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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난시 09화

by 다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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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 서랍에서 혼의 스마트폰이 발견됐다. 요금 납부는 이미 다섯 달이나 연체 돼 유리거울에 불과했다. 놓고 간 건지 아니면 자신을 찾지 말라는 신호인지는 몰랐으나 나의 불안함을 고조시키는 징조였다. 다행인지는 모르겠으나 사장은 우리와 함께 움직였다. 덕분에 끼니와 방세 걱정은 없었지만 우리에게 더 이상 이것들은 필수적인 욕구가 아니었다.

동네부터 뒤졌다. 한은 지나가는 인간들, 식당에서 밥 먹는 인간들, 공원에 뛰어노는 인간들 모두에게 보이는 대로 혼의 얼굴을 보여줬다. 나는 동네 개들에게 강식의 행방을 물었다. 물론 정보를 얻는다 하더라도 그게 사실이라 보장할 순 없었다. 우린 그들이 기피하는 존재였다.

사장은 영과 동행했다. 우리가 주로 밖에서 혼을 찾을 때 둘은 사장의 집에서 그를 기다리며 전단지를 만들었다. 혼은 가출청소년에서 실종자로 경찰에 접수됐다. 어감만 달랐지 크게 변화된 건 없었다. 하루에도 몇 통씩이나 울리는 실종자 안내문자만 봐도 짐작할 법했다. 인간들은 사라진 인간에 대해선 궁금해하지 않았다. 단지 듣던 노래가 잠시 끊겼을 때 실종자를 죽이기 바빴다.

전단지를 붙일 공간이 마땅치 않았다. 이미 강식이 프린트된 종이들이 동네를 뒤덮었다. 한은 동네 사람들과 싸울 수밖에 없었다. 강식의 얼굴을 떼버리고 그 자리에 혼을 걸었다.

“학생, 순서를 지켜. 이게 먼저 붙어 있었잖아. 다른 데나 붙여.”
“아니, 지금 그깟 개가 사람보다 중요해요?”

“사례금이 차원이 다르잖아. 안 보여?”

하루에도 서 너 번은 이러고 다퉜다. 한이 떼어내고 혼을 붙이면 누군가 다시 혼을 떼고 강식을 걸었다. 마치 많이 붙이기 대회라도 열린 듯했다. 이번엔 나도 한의 편은 아니었다. 한은 여전히 혼을 범인으로 의심하지 않았다. 혼을 찾기 위해선 강식이 더 노출되어야 했다. 동네 인간들은 혼에 대해나 관심은 전혀 없었으니 말이다.


단서 발견은 내가 가장 빨랐다. 백이 나를 찾아왔다. 내가 요사이 경찰서를 들락날락거리는 동안 그녀는 행방불명된 강식에 대해 조사를 한 모양이었다.

“강식이가 어딨는 지는 모르겠는데 누구랑 있는지는 알아냈어!”

“누군데요?”

“영이었나? 그 노래하던 애보단 형으로 보이는 남학생이 강식을 케이지에 넣어서 가져가는 걸 봤대.”

백의 말은 반드시 검토가 필요했다.

“혹시 저랑 같이 있는 것도 봤다나요?”

“맞아! 어떻게 알았어? 그래서 네가 알 거 같아서 급하게 알려주러 왔지.”

그럴 때가 있다. 답이 답이 아니기를 바라면서 자꾸 답을 바꾸고 싶었다.

“제보해 준 놈은 믿을만해요?”

“당연하지. 강식이 옆 집 사는 친구가 직접 들은 거랬어.”

“그럼 강식이가 순순히 케이지에 들어가진 않았을 텐데 그건 모른데요?”

여러모로 이상했다. 옆 집 사는 녀석도 다른 놈한테 들었다는 게 수상했다.

“그게… 강식이가 아무 말 없이 들어갔대. 그 친구 말로는 아마 네 친구가 밥에 수면제를 탔던 거 같았대. 전에도 몇 번 맡아본 냄새였다고.”

