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돌을 던져도, 스토커가 붙어도, 입을 다물지 않을테다

세계 여성의 날을 기념한 소고

by 연옥

그림은 작년 여름, 동네 복지관에서 수강했던 몸 움직임 수업 모습.

여성 동료들과 둥글게 몸을 붙이고 앉아 기대기도 하고, 서로의 버팀목이 되어 몸을 일으켜 세워보기도 하고, 신체가 맞닿은 곳에 가만히 집중하며 연결되었다는 감각을 느껴보기도 했다.


다른 날에는 눈을 감은 채 천천히 걸어다니다가 자연스럽게 스치는 사람과 원하는 만큼, 안전하다고 느껴지는 만큼 몸을 붙이기도 했다. 서로가 인도하는 대로 말없이 따라가고, 어둠과 침묵 속에서 보이지 않는 몸짓으로 무언의 대화를 나누었다.


언어를 초월한 방식으로도 연결될 수 있다는 소중한 경험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여성이기에, 그 어느 관계보다도 안전하고 단단했다. 서로를 의심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았다.


•••

수업과는 아무 관계 없는 내용이지만,

몇 년 전에 데이트 폭력과 스토킹을 반 년 동안 당한 적이 있었다.

헤어진 남자친구가 창문을 열어 억지로 집으로 들어오려고 하고,

집 주변을 배회하며 관찰한 내용을 블로그에 기록했었다.


길바닥에 놓여있던 커다란 콘크리트 조각을 들어다가 나에게 던지려는 남자도 있었다.

자신이 원하는대로 하지 않으면 내가 부끄러움을 느낄 법한 사건을 폭로하거나, 혹은 너 때문에 내가 죽어야만 말을 듣겠냐며 입에 약을 쏟아붓고 칼을 들려고도 했다.


방법은 달랐지만 두 명 다 나를 겁박하고, 괴롭히고, 수치심과 죄책감을 느끼게 만들려 애썼다.

이유는 별것도 아니었다. 내가 그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아서. 그의 자존심을 긁어서.

그의 소유물마냥 마음대로 행동해주지 않아서.

조용히 듣고 따르기만 하지 않아서.

순순히 물러서지 않아서.

나의 생각을 소리내어 말하고 행동으로 옮겨서.


세월도 흘렀고 사람은 달라졌는데 그들은 그대로다.

지긋지긋하다.

내가 이런 취급을 당하는 이유도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여자라서.


•••

콘크리트에 맞을 뻔했던 게 불과 일주일 전이다.

그 전부터 이미 항불안제와 수면유도제를 먹고 있기는 했지만,

사건 이후로는 약을 먹어도 세 시간에 한 번씩 깨고, 아침 해보다 눈이 먼저 떠지게 되었다.

언젠가 이 모든 일을 글로 써서 세상에 내놓을 것이다.

내게 일어나는 사건을 마음대로 막을 수는 없을지언정,

불가항력이 그저 내게 일어나게 내버려두기만 하는 수동적인 사람으로 남지 않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 난 나의 여성 동지들과 몸으로, 마음으로, 언어로, 비언어로 연결될 때마다 느꼈던 안전한 감각을 되살리려 애쓴다.

우리는 안다. 괴롭힘 속에서 목소리를 낼 때 마음 깊숙히는 충분히 두려울 수 있다는 걸.

그들 때문에 집을 옮기고 번호를 바꾸는 수고로움이 나의 안전을 위한 불가피한 대처일지언정, 당한 사람이 그 수고를 감당해야 하는 불합리함에 분노가 치솟는다는 걸.

그럼에도, 혹은 그렇기에, 계속 이야기해야 한다는 걸.


그 감각을 매개로 연대하는 우리들을 든든하게 등에 업고, 오늘을 기념해 외쳐본다.

세계 여성의 날을 축하합니다.

모든 여성의 삶을 축하하고, 지지하고, 응원합니다.

우리, 잘 살아남고, 살아보아요.

keyword
작가의 이전글<글쓰기로 얼마까지 벌어봤니?> 경험 공유회 초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