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주차장 기둥이나 백미러 말고 깨야할 다른 게 있다.)
#보초운전 인스타툰 그릴 소재가 산더미인데, 시간이 없어도 너무 없어서 일반 게시물로 소감이라도 올려본다. (그림으로도 언젠가 그려보겠어요!)
운전연수 선생님께서는 ‘깨야한다’는 표현을 자주 쓰신다.
‘최대 시속이 80키로였죠? 그걸 깨야돼요. 깨고 한 번은 110키로까지 밟아봐야 다음에 필요할 때 또 할 수 있어요.’
’차선 변경 너무 무섭죠? 그래도 들어가야돼요. 지금이에요. 지금. 저 차 엉덩이가 지나가면, 지금... 아... (결국 실패해서 고속도로 들어가자마자 출구로 나옴) 이걸 깨야돼요.‘
경험하지 못한 미지의 세계라는 이유 때문에 두렵다면,
거기에 과감히 뛰어드는 것 말고는 그 공포심을 깰 방법이 없다.
다른 사람이 대신 해주지 못한다.
옆에서 선생님이 지시하는 타이밍 그대로 맞춰서 차선 변경하면 (그나마) 쉽다. 하지만 나 혼자서는 못 한다.
엑셀도, 브레이크도, 운전하는 나 말고 대신 밟아주거나 언제, 왜 밟아야하는지 판단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오직 나의 일이다.
내가 한 번도 넘어보지 않은 경계를 넘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나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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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말이다.
너무 당연한 소리 같지만, 운전해보면 그 소리가 안 나온다.
경계가 아니라 결계처럼 느껴진다.
’여기에 부딪혀보라고요? 내가 (차랑 같이) 박살날 것 같은데?‘
그걸 깨야한다.
그게 진짜 어렵다.
여태껏 그런 경계, 아닌 결계를 만났을 때 내가 생각보다 많이 회피하고 미뤄왔구나.
안전한 길을 찾아 돌고 돌면서 합리화하기도 했고,
너무 큰 장애물이 있으면 못본 척 피해가기도 했다.
근데 그걸 미뤘다간 아예 도로에 나가지도 못하거나 출구를 찾지 못해 영영 도로에 갇혀버리는 운전이라는 걸 배워보니 알겠다.
인생은 마치 도로연수처럼 실전이고,
초보 딱지를 붙이면 약간의 배려를 받을 수는 있지만,
그 배려에만 기대지 않고 나만의 1인분을 나 혼자 해내는 법을 배워야만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더라.
거기까지 나를 데려갈 사람은 나밖에 없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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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을 떠나 스스로 먹고 사는 법을 실험한지는 벌써 5년째지만,
그 기간을 통틀어 경제적으로나 정서적으로나 지금처럼 비빌 언덕이 많지 않은 시기는 처음이다.
여러 의미로 매우 냉정한 홀로서기를 경험하고 있다.
그 기간 동안 운전이라는 걸 배우게 된 게 결코 우연은 아닌 것 같다.
올해는 모든게 초보처럼 느껴지는 해일지도 모른다.
번역 공부를 정식으로 시작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귀한 기회를 앞두고 있는데,
설령 그 기회가 내게 돌아온다고 하더라도 그 바닥에서 나의 밑천을 얼마나 많이 보이게 될지 벌써부터 두렵다.
공부와 병행해, 생활을 안정적으로 할 수 있을 정도로 밥벌이를 해낼 일도 걱정이다. 주경야독을 하며 나와 고양이들을 돌볼 수 있는 체력과 정신력을 지키는 것도 문제.
출판쪽으로는 대형서점 유통, 소설, 전자책, 번역서 시장에도 도전해보려 한다. 모두 한 번도 안 가본 길이다. 막막하다.
길 위에서 차선을 바꾸며 뒤에서 오는 차가 내 차에 들이받을 것 같은 그런 생생한 두려움까지는 아니지만,
뭔가 삶 자체가 어깨를 내리누르는 그런 실존의 무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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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땐 운전을 하자.
오늘처럼 고속도로만 두 시간을 주행하다가 온 몸에 담이 걸리고 싶지는 않지만... 그것도 언젠가는 또 해내야한다.
운전에 대한 공포만을 없애기 위해 운전을 하는 게 아니다.
두려움을 깨고 싶을 때, 그 두려움이 내 앞, 뒤, 양옆으로 나를 몰아세우며 당장이라도 날 들이받을 것 같은 가상의 공포가 날 휘감을 때,
정신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진짜로 그런 일이 생길지도 모르는 도로로 나가자.
나가서 느껴보자. 생각보다 해보니 별일 아니구나.
처음엔 막막했던 일 그 무엇도 계속 부딪혀보면 어떻게든 되는구나.
차 시동 켤 줄도 몰랐던 내가 지난주에 연수 두 번 받고 무려 드라이브 스루를 다녀오지 않았나? (알고보니 초보운전자에게는 미친 일이었다고 하는데 난 몰랐어... 추가 교훈: 무식하면 용감하다.)
나는 여전히 초보. 앞으로도 오랫동안 초보일 예정.
하지만 괜찮아. 깨면 된다. 깨는 그 경험이 너무도 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