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브런치북 난시 10화

by 다날


28


책임자의 총알은 혼의 왼쪽 날개뼈와 어깨 사이에 박혔다. 총알이 뼈를 돌려 깎으며 으스러트린 고통에 의식을 잃었다. 혼은 한쪽 손목에 수갑을 채인 채로 병원 침대에 누워있었다. 의사의 퇴원 조치가 떨어지기 전까지 당분간 그는 세계와 단절되겠지만 깨어나는 순간 집으로 돌아가지 못할 거 같았다.


나는 강식을 찾아갔다. 범인의 정체도 체포도 모든 상황이 마무리 됐지만 일기의 아이는 아직 밝히지 못했다. 또 혼의 마지막 작전에 대해서도 물어야 했다. 강식의 집은 보안이 한층 더 두터워졌다. 대나무만큼 높은 외벽 위에 임시로 고정시킨 쇠갈고리들은 위압감을 더했고 안쪽엔 추가로 철근을 댄 대문을 설치했다. 염라대왕의 궁궐 문이 떠올랐다.

강식은 외벽 안쪽 벽면에 앉아있었다. 다행히 외벽의 밑은 허술했다. 인간의 눈으론 차마 내려다보기 힘든 아래쪽 홈에 몸을 꼬아 비비면 보안이 뚫렸다. 강식은 내가 올 거라 예상했는지 약속된 만남 마냥 정원으로 나를 안내했다. 정원은 헹했다. 잔가지만이 발바닥을 찔렀고 잔디는 솜 빠진 베개 같았다. 강식의 표정은 초겨울의 공기처럼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고 담담했다.

“몸은 괜찮아요?”

“그거 물으러 왔어요?”

부드러운 말투와 어울리지 않는 태도였다.

“혼과는 무슨 관계예요?”

“이 정도면 이제 친구지 않을까요?”

“좀 더 솔직하게 말해 주세요.”

강식은 정말 들어야겠냐는 눈짓을 보냈지만 나는 고개를 돌려 피했다.

“태어나자마자 분양돼 엄마의 젖 한 번 물지 못한 채 헤어졌어요. 저를 입양 한 주인은 얼마 뒤에 파양을 했고 나는 보호센터에 맡겨졌어요. 안락사되기 이틀 전 한 아이가 나를 들고 온 동네를 돌면서 데려가 달라고 빌었어요. 마지막 날 극적으로 나를 받아준 집이 바로 이 집주인이고 그때 그 아이가 혼이에요.”

“그럼 동네 사람들이 혼을 모를 리가 없잖아요.”

백을 대하듯 그의 음성 한 톨 한 톨 곱씹었다.

“주인이 3년 전에 이곳으로 이사를 했어요. 원래 집은 혼이 살던 동네였어요.”

“그때의 빚을 갚기 위해 순순히 혼을 따라갔어요?”

“그건 아니에요. 빚은 이미 갚았거든요.”
“그럼 왜?”

“행복해 보였어요. 두 달 전쯤 혼이 저를 찾아왔을 때 한이란 친구에 대해 말하면서 웃었어요. 옛날에 종종 집에 찾아왔어요. 나랑 놀 땐 잘 웃었는데 어느 날부터 웃은 적이 없어요.”

사장과 내가 봤던 그의 미소와 같은 농도였을까. 이상하게 혼의 웃음은 검은색이었다. 너무 어두워 오히려 주변이 밝아졌다. 인간들이 보기엔 그깟 웃음에 목숨을 걸까 싶지만 한 번이라도 미소를 지켜보기 위해 노력해 본 적도 없다면 그런 의문은 접어두길 바란다.

“당신이라면 당신이 혼을 따라갔을 때 혼이 치러야 할 대가를 예상했을 텐데요?”

“물론 혼이 짊어질 무게를 모르지 않았어요. 하지만 다리만 있으면 짓누르는 힘 따위는 혼자서도 버틸 수 있어요. 그렇지만 한 번 잃은 웃음은 혼자 찾을 수 없어요. 그 웃음이 한이고요.”

그래. 생각해 보면 내 목덜미를 잡고 누를 때도, 마취총으로 엉덩이를 함몰시킬 때도, 입을 잡고 머리를 쳐 내릴 때도 나는 어떻게든 버텨냈다. 그때마다 다시 웃을 수 있는 건 자존심이자 전부였다.

“그리고 오히려 난 그쪽을 도운 거 아닌가요?”

