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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난시 03화

혼과 한

by 다날


9


설거지는 혼이 했다. 수세미가 그릇을 긁는 소리 사이사이 영의 음성이 내 귀에 박혔다.

“도대체 작전이 뭔데?”

영은 한에게 대들 듯이 음성을 높여 말했다.

“몰라도 돼. 나갈 준비나 해.”

고무장갑을 낀 채로 혼은 등을 돌렸다.

“사람이 늘면 작전을 다시 세워야 하잖아. 시간이 없어.”

“그니까 둘보단 셋이서 하는 게 빠르지.”

또다시 암호 같은 대화의 연속이었다. 어떻게 된 게 이 집 인간들은 대화의 주체가 늘어나도 이렇게 어렵고 비밀스러운 건지 짜증이 났다. 영은 갑자기 중학생이 이 저녁에 어디를 나간다는 건지, 말리기는커녕 나갈 준비까지 챙기는 형은 또 뭔지 도통 짐작이 안 됐다. 더 이상의 대꾸도 없는 한을 제쳐둔 채 영은 계속 떠들었다.

“어차피 형들이 하는 일이라 해봤자 또 사고 치고 경찰서에서 나한테 전화 오는 엔딩 아니야? 이번에는 대비할 시간이라도 줘야지.”


영의 요구는 꽤나 합리적이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방법은 없었지만 죄를 지으면 잡혀가는 곳이 경찰서란 사실은 알았다. 영은 보호자로서 충분히 그들의 계획을 알 권리가 있었다. 내 생각이 틀리더라도 맞아야 했다. 내가 나의 동료들보다 친밀감이 적은 영의 편을 드는 덴 숨은 의도가 있었다. 나 역시 그들의 작전이 궁금했다.

“한아 말해줘. 영이 말도 맞다.”

어느 순간 혼은 영의 옆에 앉아 있었다. 그릇이 물에 씻겨나가는 소리가 멈춘 지도 그때야 알았다. 나름 청각세포에는 자신감이 있던 개인데 큰 물소리를 못 들을 정도로 영의 독백에 집중했었다.

“그럼 잘 들어. 우린 혼이의 유기견보호센터를 공격할 거야.”

“그게 무슨 소리야. 자기 집을 왜 공격해.”

혼이 다시 끼어들었다.

“정확히 말하면 우리 보호센터에 갇힌 개들을 전부 풀어줄 거야.”

“형이 나라면 이 말을 믿겠어?”

한은 더 이상 영에게 진실을 진실로서 설명할 수 없단 걸 혼에게 곁눈질로 말했다.

“다 사실이야. 우린 우리 집의 철장 속 개들을 전부 풀어줄 거야.”

“아니… 형이 왜 형의 집을 망하게 하는 건데?”

혼은 영을 쓰다듬어줬다.

“너 왜 사람들이 개를 보면 신고하는 줄 알아?”

“사람을 무니까.”

“아니. 틀렸어. 그저 개가 목줄도 없이 혼자 돌아다니고 있어서야. 오히려 개들한테 공포감과 불안감을 주는 게 사람이야. 이상한 건 잘못은 사람들이 하고 벌은 개들이 받는다는 거야. 어차피 우리 집에 오는 개들은 죽어. 죽는 이유는 더 이상해. 데려가는 사람이 없다는 게 이유가 돼.”

혼의 말에 틀린 부분은 없었다. 개는 인간의 지배 아래 살아야 하는 동물이 아니라 같은 땅 위에 인간과 독립적으로 살아가야 하는 종족이니까. 하지만 보호센터장의 아들이 갑자기 우리 종족에게 자유를 주겠다는 결정엔 그 이유가 신경 쓰였다. 영의 말대로 사장의 집에서 지금껏 수백 번 이상의 명분 없는 비윤리적인 죽음을 봤을 텐데 왜 갑자기 변화를 하려는지 알 수 없었다. 게다가 탈출이 자유인지에 대해 물어본다면 회의감이 들었다.