“그건 말이 안 돼요. 강식이가 자신의 밥에 약이 든 걸 모른다고요?”

“나도 그렇게 생각해. 내 생각엔 강식이랑 네 친구가 아는 사인 거 아닐까?”

“그건 불가능해요. 혼은 원래 이쪽 동네 사람도 아니고 아는 사이였다면 아줌마가 모를 순 없죠.”

하나는 확실해졌다. 범인은 혼이란 사실. 수면제를 강식의 밥에 뿌렸는지는 알 수 없지만, 수면제 냄새를 맡는 건 가능했다. 사장과 혼을 구분하기 어려운 이유가 바로 그 향 때문이었다.

백의 추리도 크게 들리지 않아 보였다. 목격한 개의 제보 중 다른 건 나를 골탕 먹이려고 지어낸 걸 수 있지만 강식이 저항을 하지 않았던 것은 틀림없었다. 만약 짖었다면 적어도 근방에 살고 있는 개들 중 하나는 반드시 들었을 것이다. 또 나에게 말한 게 아니라 백에게 전달한 사항이었다.

강식은 조용히 잡혀간 게 맞다. 생각할수록 백의 말도 안 되는 경우의 수만 남았다. 혼과 강식이 알고 있는 사이여야만 했다. 그것도 서로 신뢰하는 사이로 만났을 때나 가능한 시나리오였다.

혼과 강식 둘 중 하나만 찾으면 된다는 것은 명확해졌다. 그러나 둘이 한 팀이라면 우리는 찾을 수 없다. 납치범과 납치된 자 중 누구도 돌아올 이유가 없다는 의미였다. 오히려 힘을 합쳐 더 멀어지면 모를까. 우리의 노력이 아니라 그들의 의지에 의해서만 혼과 강식을 볼 수 있게 됐다. 하지만 나에겐 그들을 부를 만한 능력이 없다.


한은 여전히 강식의 전단지를 찢고 다녔다. 하지만 전단지를 붙인 지 삼 일 후부턴 동네 벽면에서 강식의 얼굴이 사라졌다. 동네 주민들이 직접 나서서 떼어냈다. 오히려 한에게 혼의 얼굴을 같이 붙이자며 제안했다.

“갑자기 뭔데요?”

“소식 못 들었구나.”
“무슨 소식이요?”

“개가 집을 나간 게 아니라 납치된 거래. 범인도 경찰이 알아냈고.”

“범인이 누구래요?”

한 여자는 벽면을 가리켰다. 손끝은 혼의 눈에서 멈췄다.

“다행이다.”

한은 한숨을 내쉬며 안도의 표정을 지었다. 여자를 포함한 주민들은 분노라곤 전혀 없는 어조로 화를 냈다.

“다행이라고? 친구가 납치범인데?”

“친구는 어딨니?”

옆에 있던 남자는 여자를 밀치며 한에게 다가왔다. 주변 인간들이 한을 둘러싸고 정중하게 혼의 위치를 물어댔다.

“저도 모르니까 이러고 있죠. 어딨는지 알아내도 제가 왜 알려줘요.”
“다 같이 찾으면 빠르고 좋잖아.”

“정말 몰라? 갈 만한데라도 없어?”

모두가 한의 입만 뚫어지게 쳐다봤다. 백 미터 달리기의 출발선에 자세를 잡은 선수들처럼 한이 입을 여는 순간 그곳으로 튀어나갈 듯 한 눈빛이었다. 한과 가장 붙어있던 남자 하나는 혹시 알고 있으면 자기한테만 조용히 말하라고 속삭였다.

“정말 몰라요.”

한은 사장을 찾았다. 사장은 이미 알고 있었다. 우리가 오기 몇 분 전에 경찰에게서 자신의 아들이 개 납치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된 사실을 통보받았다. 그는 경찰에게 혼의 자취를 모른다고 진술했지만 짐작하는 곳이 있는 듯했다. 그는 우리를 차에 태워 집을 나섰다.

“아저씨. 경찰은 왜 혼이가 범인이래요?”