혼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고자 던진 물음은 아닌 듯했다. 나를 시험하는 기분이었다. 혼이 저렇게 된 것과 저렇게 돼서 더 이상 작전을 할 수 없게 된 것 중 무엇이 나에게 중요한지 선택하라는 문제 같았다. 어느 쪽을 택해도 마땅한 변명이 요구됐다.


“집에서 일기를 봤어요. 거기에 아이라는 인간이 나오는데 누군지 알아요?”

주제를 바꾸고 싶었다. 작전에 대해서 물어볼수록 한없이 작아지는 내가 싫었다.

“아마 연이 같네요.”
“그게 누군가요?”

“주인집에 혼과 동갑인 딸이 있어요. 혼의 여자친구였어요. 이 집으로 온 이후로 혼은 자주 우리 집에서 연이와 놀았어요. 둘은 학교에서 같이 키우던 개가 있었어요.”

그는 쉽게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순간 납치 때의 충격과 고통이 그를 괴롭히는 듯 온몸을 흔들었다. 무리하게 물어보진 않았다. 강식은 잠시 정원을 한 바퀴 돌고 나서야 다시 안정됐다.

“그 개는 태어난 지 두 달도 안 돼서 버려진 아이였어요. 평소 연이는 보호센터의 일을 자주 도왔어요. 완이는 허구한 날 학생들의 장난감으로 발에 치이고 선생님들과 학부모들은 그를 없애려고 별 짓을 다했죠. 아, 완이가 그 아이 이름이에요. 매일 맞고 쫓기던 완이는 결국 폭군이 됐어요.”

“보호센터로 데려갔으면 되지 않나요?”

“연이가 제안했지만 혼이 강하게 반대했어요. 연이와 혼이 알고 있는 센터는 달랐어요. 연이에겐 보호소였지만 혼에겐 친구들의 죽음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듣게 하는 고문의 방이자 사형소일 뿐이었어요. 그런 모습은 들키고 싶지 않아 했어요.”

혼이 아빠와 집을 증오한 건 사실이었다. 내가 유난히 특별한 개라서 나를 구한 게 아니었다 보다. 하지만 왜 잘 견디다 나에게서 농축된 증오가 폭발한 건지는 여전히 궁금했다. 나는 연이와 닮지 않았다. 물론 나도 내가 버려진 과거를 다른 이에게 알려지는 게 두려웠다. 모든 것이 내 잘못처럼 느껴졌다. 상황은 다르지만 혼도 그런 이유이지 않았나 싶다.

“그래서 완이는 어떻게 됐나요?”

“완이는 사람들에게 위협을 가하고 때론 물었어요. 덩치가 커지면서 결국 처리의 대상이 됐어요. 그 뒤는 당신이 아는 방법으로 끌려갔어요.”

“안락사당했나 보네요.”

“아니요. 차라리 그랬다면 좋았을지도 몰라요.”


결말이 틀렸다. 혼의 집에서 나올 수 있는 비극적인 결말은 안락사였다. 한 가지 경우가 더 있지만 완이는 해당되지 않았다. 교통사고나 인간의 참혹한 폭행으로 인해 심각한 부상을 입은 상태로 열흘을 버티지 못하고 철창에서 죽는 경우였으니 말이다.

“완이는 철창 속에서 더 난폭해졌어요. 밥을 주거나 물을 갈아주기 위한 틈조차 허락하지 않았어요. 유일한 예외라면 연이었죠. 어쩔 수 없이 연이가 완이를 관리했어요. 혼은 나를 들고뛰었던 것처럼 온갖 사이트에 입양 글을 올리고 훈련소도 찾아가 완이를 받아달라 부탁했어요. 하지만 그는 이미 모두를 믿지 않고 세상에 증오만 남은 상태의 악마였어요. 안락사되기 전날 밤 혼이 결국 연이에게 키를 줬어요.”

익숙한 전개였다. 꼭 내가 완이가 된 듯했다. 난폭한 개는 아니었지만 혼에게 죽음의 문턱 앞에서 삶을 빚진 놈이었다. 분명 이 스토리의 끝은 비극이겠지. 그래서 혼은 다시 한번 나를 탈출시켰겠지. 완이에서 시작된 오기가 연이를 위한 복수의 동기가 됐고 그 수단이 나였던 거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저처럼 탈출에 성공했나요?”

“탈출과 죽음이 다르다면 성공이라 할게요.”

