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때는 몰랐다. 내가 훗날 인도에 살게 될 줄은. 첫걸음은 취뽀
인도, 잠시 한숨 고르고 그때를 떠올려 보았다.
2024년 올 한 해를 거의 다 산 지금의 우리에게 아직도 익숙하지 않은 그런 나라.
지리적으로 아시아 국가인 듯한데 정확히 말하면 인종은 아시아인으로 분류되지 않는 나라.
항상 사람들은 인도를 생경하게 여겼다. 내가 인도에 있다는 사실 자체도.
누군가는 인도를 자꾸 인도네시아와 헷갈려했다.
India가 마치 Indonesia의 파생어인 것처럼 생각한 것이다.
인도에서의 스토리를 풀어가기 전에 인도라는 나라의 기본적인 정보부터 짚고 넘어가려 한다.
정확한 통계치는 이러하다.
인구: 1,428,628,000 명 [자료원 : IMF, 2023.11.14 기준]
수도: 뉴델리(New Delhi)
화폐: 루피(INR)
면적: 3,287,263㎢ [자료원 : 인도 정부 포탈(India.Gov.in)]
언어: 힌디어, 타밀어, 카나다어, 텔레구어 등 22개 공용어 외 다수 부족언어
출처: 코트라무역관 국가정보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딱히 모르는 인도를 위의 숫자들로 감을 잡을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이 인식하는 인도는 어떤지 몇 가지 키워드로 인도의 집약적 이미지를 떠올려본다.
광활한 대지. 거대한 나라. 젊은 노동인구. 성범죄율 높은 나라. 타지마할. 카레. 강황의 나라. 개발도상국. 영국 식민지. 마하트마 간디. 비폭력 불복종 운동. 모디세계 최대민주주의. 세 얼간이. 공학자. 인도천재. IIT 공대. 치안. 위생. 험지. 여성인권. 물갈이. 현기차. 발리우드. 향신료. 짜이. 대기 오염. 소. 빠니보틀 등
이 중에서 여러분들은 무릎을 치며, "맞아! 인도하면 그런 것들이 생각나" 하실 수 있으리라 믿는다.
이쯤에서 거두절미하고 내가 인도에 온 이유는 아래와 같다.
(바로 본론에 들어갈 수 없었던 이유는 인도를 담기에 모든 그릇은 너무 작다)
정치외교학과를 포부 있게 졸업하고 전공 관련 직업을 탐색했다.
물론 정외과 출신들은 향후 진로 방향이 굉장히 제한적이다.
대표적으로 일등 공신 및 출세가도가 그려지는 대한민국 외교부 소속의 외교관 직업이 있고
언론사, 국회 및 정계로 진출하는 기자, 언론인 그리고 진짜 국회의원 및 여러 부처의 공무원도 있겠다.
난 현실주의에 입각해 외교관이라는 직업의 가능성을 타진해 봤다.
2017년 졸업 때만 해도 외교아카데미는 존재하지 않았고 난 외무고시를 합격할 자신이 없었다.
그럼에도 대한인으로서의 견고한 자부심과 힘찬 긍지를 가지고
세계 속 한국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일을 하겠다는 단단한 다짐만은 여전했다.
이 꿈을 실현할 외교관 다음으로의 가장 현실적인 길은 외교부 산하의 다른 직업일 것이라는 생각을 하던 차, 외교부 재외공관실에서 진행하는 각 나라의 수도에 주재하는 대한민국 대사관 행정직원 공고를 보게 됐다.
그중 내 눈길을 이끈 것은 인도, 인도네시아 그리고 미국 샌프란시스코 영사관이었다.
인도는 빠른 성장세를 보이는 무한한 기회의 땅, 신비의 나라
인도네시아는 우리 모두가 애정하는 신혼여행지 발리가 있는 나라
미국 샌프란시스코는 한국 교민이 많아 영사 업무가 주인 두말 할 필요 없는 그냥 미국이라는 나라
이런 간단명료한 생각을 했을 때 그나마 고차원적인 고민에 빠져들게 한 인도가 제일 끌렸다.
이때만 해도 한국에서의 인도는 발리우드의 중심지, 석가모니가 깨우침을 얻은 장소 및 높은 잠재적 시장가치 등으로 평가받으며 부상하는 국가였다.
하여 난 2017년 9월 "Incredible India"에 첫 발을 디디게 됐다.
번외) 인도 관광청에서 홍보 문구로 내세운 인크레더블 인디아는 놀랍도록 화려한 볼거리가 넘치는 나라에서 내세운 것인데 당시 직장 동료의 말에 의하면, credit 이 없는 'in (반의 접두사) + credible (믿을 만한)'
즉, 믿을 수 없는 나라로 해석될 수도 있다고 한다. 그때는 아무것도 모르다가 살면서 공감하게 됐다는 말.
외교부에서 후원하는 취업비자를 받고 당당하게 Diplomat 창구에서 이민 수속을 밟았다.
인도는 국가주의적 성향이 짙은 나라여서 꽤나 진보된 공무원 우대 및 특혜의 사회적 이면이 존재한다.
확실히 대기 줄도 짧고 모두가 겪는다는 인도 비자수령의 어려움 또한 없이 통과했다.
한국에서 인도로 가는 방법은 대한항공이 운영하는 인천->뉴델리 직항 노선이 있다.
7-8시간의 비행을 거쳐 인도 수도인 뉴델리의 *인디라 간디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Indira Gandhi는 인도의 처음이자 현재까지 유일한 여성 총리를 지낸 바 있는 역사적 인물이다.
뉴델리 공항은 인도 아대륙 스케일만큼이나 그 내부의 장식이 웅장했다.
창구 건너편에 서기관님이 직접 마중을 나오셔 기다리고 계셨다.
눅눅한 곰팡이와 텁텁한 먼지 냄새가 느껴지는 아, 이국(異國)에 왔구나를 실감하던 차에
반가운 한국인을 보게 돼서 괜스레 힘이 났다. 동포애가 이런 것인가 싶었던 순간.
처음 입부하고 나면 현지에서 선택의 순간이 주어진다.
인간의 기본권에 해당하는 의, 식, 주 중에서 숙식이 무엇보다 인도 같은 타지에서는 중요했다.
사회생활 새내기였던 갓 졸업한 23세였던 나는 막상 용기 있게 인도로 왔지만 한국의 손길이 그리웠다.
한국인 부부가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로 입성!
두 번째 사진이 게스트하우스가 위치한 아파트 단지. 한국 아파트 같은 정취를 풍겼다.
도착한 날 밤은 기분 좋게 한국인 입맛을 삼겹살로 재현하고 인도식 짜이(차)를 마시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아직도 그때의 기억이 선명하다.
공항에 가면 그 나라의 고유한 향이 존재하지 않는가.
난 그렇게 인도의 첫맛을 본 것이다. 그것도 아주 진하게.
내 기억 속에만 존재했고 타인의 이야기로만 굳혀졌던 신비의 나라 인도의 베일이 벗겨지던 영겁의 시간.
한숨 푹 자고 그다음 날, 주인도한국대사관에 다다랐다.
아침의 햇살이 드리운 짙은 빨간색의 사암으로 지어진 대사관 건물은 더욱 정열적인 색으로 타오르고 있었다.
꿈을 향한 첫걸음, 인도에서 작열하는 마음으로 시작했고
그 뜨거움은 4년 후 바야흐로 나를 살게 했다. 빨간 맛 인도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