물론 혼은 자신이 나와 같은 위치에 있는 존재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학생과 어른, 주인 있는 개와 주인 없는 개라는 이분법 된 세계 중 어느 쪽의 이름도 가지지 못해 세계를 떠도는 자들로서 말이다. 그렇지만 혼은 인간이었기에 굳이 우리에게까지 동질감을 느끼며 반란을 일으킬 필요는 없었다. 이건 마치 서로 다른 목표를 위해 협력하는 관계 같았다. 우리를 풀어주는 것은 시장에 대한 하나의 복수방법에 지나치지 않을지도 몰랐다.

“그래서 같이 할 거야?”

누구나 혼의 말을 들은 직후엔 인간의 악행에 대한 상념에 빠지며 반성하는 얼굴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왜 개는 주인이 있어야만 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답을 아무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질문에 대한 고민의 끝은 결국 순응과 후퇴였다.

“난 하기 싫어. 어쨌든 그건 도둑질이니까.”

“그래. 하기 싫으면 안 해도 돼. 대신 방해는 하지 마. 이번엔 너한테 전화 안 가게 할 테니까.”

영은 한숨을 뱉더니 자기 형을 째려봤다.

“마지막이야. 근데 형은 왜 같이 하려는 거야?”

잠자코 있던 한이 영에게 옅은 미소를 보였다.

“처음으로 뭔가 강하게 하고 싶은 일이니까.”


10


우리는 점심을 먹고 마지막으로 작전을 점검했다. 영은 점심을 먹자마자 집을 나섰다. 영은 일요일 오후마다 같은 시간에 외출했다. 아무도 그에게 장소와 귀가시간을 물어보지 않는 걸 보면 규칙적으로 하는 일이었다. 참고로 나는 아직 이 집의 시간에 대한 비밀을 밝히지 못했다. 점심이라 말한 것은 단지 자고 일어난 후의 두 번째 식사라는 이유에서 추론했을 뿐이다. 벌써 이 집에서 사흘을 잤지만, 한 번도 해가 비친 적이 없었다.


작전은 완벽했다. 이틀 동안 혼과 한은 한의 알바시간을 제외하곤 온전히 집에. 틀어박혀 커다란 스케치북 위에 작전을 그렸다. 범죄, 스릴러 장르의 드라마나 영화에서나 보던 악명 높은 도둑집단의 우두머리가 작전에 몰두하는 듯한 꼼꼼함과 작전을 기다리는 도둑들의 긴장감이 맴돌았다.

확실히 지능은 한에 비해 혼이 뛰어났다. 혼이 한에게 도움을 청한 이유는 단지 오토바이 때문이 아니었다. 한의 무기는 침착함이었다. 그의 사고는 마치 범죄현장을 상상 속에서 재현할 수 있는 프로파일러 같았다. 혼이 작전을 세우면 한은 그 허점을 짚어내고 대안까지 제시했다.

영이 집을 나선 후 우리의 작전은 계속 수정되었다.

“처음부터 다시 짚어보자. 듣다가 이상한 점 있으면 바로 말해.”

한은 기도하듯 두 손을 모아 엄지를 턱에 갖다 대고 눈을 감았다.

“작전 시간은 오늘 밤 12시 자정, 장소는 도그세이프 유기견보호센터. 우선 11시 20분에 센터 정문 앞에 도착. 도착 후 나는 정문으로 들어가 뒷문을 열어 놓으면서 아빠의 위치를 확인. 아빠가 자고 있다는 게 파악되면 너한테 카톡 할게. 그럼 그때 너는 다시 오토바이의 시동을 켜고 경적을 울리면서 센터 외곽을 계속 돌아. 아빠를 깨울 수 있을 정도로 최대한 크게 달려. 아빠가 센터 밖으로 나오면 뒷문 쪽에서 내가 강이와 함께 집 쪽으로 접근할게.”

“잠깐만, 너네 아빠가 만약에 뒷문으로 나오면?”

“그럼 외곽을 따라 돌지 말고 정문 쪽에서 달려. 아빠는 분명 너를 쫓으러 갈 거야. 아빠가 제일 싫어하는 게 소음이니까. 아빠가 네 쪽으로 가는 사이에 나는 강이랑 아빠 방으로 들어가서 케이지 키를 갖고 나올게.”