“인간들에겐 몰라도 우리에겐 똑같죠. 그건 실패겠네요 그럼. 죽음에서 탈출해야 성공이라 하는 게 맞으니까.”

“그렇다면 완이는 실패했어요.”

강식은 대화를 피할 마음이 없었다. 작정하고 모든 과거를 직면하는 음성이었다.
“완이는 철창에서 나와서 연이 곁에 있었어요. 센터 밖으로 나갈 순 없었어요. 혼도 자리를 피해야 했죠. 그의 증오 대상 중 하나였으니까요. 결국 완이는 또 난동을 부렸어요. 무방비 상태의 입양 준비 중인 개들을 물었어요. 연이도 말릴 수 없는 광기였어요. 때마침 사료를 들고 오던 혼을 향해 달려가 그를 물으려 했어요. 순간 펑하고 불꽃이 튀었어요. 혼의 아빠가 완이에게 산탄총 한 방을 쐈고 그 자리에서 완이는 죽었어요.”

혼과 사장에게 산탄총은 단순한 무기가 아니었다. 서로에게 가장 소중했던 존재를 앗아간 둘의 죄책감이었다. 허공에 총알을 쏘던 혼의 마지막 모습이 귀를 스쳤다. 마지막 총알이 발사될 때 그의 웃음은 아름다웠다. 모든 총알이 사라져 가벼워진 총보다 홀가분해 보였다.


증오가 깊었다. 사랑하는 존재의 머리가 터지는 모습을 눈앞에서 본 연, 그런 연의 눈을 바라보며 완이의 피에 젖은 혼, 아들과 아들이 사랑하는 여자를 동시에 잃은 사장 모두 아팠다. 문제는 누군가의 죽음엔 책임이 따른다는 것이다. 이건 모든 세계에서 그랬다.

완이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을 짊어져야 하는 이는 이 셋 중 누구였을까. 완이를 풀어준 혼? 끝까지 완이를 지켜주지 못한 연? 완이의 머리통에 총알을 박은 사장? 누구 하나 당신이라 답할 수 없었을 테다. 가장 무서운 게 책임질 자가 없는 죽음이었다.

살아남은 자들은 각자의 죄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른 이의 실수를 깊이 파고들거나 죄책감을 홀로 뒤집어쓰기 위해 자신의 실수를 증폭시킨다. 혼은 처음부터 끝까지 후자였다. 다만 자신을 맨홀로 집어넣는 과정에서 미처 뚜껑을 닫지 못했다. 어둠 속에서 한 줄기의 빛에 의존하게 된다. 그 빛은 사장에 대한 증오인 동시에 증오가 아니었다. 보통은 순수하고 여린 자의 몫이었다.


강식은 나의 충격과 상관없이 말을 이었다. 처음이자 마지막인 듯 자기가 아는 모든 걸 쏟아냈다.

“연은 오랜 시간 정신과 치료를 받았지만 아직도 버려지거나 사나운 개를 보며 힘들어해요. 혼은 연을 볼 수 없었고요. 학교에선 살인자의 아들로 낙인찍혀 전교생이 연의 편에 서 혼을 욕했어요. 경멸스러운 무시였어요. 죽은 인간 취급을 했어요. 결국 연과 나는 이곳으로 이사를 왔어요.”

더 물을 이유가 없었다. 혼의 모든 모습이 하나의 퍼즐처럼 딱딱 들어맞았다.

“그래서 나는 혼에게 진 빚을 갚았어요.”

“고작 이번 일로요?”

단지 강식의 뻔뻔한 태도에 화가 났다. 목숨을 빚진 은혜가 단순한 동행이라니 어이가 없었다. 정말 갚으려면 따라가지나 말았어야지.

“완이가 죽고 난 뒤 혼이 내게 부탁을 했어요. 연이가 다시 개를 사랑하고 웃을 수 있도록 옆에 있어달라고. 나는 그 약속을 이번에 지켰어요. 연이가 다시 웃었어요.”

“당신이 납치에서 돌아온 날을 말하는 건가요?”

“맞아요.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내가 무사히 돌아온 것보단 범인이 혼이라는 사실에 환한 미소를 지었어요.”

“연이는 이제 혼에 대한 분노는 없어요?”

“처음부터 없었어요. 혼의 아빠에 대해서도 물론이고요. 만나고 싶어 했지만 기다렸어요. 혼이 와 주기를.”


