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의 모래폭풍
연재소설
일정 구간 관을 연결하고 나면 누수 여부를 확인하는 수압 테스트를 실시한다. 그 결과 이상이 없으면 되덮기와 포장작업으로 해당 구간 공사가 마무리된다. 만일 누수 현상이 나타나며 누수 지점을 들어내고 재시공을 해야 한다.
수압을 보려면 사전 준비가 만만치 않다. 우선 포클레인이 관 연결 부분을 제외한 몸통을 흙으로 덮어 임시 되덮기를 했다. 이는 수압 시험 중 압력급증에 의한 관 이동을 막기 위함이다.
테스트는 맨홀과 맨홀 사이에서 이루어진다. 필성과 석한풍이 한쪽 관 입구를 막기 위해 반대편 맨홀로 갔다. 제수 밸브를 잠금 쪽으로 돌리니 원형 원반이 내려와 관 입구를 막았다. 둘이 맨홀 안으로 들어가 플랜지 나사를 조여 원반을 단단히 고정했다.
반대편 맨홀로 사인을 보내자 대기 중이던 설경찬과 봉수한이 급수 펌프를 작동시켰다. 관 속 공기가 잘 빠지도록 천천히 물을 주입하는데, 필성과 석한풍은 20개의 공기 빼기 밸브를 모두 열어놓고 배관 속 공기가 제대로 배제되는지 살폈다.
지름 1m 초대형 관이 200m에 달하니 온종일 걸려서야 물이 채워졌다. 아직 안에 남아 있는 공기가 서서히 빠지도록 48시간 정도 기다려야 한다.
이틀 후. 수압 테스트 날이 됐다. 필성과 석한풍은 공기 빼기 밸브를 모두 잠갔고 천 기사는 미리 작업해 둔 소켓에 게이지를 장착했다. 수압기 펌핑을 시작하자 게이지 눈금이 서서히 올라갔다. 5psi, 10psi, 20psi, 30psi, 40psi, 규정 수압인 50psi에 이르자 수압기에서 손을 뗐다. 이제 1시간 동안 수압이 45psi 이하로 내려가지 않으면 테스트를 통과하게 된다.
그동안 수십 번의 테스트에서 아무 이상이 없었지만, 그래도 수압 테스트는 언제나 긴장이 되게 마련이다.
그런데 오늘은 종전과 상황이 달랐다. 30분쯤 지났을 때, 천 기사가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게이지를 확인하러 갔다. 근데, 이게 웬일? 눈금이 46psi까지 내려와 있는 게 아닌가! 남은 30분 동안 45psi를 지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천 기사와 홍 기사가 긴급히 배관을 따라 점검에 나섰다. 열두 번째 관 연결 부위에서 물이 조금씩 배어 나오고 있었다. 연결 시에는 괜찮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미세한 틈이 생긴 모양이었다. 문제 된 부분을 들어내고 재시공이 불가피했다.
보고 받은 정 공구장의 얼굴이 순식간에 일그러졌다. 갖은 욕설을 퍼부으며 분노를 주체하지 못했다.
“이 이 씨팔 놈들아! 그, 그렇게 일렀는데 이, 이 모양이란 말이야, 어떤 새끼들인지 좆대가리를 잘라버리겠어. 이 종간나·······”
작업장이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작업자들은 영문도 모른 채 눈치 살피기 바빴다.
그때, 누군가 소리쳤다.
“모, 모래바람이다!”
미쳐 피할 새도 없이 희뿌연 먼지가 하늘을 뒤덮고 거센 바람과 함께 모래알이 벌 떼처럼 날아들었다. 눈앞이 안 보이고 숨을 쉴 수가 없다. 거센 바람에 실린 모래는 날카로운 유리 조각처럼 작업자들의 얼굴을 할퀴어댄다.
"눈, 눈을 뜰 수가 있어야지!"
"고글, 고글이 어딧는 거야!"
그들은 연장을 팽개치고 허겁지겁 가까이 있는 자재 더미로 달려갔다. 모래바람을 피하기는 젖혀진 관로 속으로 기어드는 게 최선이지만, 거기까지 가기에는 너무 멀었다.
자재 더미 뒤에 몸을 숨긴 작업자들은 달팽이처럼 몸을 말아 작업복으로 감싸고 모자에 달린 천으로 코와 입을 막고 고글을 단단히 고쳐 썼다. 필성은 엉겁결에 고글이 어디 갔는지 찾을 수가 없었다.
자재 더미가 그리 높지 않고 틈이 많아 광란하는 모래바람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자재 틈새로, 양옆으로 휘돌아 치는 모래알이 작업복을 헤집고 들어와 몸 구석구석을 훑는다. 손등을 할퀴어 대고 귓구멍을 후벼 판다. 얼굴을 가린 천 안에도 모래가 쌓인다. 바람이 파고들 수 있는 곳이면 아무리 좁은 공간이라도 남겨놓지 않았다. 작업자들의 신음 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다.
필성이 숨이 막혀 잠시 코에서 손을 떼니 공기 대신 모래알이 콧구멍을 쑤시고 들어온다. 입을 벌려 숨을 쉬려니 입안이 모래로 수북해진다. 여차하면 목구멍으로 넘어갈 판이다. 속수무책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
광란의 모레 춤이 갈수록 더해간다. 작업자들은 사막 한가운데서 길을 잃은 채, 모래에 파묻혀 생사의 기로에 서 있는 꼴이었다. 시간은 멈춘 듯했고, 그저 사막의 거친 숨결에 몸을 내맡겼다. ··· 1시간쯤 지나자 모래가 발목까지 올라왔다. 필성은 점점 정신이 아득해진다.
지옥 같은 시간이 얼마나 이어졌는지 알 수 없었다. 광란의 모래바람이 위세가 수그러지나 싶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 홀연히 사라졌다.
사막이 다시 평온을 되찾았다. 죽었나 싶었던 작업자들이 하나둘 허리를 펴고 일어났다. 눈은 초점을 잃었고 얼굴과 작업복은 모래에 뒤덮여 있었다. 본능적으로 물통을 향해 몰려갔다. 목구멍에 걸린 모래알을 뱉어내고, 콧속에 들어찬 모래를 긁어내며 허겁지겁 물을 들이켰다.
"이러다 잘못하면 모래 귀신되는 거 아냐?"
한숨 돌린 방현우가 구시렁거렸다.
모래바람이 휩쓸고 간 작업장은 말 그대로 폐허 자체였다. 연장은 모래 속에 파묻혔고, 장비는 먼지를 뒤집어써서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웠다. 정지 작업까지 끝낸 관로가 모래로 메워져 흔적조차 없었다.
다시 작업을 시작했으나 여의치 못했다. 입안이 서걱서걱하고, 숨을 들이쉴 때마다 콧속에 붙어 있는 흙먼지가 쓸려 들어갈 거 같았다. 삽질을 할 때마다 땀에 젖은 작업복에 붙어 있는 모래알이 맨살을 긁어댔다. 여기저기 근질거렸지만, 상처 날까 봐 긁을 수도 없었다. 사막의 바람은 잠잠해졌지만, 작업자들의 고통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