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예상보다 경찰은 용의자를 빨리 추려냈다. 혼과 강식이 사라진 지 일주일 만에 세 명의 경찰이 한의 집을 찾아왔다. 영과 나는 저녁을 먹던 중이었다. 영은 나를 싱크대 아래 선반에 밀어 넣더니 쉿 하고 현관문을 열었다. 영은 이제 친구 대하듯 경찰을 편하게 맞이했다. 하지만 경찰이 변했다. 그들은 방문보단 습격에 가까웠다. 과격하진 않았지만 냉정하고 날카로웠다.
“조영. 형 어딨니?”
“저도 궁금해요. 얼굴 못 본 지 꽤 됐어요.”
“갈만 한 데는?”
“알면 제가 먼저 찾으러 갔겠죠.”
영은 경찰에 대해선 적대적이었다. 걸핏하면 경찰의 이성을 잃게 만드는 어투로 답했지만 그들은 감정적이지 않았다. 영의 작전은 실패였다. 저번과 다르게 경찰들은 자기감정에 휘돌리지 않고 필요한 사항만 물었다. 이미 경찰은 하나의 단서를 얻은 듯한 표정이었다. 적어도 전과가 있는 영이 이번 사건의 범인은 아니란 사실을 확신하고 있었다.
“잘 들어. 몇 달 전 너희 형은 잘못을 저질렀어. 네가 저번에 했던 가벼운 복수와는 다른 일이야. 유기견센터의 개들을 센터장의 허가 없이 외부로 풀어줬어. 그 풀려난 개들로 인해 동네가 쑥대밭이 된 건 너도 뉴스에서 봤으니까 알겠지. 저번에 형이 널 도와줬잖아? 이번엔 네가 형을 도와줘. 형에게 우리가 못 잡는 게 아니라 자수할 기회를 주는 거라고 전해주렴. 알겠니?”
“우리 형인 줄 어떻게 알았어요?”
영은 흔들렸다. 물론 나도 의문이었다. 그날 우리의 작전은 깔끔했다. 뒤처리도 별 탈 없이 넘어갔다. 게다가 왜 한참 전에 일어난 일을 들쑤시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저들이 당장 해결해야 할 일은 납치된 강식을 찾는 것이었다. 어쨌든 영은 경찰의 떠본 말에 자백한 꼴이 됐다.
“그건 말해 줄 수 없고. 무튼 너네 형이 어떻게 될지는 너한테 달려있는 걸 명심하렴.”
경찰은 태풍처럼 집을 떠났다. 경찰의 음성이 사실 애매했다. 진실과 거짓 중간쯤의 떨림이라 판단이 어려웠다. 혹시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건가 싶었다. 혼 단독으로 강식을 납치한 게 아닐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둬야 했다.
영은 나를 안았다. 당황하지 않으려고 애써 참았던 눈물을 내 머리 위로 한 방울 흘렸다. 영은 한에게 곧장 전화했다. 경찰이 쫓고 있으니 조심하라고. 그들이 형에게 기회를 줬으니 자수하라고. 이번엔 자기가 같이 무릎 꿇고 빌어주겠다고. 한 바탕 듣는 사람이 없는 독백을 쏟아내고 나서야 나를 품에서 내려놓았다.
“다행이다 그래도. 너는 안 잡아가서.”
영은 이미 형의 만행이 들킬 거란 걸 알고 있었다. 경찰이 한을 잡기 위해 나를 미끼로 쓸 거라 생각했던 듯싶다. 그 공포에서도 영은 나를 가장 먼저 숨겼다. 물론 경찰은 영의 생각보다 훨씬 잔인했다. 한의 전부인 영을 이용했고 그들의 작전은 통했다. 어쩌면 경찰은 혼을 의심할지도 몰랐다. 그들이 보기에도 혼과 한 그리고 영은 하나의 물레방아에서 연쇄적으로 돌아가는 부품이었다.
또 하나 걸리는 점은 경찰이 우리의 작전에 한을 집어넣은 것이었다. 아까 영이 물어봤던 그날의 내 말을 알고 있는 신고자는 뻔했다. 한이 일했던 가게의 사장. 그 누구보다 치졸하고 형편없는 인간. 그래서 불안했다. 한은 절대 그의 배신을 예상하지 못하거나 당하고만 있을 사람은 아니었다.
