. 하나는 베스킨라빈스 한 통, 하나는 아이스크림 할인점에서 파는 아이스크림 수십 개였다. 베스킨라빈스는 생각도 못했는데, 그 큰 게 떡하니 있었다. 집 가는 시간이 거의 10시였으니, 베스킨라빈스가 문을 닫기 전 부랴부랴 갔을 그가 그려졌다. 그걸 사서 아이스크림 할인점을 휘젓고 다니며 아이스크림을 쓸었을 그가 뒤따랐다. 아이스크림을 제 돈 주고 사는 걸 못 봤는데, 나 떄문에 참 고생한다 싶었다.
[좋아한다]는 "다른 사람을 아끼어 친밀하게 여기거나 서로 마음에 들다."라는 뜻이다. [사랑하다]는 "어떤 사람이나 존재를 몹시 아끼고 귀중히 여기다."라는 뜻이다. 이 두 단어 사이에서 '지금 나는 어디에 서 있나?'를 질문하곤 했다. 이 날, 그가 비추는 빛에 생기는 그림자를 보고 조금은 알았다. 내가 어디 서 있고, 어디를 향해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