“정말 너네 아빠가 나를 계속 따라올까?”

“따라오게끔 할 거야. 그건 작전 시행 직전에 알려줄게.”


혼의 브리핑이 끝나는 동시에 한도 눈을 떴다. 한은 아직 작전의 허점이 보이는 듯했다.

“강이를 투입하는 건 괜찮겠지? 오히려 얘가 망치는 거 아닐까?”

“아니지. 개들이 우리말보단 강이 말을 더 잘 듣겠지.”

“근데 강이는 개야. 우리의 작전을 제대로 이해했다는 보장도 없을뿐더러 현장에서 도망가도 이상하지 않은 개라고.

혼은 엄지손가락으로 입을 닦았다.

“믿어야지. 그래도 개는 개가 제일 잘 알아. 어제 훈련에서도 실수한 적 없고.”


여기서 강이는 바로 나다. 어제는 뜬금없이 이상한 훈련 명령을 내렸다. 한은 문을 닫은 채로 화장실에 있고 혼은 나를 화장실 앞에서 기다리게 한 후 출입문에 붙어 섰다. 혼이 나에게 시작이라는 신호를 주면 나는 화장실 문을 열고 들어가 한의 한쪽 바짓가랑이를 물고 그를 밖으로 끌었다. 한에게 몇 번 짖은 후 한과의 거리를 확인하며 혼이 있는 쪽으로 걸었다. 내가 이해한 대로라면 달리는 속도보다 뒤를 확인하며 한이 나를 따라오는지가 중요한 부분이었다.

비로소 훈련의 목적을 알았다. 사실 내가 작전사령관이었다. 작전의 완성을 선택할 수 있는 키는 나에게 있었다. 그들의 작전에 내가 참여하는 아니라 나의 신세계로의 탈출에 혼과 한이 한 배를 탄 꼴이 분명했다.

그러나 과연 나의 몇 마디에 나의 종족들이 나를 따를지, 내가 선봉자가 될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래도 이제 혼을 믿게 됐다. 다만 내 이름에 대해선 의심스러웠다. 나에게 묻지도 않았고, 나는 이름을 원하지 않았다.


“우리 센터 내에 있는 케이지가 입양대기소에 있는 것들까지 합치면 50개야. 케이지 자물쇠는 전자식으로 키 하나로 통합이라 20분 정도만 버텨주면 돼. 문을 여는 순간 강이가 애들을 데리고 뒷문으로 나갈 거야. 내가 문자를 보내면 뒷문으로 와서 나를 태워가면 돼. 성공한다면 우린 뒷 산 입구에서 강이를 만나 집으로 돌아갈 거야.”

나는 그 산이 어딘지 몰랐다. 나는 눈을 떠 보니 이 집에 있었던 게 기억의 전부였다. 혼이를 만나기 전 나는 어느 아파트 단지 화단에서 쉬고 있었다. 한도 내가 우리의 합류지점을 알고 있는지 의문을 품었다.

“쟤가 뒷 산 입구를 알아? 안다 한들 거기로 오라고 어떻게 알려주는데?”

“알 거야. 탈출했을 대 강이도 그쪽으로 갔을 거야. 가장 익숙한 냄새를 따라오게 돼 있어.”

한의 미간은 불안해 보였지만 혼을 믿는 눈치였다.

“그렇다 쳐도 문제가 하나 더 있어. 개들은 아마 강이를 보면 짖을 거야. 개들이 한 번에 짖으면 내 오토바이 소리보다 더 위협적일 거야.”

한은 내 속을 읽고 있었다. 나 역시 이게 가장 큰 고민이었다. 다시 돌아온 나를 배신자로 여길지 구원자로 존중할지는 반반의 확률이었지만, 선생만 생각해도 어느 쪽으로 기울지는 뻔했다.

“저번엔 혼자 도망가는 상황이라 짖었겠지. 이번엔 강이가 모두를 구하러 왔다고 말할 거야.”


결국 두 가지를 알아야 했다. 뒷 산이 어디인지 그리고 내 종족들이 짖지 않게 하는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사장의 집에 도착하자마자 피스부터 만나야 했다. 피스라면 답을 알고 있을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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