차 안의 침묵을 깬 건 한이었다.

“혼이가 직접 개 주인에게 전화해서 돈을 요구했대. 저번 사건의 주동자도 본인이라고 경찰에게도 자백했대.”

“혼이가요? 그러면 안 되는데.”

나도 같은 생각이었다. 그날 우리 작전의 무게는 한이 이미 짊어졌다. 혼이 그 죄까지 뒤집어쓸 필요는 없었다. 자신의 이름을 밝힌 것도 그의 실수였다. 경찰은 이름만 조회하면 집 주소, 전화번호, 주민등록번호, 가족관계 이외에도 여러 정보들을 단번에 알 수 있었고, 그가 잡히는 건 시간문제였다. 우리가 먼저 혼을 찾아내 강식을 몰래 주인집에 놓고 오면 그저 개 한 마리의 가출이 될 수 있었는데, 물거품이 됐다. 다만 내가 아는 혼은 그렇게 허술한 인간이 아니었다. 사장도 비슷한 생각이었는지 속도를 높였다.


26


멀미할 정도로 달려 도착한 곳은 사장의 저택이었다. 지금은 나를 철창에 넣으려고 온 것이 아님을 알았음에도 네 다리는 바람에 흔들렸다. 그는 집을 샅샅이 뒤졌다. 우리는 아무도 자신의 역할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벙찐 표정으로 서 있었다.

“아저씨. 잠시만요. 여기는 왜 온 거예요?”

“좀 있으면 경찰이 이리로 올 거야.”
당연한 소리였다. 단서를 찾기 위해 범인의 집으로 경찰이 오는 건 나도 알았다. 초조한 사장의 모습에 아무도 말을 잇지 못했다. 안방에서 나와 거실 중앙에 선 그는 주저앉아 주절거렸다.

“집에 있을걸…… 돈도 없는 애가 열흘 넘게 어딜 가겠어…… 분명 집에 왔을 거야. 왜 혼인 줄 몰랐을까…….”

사장은 마취총에 맞은 듯 점점 이성을 잃어갔다. 단순히 경찰에게 자신의 비밀 따위가 들킬까 봐 밀려드는 걱정은 아니었다. 아빠의 다급함이었다. 너무 어렸어서 얼굴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나를 어디론가 데려가려는 인간에게 맞서 짖어대던 아빠의 음성은 뚜렷이 안고 살았다.

“일부러 경찰에게 다 말한 거 같아.”

“네?”

“모든 걸 다 자기 책임으로 돌리려나 봐… 우리가 자기를 숨겨줄게 뻔하니까. 이것 좀 같이 봐줄래…….”


03.19.

개를 살인하는 아빠가 혐오스럽고 매일 같이 잡혀오고 죽어가는 개들의 울음소리를 듣는 게 너무 힘들다. 살려달라는 울부짖음에 저녁을 먹고 있는 나는 아빠보다도 증오스럽다. 오늘 밤 살인자의 아들로서 개들에 대한 죄를 갚으려 한다. 하루만이라도 내가 개가 됐으면 한다. 미안하단 말을 꼭 해 주고 싶다. 사과와 용서를 구하고 싶다. 나는 오늘 반드시 나의 작전을 성공한다.


03.20.

나의 작전은 성공했다. 모든 개를 탈출시켰다. 혼자라 버거웠지만 개들이 나의 진심을 알았는지 다행히 짖지 않고 잘 따라줬다.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아직 그 아이에게 진 빚이 많이 남아있다. 앞으로도 계속 우리 집으로 잡혀 오는 개들을 구해줘야 한다. 다음 작전을 위해 친구 집에서 머물기로 했다. 물론 그에겐 비밀이다.

04.05.

생각보다 친구와 친구 동생은 열심히 살고 있다. 더 이상 둘에게 신세만 질 수는 없다. 하지만 돈을 벌 방법이 없다. 돈이 있어야 작전도 가능하다. 모두가 일을 하는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나오긴 했지만 뭘 해야 하는지 이제 모르겠다. 개들을 탈출시켜야 하는데. 진짜 그러고 싶은 건 맞는 건지 요즘은 고민된다.