자수는 없었다. 매번 현명한 판단을 하던 한은 단 한 번 실수했다. 그는 전 가게 사장을 폭행했다. 처음부터 사장을 때릴 의도는 없었다고 진술했다. 단지 비밀을 유지하는 대가로 받지 않은 두 달 치 월급을 요구하러 간 것이었다. 하지만 사장이 들은 채 하지도 않자 그는 카운터의 포스기에서 돈을 가져가려 했다. 말리려던 사장의 팔을 걷어치운다는 게 그만 팔꿈치로 안면을 강타하게 되면서 사장의 왼쪽 눈 밑 뼈가 으스러졌다. 언제나 과정은 중요하지 않았다. 때린 건 한이었고 맞은 건 사장이었다. 피해자는 사장뿐이란 것만이 사실이 됐다.
한은 영과 달리 서 내부의 의자가 아닌 유치장 안에 앉아있었다. 한의 죄는 깊어졌다. 유기견보호센터의 개를 무단으로 방출하여 주민들의 재산과 안녕을 위험했다는 죄목에 폭행이 추가됐다. 유치장 속 한은 익숙한 듯 낯설었다. 수도 없이 철창 속에 갇힌 나와 닮았지만 철창 밖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건 처음이었다. 모르는 놈들이 보면 갇힌 사람은 꺼내줄 조력자가 나타나기를 절실히 바란다고 생각하겠지만, 막상 같은 처지가 되면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다. 그저 닫을 수 없는 귀 때문에 들리는 소리만을 듣고 있을 뿐이다. 한의 표정이 그랬다. 슬픔도 분노도 원망도 없는 눈으로 어떤 움직임도 없었다.
영과 함께였지만 나는 공포를 느꼈다. 갑자기 철창 사이로 사장의 손이 보였다. 서서히 사장의 얼굴이 내 눈앞에 드리우더니 어느샌가 한의 옆에 내가 누워있었다. 답답했다. 한이 유치장 속에서 나온다 한들 그 역시 평생을 갇혀사는 기분을 지울 순 없을 테다. 이날의 분위기는 그로 하여금 잊을만하면 피어날 것이다. 눈곱이 말랑거리며 시큼해졌다. 콧등이 갈라지면서 유치장 속 내 모습은 흐릿해졌다.
물론 사장의 얼굴은 사라지지 않았다. 어떻게 된 일이었을까. 망상이 다시 펼쳐지려 할 때 뒤에서 누군가 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혼이길 바랐지만 그는 아니었다. 손의 마디마디마다 박힌 굳은 살의 촉감은 거슬렸고 누르는 힘은 다소 강했다. 증오가 섞인 연인의 마지막 악수 같은 질감이었다. 왠지 나를 잡아먹을 것만 같았다. 사장이었다. 망상도, 망상의 그림자도 아니라 실재하는 사장이었다. 악연도 여러 번이면 인연이라 불렀다. 분명 나는 원하지 않았다. 대체 인간들의 연은 얼마나 질기길래 이토록 물고 뜯어도 끊어낼 수 없을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24
한은 하루 만에 경찰서에서 탈출했다. 어떤 피해자가 다른 피해자들의 손해에 대한 보상을 해 주기로 약속했다. 혼의 아버지 즉 사장은 한을 매정하게 저버리지 않았다. 한은 유일한 자기 아들의 친구였다. 심지어 가출한 아들의 거처가 한의 집이라는 것 또한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왜 한의 집을 가장 먼저 들이닥친 인간은 사장이 아니었을까. 사장은 진짜 범인이 그의 아들이란 사실도 아는 걸까. 사장은 우리를 데리고 공원으로 이동했다.
공원은 낯설었다. 공원의 꽃들은 모두 떨어지고 나무는 앙상했다. 흙도 아스팔트처럼 딱딱했다. 나와 영만 변한 게 없었다. 사장은 먼저 모서리에 걸터앉더니 우리에게 옆자리를 가리켰다. 영이 노래를 부르던 무대 끝단이었다.
“영이가 노래하던 곳이지?”
“……. 오셨어요?”
“아니. 오진 못했고 우연히 유튜브에서 봤어. 노래 잘하던데?”
유튜브가 문제였다. 나는 외톨이였다. 개에게 스마트폰은 CCTV였다. 사장이 나의 위치를 알고 있었던 것보다 그는 노력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게 억울했다. 매일 그를 피하기 위해 썼던 내 모든 신경은 단지 세포 조각에 불과했다.
“오늘은 감사합니다. 아까 경찰서에서 듣기로는 아저씨가 센터 사건의 최초 신고자라고 하던데 이미 다 알고 있었어요?”