06.17.

두 달 만에 일기를 쓴다. 일기 쓸 시간도 없었지만 사실 쓸 내용이 없었다. 매일이 똑같았다. 눈 뜨자마자 일을 찾아다녔지만 매번 거절당했다. 그럴 때마다 집으로 돌아갈까 후회했다. 하지만 여기서 그만 두면 정말 나는 아무것도 할 게 없는 사람이 될까 두렵다.


09.27.

오늘은 특별했다. 드디어 돈을 벌 방법을 찾았다. 잘못된 건 알지만 가장 확실했다. 잠시면 됐다. 작전도 다시 할 수 있다. 이번 작전이 끝나고 나면 나는 모두에게서 잊히겠지만 그 아이에게 쌓인 빚은 갚을 수 있다. 강이도 좋아하겠지.


혼의 8개월은 5일로 설명됐다. 한은 마지막 줄을 소리 내어 읽을 때 목소리가 목 속으로 먹어 들어갔다.

“한 개도 없어요. 우리 얘기가. 같이 했는데…….”

맞다. 일기의 초점은 이거다. 경찰이 일기를 본다면 필체도 혼 본인의 것이며 없는 일을 만들어 낸 것도 아니니 의심 없이 그에게 모든 죄를 물으려 할 것이다. 한과 영에 대한 시선도 바뀌겠지. 한 미성년자 형제의 억울했던 누명과 고통, 착한 아이들을 내몰았던 어른들, 이 모든 것의 시작은 사회가 버린 악마로부터…이런 식으로 언론은 보도를 하겠지. 인간들은 죄책감에 따른 동정심에 조 형제에게 많은 지원을 하겠지. 한은 평범한 일자리를 구하고 영은 다시 학교를 다니겠지. 그럼 혼은 어떻게 되는 걸까. 혼자 속으로 떠들었지만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모두가 알고 있다.

“그런데 저기에 쓰여 있는 아이는 누굴까?”

모두가 혼의 일기 속 시간에 빠져있을 때 영은 새로운 정보를 찾았다. 아이에 대해선 다들 모르는 눈치였다. 모르는 게 어쩌면 당연했다. 이 중 그 누구도 혼과 깊게 대화해 본 적이 없었다. 나 역시 당장 눈앞에 보이는 한과 영에게만 관심을 뒀지 혼에게 집중한 적은 작전 이후로 없었다. 아빠라는 사장조차 아들의 아이를 모르는 듯 입을 열지 않았다.

내가 가장 궁금했다. 마지막 줄에 적힌 대로 왜 나는 누군지도 모르는 아이의 빚이 사라지는 것에 좋아해야 할까. 내가 아는 인간이라곤 혼, 한, 영, 사장, 그리고 옛 주인집 식구들 정도였다. 아이라고 할 만한 인간은 없었다. 한은 당장 아이의 정체까지 밝히기엔 버거워 보였다. 한이 질문하지 않으면 아이에 대한 정보는 잠시 꼬리에 숨겨야 했다.


아직 혼을 설득할 수 있는 기회는 두 번 정도 있었다. 강식을 거래할 때와 마지막 작전을 개시하기 직전까지가 남아 있는 그와의 대화시간이었다. 강식을 거래할 땐 아마 주변에 경찰이 잠복해 있겠지만 혼을 잡아두지 못할 경우를 대비해 마지막 작전이 무엇인지 알아내야만 했다. 하지만 감조차 오지 않았다.

우리가 일기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때 사장은 쉬지 않고 2층을 뒤졌다. 형체를 알 수 없는 물건들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진동과 사장의 제발이란 소리가 1층의 우리를 일기로부터 깨웠다.

“없어. 없다… 고!”

인간이 극도로 미치면 이런 모습이구나 싶었다. 밤거리의 취객보다 눈동자가 뒤집혀 있었고 자기 머리카락을 쥐어뜯고, 가구 위에 있는 물건이란 물건과 서랍과 장롱 속에 있는 크고 작은 것들을 보이는 대로 밀쳐냈다.

“아저씨. 진정하세요.”

“뭐 찾아요? 저희도 같이 찾을게요.”

한과 영은 사장의 양팔을 잡았다.

“이미 없어… 없는데 어떻게 찾아!”

도무지 진정을 하지 못했다. 더 이상 아무도 사장의 몸에 어떤 터치도 할 수 없었다. 그의 호흡에 살기가 돌았다.

산 초입에서 드문드문 들리는 사이렌 소리에 사장의 눈이 돌아왔다.

“아저씨 뭐가 없는데요?”

“총. 총이 없어졌어.”

전혀 생각지도 못한 단어를 들었다. 내가 숱하게 맞았던 그 총? 수면제가 아니라 마취총으로 강식을 재웠던 거였나. 그래서 아무도 강식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던 건가. 아니면 스스로 마취를 하려는 걸까. 지금 이런 상상을 하는 건 분명 상식적으로 맞지 않았다.

“ 총이요?”

“사냥용 산탄총 한 자루와 마취총 한 자루가 있어야 하는데 산탄총이 없어. 겨울에 멧돼지들이 내려와서 준비한 총인데… 그게 없어.”

“설마 혼이가 개를 죽이겠어요. 아닐 거예요.”

“개? 차라리 개를 쏴 혼아…….”

“맞아요. 아저씨 혼이형은 안 그래요.”
영까지 형을 거들어 사장에게 안심을 심었다.

“그러니까. 절대 개는 안 쏠 거 같아서 그래. 자기를 쏘면 쐈지.”


27


경찰이 들이닥쳤다. 일기는 멜빵바지 속에 숨겨 놓았던 철창 키처럼 한이 자신의 옷 안쪽에 숨겨 놓았다. 경찰들은 들어오자마자 일사불란하게 집 안 곳곳을 수색했다. 책임자로 보이는 남자가 사장에게 총기함을 열어 달라 요청했다. 한참이 지나서야 알게 된 사싱ㄹ인데 인간들은 총을 구매하거나 소지하기 위해선 국가기관에 신고를 해야 했다. 아무래도 남자는 혼을 사춘기 아이의 비행으로 보지 않고 중범죄자로 취급하는 듯했다.

대저택이 헐벗겨지는 데는 두 시간이면 충분했다. 그들도 얻은 거라곤 총이 사라졌다는 사실 뿐이었다. 일단 일기를 우리가 먼저 찾아서 다행이었다. 그게 혼의 계획에 어떤 차질을 줄 진 모르겠지만 우리가 갖고 있는 편이 나았다. 마지막으로 과학수사대라는 인간들이 2층에서 내려오면서 책임자에게 작게 소곤댔다. 귀에 딱 붙여 말하는 바람에 뭐라고 하는지 정확히 듣진 못했다. 책임자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무전을 했다.

경찰들이 한순간에 집을 빠져나가 경찰차로 향했다. 안심하려는 찰나에 다시 차문이 열렸다. 모습이 변했다. 옷이 두꺼워졌고 총을 들었다. 지나갈 때마다 무거운 공기가 내 배를 때렸다.

나는 안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잡으러 갈 때 인간의 모습을. 나는 물기라도 하지만 혼은 위험한 존재가 아니다. 정말 그가 총을 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아무리 짖어도 그들은 나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신속하게 팀을 나누어 뒷산을 포위하여 오르기 시작했다. 우리도 나눠져 뒤따랐다. 지름길을 아는 사장은 경찰의 부탁으로 앞장서서 그들을 도울 수밖에 없었다. 드는 생각은 딱 하나였다. 이번에도 내가 먼저 찾아야 한다. 모든 신경을 코로 집중해서 한과 영에게 소리쳤다. 따라오라고.