입을 꾹 다문 동생대신 형이 그에게 물었다.
“네가 범인이 아닌 걸 알고 있었지. 아빠가 돼서 어떻게 아들 흔적도 못 알아채겠니.”
사장은 작전의 진범이 혼이라는 진실을 알고 있었다.
“어떻게 알았어요?”
“아들이잖니. 혼이 나를 좋아하진 않아도 집을 나간 적은 없었어. 개 한 마리도 같이 없어졌고. 친척도 없고 학교도 안 가는 애가 가면 어딜 가겠어. 연락하고 지내는 친구가 너란 건 알고 있었거든. 그러다 우연히 화제의 강아지라면서 유튜브에 올라온 네 동생이랑 개를 보고 확신했지.”
역시나 내 예상이 맞았다. 근데 왜 범인을 알면서 경찰에게 신고를 했을까 싶었다. 범인의 위치까지 안다면 잡기만 하면 그만 아닌가. 언제부터 그렇게 잡아가는 것을 꺼려했다고.
“그럼 범인이 저희가 아니라 혼이란 건 어떻게 알았어요?”
“케이지 키가 어딨는지 아는 사람은 혼이 엄마랑 혼이 뿐이야.”
역시 키가 옷장 속 무더기로 쌓인 멜빵바지 안에 있는 건 이상했었다. 어쩌면 그날 뒷문을 나서면서 뒤를 돌았을 때 혼은 사장을 봤을지도 모르겠다. 혼의 눈물은 내가 생각한 것과 다른 온도였을까.
“그럼 저희 집으로 바로 오셨으면 됐잖아요. 왜 경찰에 신고를 하고 기다린 거예요?”
“정말 오랜만에 혼이가 웃는 걸 봤거든. 걱정이 돼서 따라갔는데 행복해 보이더라고. 그래서 그땐 잡을 수 없었어. 다만 위험하지만 않게 경찰에게 모른 척 가출청소년으로 신고를 했지. 보호차원에서 말이다.”
내 생각이 짧았다. 버려진 평범한 개와 자식을 잠시나마 동급으로 여겼던 건 실수였다.
“그런데 한아. 혼이는 어딨니?”
“집에 돌아오지 못할 거예요. 무사히는.”
“왜지?”
한에게서 공원보다도 차가운 향이 흘렀다.
“아저씨의 신고 때문에 저는 알바를 잘렸어요. 저희는 돈을 벌기 위해 밤낮 안 가리고 일자리를 찾아다녔어요. 혼이는 이게 다 자기 책임이라 생각했고요. 우리가 돈을 제대로 벌지 못하자 동생이 개를 데리고 다니면서 돈을 구걸했죠. 그러다 영이는 도둑놈으로 찍혀 학교도 다니지 못하게 됐어요. 저는 유치장까지 갔다 왔고요. 저라도 제가 혼이라면 이 모든 일의 시작은 자기로부터 시작됐단 걸 부정할 순 없어요.”
사장의 눈꺼풀이 떨렸다. 혼이 강식을 납치한 건 고사하고 작전 이후의 삶조차 몰랐던 눈치였다.
“그래서…… 혼이는 지금 어딨니?”
“저희도 몰라요. 아마 어디서 돈 벌려고 이곳저곳 뛰어다니고 있겠죠. 우선 저희도 같이 찾을 테니까 혼이부터 찾아봐요.”
오징어 다리처럼 사장의 열 손가락은 안절부절못했다. 한은 지난 혼과의 넉 달간의 외출에 대해 그에게 말했다. 나 또한 그들의 시간은 새로웠다. 한과 혼은 알바를 구하는 곳이면 아무 데나 문을 두드렸었다. 하지만 웬만한 일들은 부모의 동의나 중학교 졸업장을 요구했었다.
딱 하나의 일만 조건이 없었다. 미성년자라는 신분을 이용하여 어른들의 돈을 뜯어내는 작업에 투입되는 용역이었다. 남의 인생을 끝장내는 시나리오였다. 혼은 긍정적인 반응이었지만 한이 그를 매번 말렸었다. 다르게 말하면 지금 한은 내 옆에 있고 혼에겐 아무도 없단 뜻이었다.
한의 말을 듣고 나니 차라리 강식을 납치한 범인이 혼이길 바랐다. 그가 선택한 구렁텅이가 아직은 짚고 올라올 수 있는 깊이 정도이기를 소원했다. 혼만 아무것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