혼의 어떤 자취도 쉽게 느껴지지 않았다. 날이 어두워지기 전 경찰들은 사장의 집으로 복귀했다. 포기한 게 아니라 손전등과 조명 같은 장비를 점검하며 새로운 작전을 준비 중이었다. 우리의 작전회의와는 차원이 달랐다. 간결했다. 목표가 명확했고 과정은 차분했다.

다시 팀을 나누던 때에 책임자는 모두에게 조용히 하라고 명령했다. 그는 누군가와 통화를 하더니 무전기를 입에 갖다 댔다.

“개 주인의 전화다. 방금 용의자가 거래를 제안했다. 거래 장소는 남헌동 공원 정상의 정자이며 시간은 지금으로부터 한 시간 뒤인 7시 정각이다. 서둘러 잠복하러 간다. 돈을 요구했다. 거기서 우리는 그를 체포한다. 나와 이 반장, 김 반장을 제외하곤 모두 그쪽으로 가도록.”

남헌동은 산 너머의 동네다. 사장의 집에서 산을 타고 걸어간다면 적어도 세 시간은 족히 걸린다. 아직 혼은 거래 장소까지 도착하지 못했을 것이다. 보통은 왜 그곳인지, 왜 그 시간인지에 대해 고민을 할 테지만 시간이 없었다.

사장은 따라가지 않았다. 오히려 손전등 두 개와 물병에 물을 가득 채워 다시 산을 올랐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영은 이 반장이란 인간과 사장의 집에 남았고 나와 한도 사장의 뒤를 따랐다. 우리 뒤로 책임자와 김 반장도 우리와 다른 방향으로 산을 올랐다.


거래 시간 20분 전 우리 셋은 반대쪽에서 산을 수색한 경찰 둘과 같이 있기로 했다. 실시간으로 무전상황을 듣고자 사장이 요청했다. 주인은 약속시간 십 분 전에 돈가방을 정자 앞에 놓았다. 경찰들은 포위망을 좁혔다.

“범인이 돈을 들고 개가 있는 곳으로 가기 전까진 자리를 지킨다. 어차피 개가 있는 곳은 공원 근방일 테고 그쪽 역시 잠복 중이니 우리는 범인의 무장유무만 확인한 후 대기한다.”

예정대로 혼은 7시 오 분 전에 정자로 나타났다. 그는 산탄총 한 자루를 실제로 몸에 매고 있었으며 개는 데려오지 않았다. 그는 조심스럽게 돈이 든 가방을 챙겨 여유 있는 걸음으로 공원을 내려가는 척 샛길로 빠졌다. 샛길은 그가 넘어온 사장의 집 뒷산으로 이어지는 길이었다. 등산로로 닦인 길이 아닌 야산이었다. 책임자는 잠복된 경찰들에게 혼이 갑자기 경로를 이탈하지 않는 이상 공원과 산의 경계지점에 대기하라 무전했다. 그는 지형을 잘 알고 있었다.

책임자는 이 반장이 집 쪽으로 향하는 산길의 입구에 있도록 위치를 조정했다. 책임자와 김 반장은 꼭대기로 올랐다. 한 시간을 같은 자세로 기다린 터라 춥기도 하고 다리가 조금씩 저려왔다. 그 순간 펑! 펑! 펑! 펑! 총성이 네 번 울렸다. 일시적으로 귀에 이명이 들릴 정도로 가까이서 나는 소리였다. 두 번째와 네 번째 소리는 멀리 퍼져가는 진동인 걸 보아 메아리쳐 온 총성인 듯했다. 혼은 산탄총 두 발을 연속적으로 쐈다. 책임자와 김 반장 그리고 사장과 한은 별처럼 잠깐 반짝였던 총구 쪽으로 달렸다.


한은 경찰의 속도에 맞춰 뛰어가던 중 나무뿌리에 걸려 넘어졌다. 일어나지 못했다. 발목이 살짝 돌아갔다. 잠시 눈을 돌린 사이에 모두의 뒷모습은 어둠에 감춰졌다. 책임자는 권총을 하늘에 두 발 발사했다. 혼이 쏜 것만큼 크진 않았지만 소리가 퍼져나가는 속도는 훨씬 빨랐다. 내가 맞았던 마취총과는 파괴력이 달랐다. 저 총알에 맞은 혼을 상상하면 한의 발이 보이지 않았다.

펑! 혼의 세 번째 총성이 울렸다. 어둠 속에서 소리만 듣고 있으니 너무 고통스러웠다. 총성이 들려도 무서웠고 누군가 맞았을까 봐 총성이 멈춰도 다리가 떨렸다. 한의 온몸은 사시나무 떨듯 몸을 가눌 수 없는 상태였다.

처음 두 발은 강식을 쏜 걸까. 강식이 나타나지 않은 이유가 혼의 총에 맞아서일까. 화약냄새가 코끝을 마비시켜 냄새로 찾는 건 불가능했다. 세 번째 총성 이후 권총과 산탄총의 총성이 모두 들리지 않자 나도 모르게 살인자로 변한 혼의 모습을 떠올렸다.

희미하지만 전화 벨소리가 막힌 고막 사이를 찢었다. 한의 스마트폰이 울렸다.

“형! 개 여기 있어!”

영의 목소리였는데 믿을 수 없는 내용이었다. 혼은 지금 경찰과 총격전을 벌이는 중인데 어떻게 강식이 사장의 집에 있단 말인가.

“영아. 그 개 맞아? 다른 개 아니고?”

“전단지에 붙어 있던 개랑 똑같아.”
“집 안에 있었어?”

“그건 모르겠는데 1층에 내려오니까 거실에 있었어. 내가 케이지에 넣어서 그쪽으로 갈까?”

“아니! 개 데리고 집에 있어.”

한은 잔상처럼 꺼져가는 영의 대답은 듣지 않은 채 전화를 끊고 어딘가로 바로 전화를 걸었다.

“아저씨! 그 개가 아저씨 집에 있데요. 영이한테 방금 전화 왔어요.”

사장도 나와 같은 반응이었다.

“아직 혼이는 산에 있는데 개가 우리 집에 있다고?”

“네! 영이가 데리고 있어요. 혼이는요? 보여요?”

“아니 아직. 어두워서 아무것도 보이지가 않는다. 경찰도 아직 못 찾은 거 같아.”

“지금 이해가 안 돼서 그러는데 개는 무사하고 혼이는 보이지 않는데 대체 총소리는 왜 난 거고 경찰은 뭘 잡으려는 거예요?”

스마트폰 너머로 권총의 총성이 들려오면서 전화가 끊겼다. 나는 더 이상 한의 곁에서 총성만 듣고 있을 순 없었다. 죽을힘을 다해 마지막 총성이 났던 쪽으로 뛰었다.


탈출하듯 달렸다. 소리의 진동이 가물가물 해져 마지막 갈림길에서 방향을 고민하는 찰나에 다섯 번째 총성이 터졌다. 바로 앞이었다. 인간들의 발소리도 함께 들렸다. 얇은 줄기의 빛 뒤로 하늘을 향해 총구를 맞춘 혼이 번쩍였다. 본능적으로 짖었다. 갑자기 내 눈으로 몰아친 손전등의 빛 때문에 눈을 찡그려야 했지만 혼에게서 초점을 잃진 않았다. 혼은 우리의 작전 때처럼 울고 있었다. 눈물은 양쪽으로 갈라지지 않고 그대로 뚝뚝 방울의 형태로 떨어졌다. 하지만 입은 웃고 있었다.

자신을 향해 달려가는 나를 한 번 보더니 곧장 다시 총구는 하늘과 일직선을 이루었다. 거의 다 왔다. 제발 쏘지 마라며 짖어댔다. 나의 외침과 함께 증폭되던 인간들의 발소리가 사라졌다. 펑! 혼의 여섯 번째 총성과 함께 뻥! 날카로운 권총의 총성이 내 귀를 뚫었다. 산탄총 총구와 혼은 땅으로 처박혔다. 내 귀를 통과한 총알이 혼의 등을 뚫었다. 능선이 피로 물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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