29


행복했던 날들은 고통스러웠던 일말의 순간을 뚫고 올라올 수 없었다. 나도 주인에게 버려졌지만 이제는 그들을 증오하지 않는다. 특히 나를 감싸주던 장녀를 미원한 적은 없었다. 그러나 아직도 가끔 그때를 떠올리면 억지로 입가에 힘을 주어도 웃음이 지어지진 않았다. 나도 모르게 장녀와 마당에서 놀고 같은 침대에서 잠을 자며 식탁 옆에서 같이 밥을 먹던 시간을 나로 하여금 의심케 했다. 의심은 불신이 되어 나를 괴롭혔다.

물론 고통이 나와 혼을 세상의 반란자로 만들진 않았다. 상처와 고통은 우리에게서 소중한 존재를 뺏어갔지만, 우리를 가둔 건 우리를 모르며 우리도 모르는 존재들이었다. 그들은 우리의 과거를 이용해 정당한 기회를 앗아갔고 세상에서 우리를 사라지게 만들었다. 적어도 나의 작전은 그들에게 우리의 존재를 알리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다른 방법으로 또다시 우리를 지우려 할 것이다. 혼의 범죄 동기와 성장과정을 밝혀 인간들의 동정심을 유발하며, 한을 개입시켜 사회의 문제로 확대할 게 분명했다. 항상 그래왔으니까. 여전히 우리의 아픔을 건드리는 일일 뿐이다. 아마도 그들은 자신들에 대한 복수가 두려워 우리를 불쌍하고 보호받아야 할 존재로 고정하고 싶을 테다. 우리가 할 일을 도움 받는 존재로 정해 놓는 것이다. 왜냐면 우린 아직 세상의 어떤 쪽에도 속하지 못해서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는 새로운 존재였으니까.


그래서 혼은 달랐다.

“마지막으로 혼의 마지막 작전이 뭐였는지 알려줘요.”

“작전은 이미 실패했어요.”

분명 혼의 마지막 작전엔 자금이 필요했다. 어떤 일인지는 몰라도 인간 세계에서 새로운 도전은 일정량의 돈을 요구했다. 첫 작전 때는 한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동수단도 지원됐으며 신뢰비 역시 필요 없었다. 배신당하지 않기 위해서도 돈은 필수였다. 반면 혼의 마지막 작전엔 조력자도 돈도 없었다.

“혼은 결국 돈가방을 가지지 못했어요. 작전에 필요한 돈이 없는데 이미 실행했다고요?”

“그 돈은 온전히 한을 위한 것이었어요.”
“일부는 그렇겠지만 나머진 작전에 투입되는 돈이었을 텐데요?”

“틀렸어요. 애초에 혼의 작전엔 돈이 필요 없었으니까요. 아까도 말했지만 그게 바로 다신의 힘이에요.”

강식의 어법에 지치기 시작했다. 직접적으로 물어도 매번 추상적으로 답했다. 총에 맞은 혼을 생각하니 인내심이 바닥났다.

“저는 작전도 모르고 일기마저 이해하지 못한 채 혼의 등짝에 총알이 박히는 걸 바라볼 수밖에 없었어요! 아까부터 말하는 그 힘이란 게 대체 뭔데요!”

크게 실망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다 목소리의 톤을 바꾸었다. 한 치의 더듬음도 없는 낮고 강한 소리였다.

“지금부터 혼의 마지막 작전에 대해 말해줄 테니 똑바로 들어요. 작전은 두 가지였어요. 나를 납치해서 돈을 받아내는 것과 자신의 반란 두 가지를 동시에 계획했어요.”

“잠깐만요. 그건 나도 알아요. 일단 당신은 어제저녁에 어떻게 혼의 집에 있었어요?”

강식은 한숨을 쉬었다. 순서가 있으니 이제부터 닥치고 듣기만 하라는 명령이었다.

“납치는 우리가 짜고 친 일이에요. 사건 당일 오후에 우리는 혼의 집으로 갔어요. 그곳에서 혼은 미리 준비한 일기를 보이도록 숨겼어요. 여기서 일단 계획이 틀어졌어요. 경찰이 봐야 했던 일기를 한이 봤으니까. 그리고 산탄총을 들고 집을 나서며 경찰에게 전화를 걸었어요. 당신도 봤다시피 일부러 총기함을 열어뒀어요. 여기까지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나요?”

당연히 있었다. 혼은 우리가 오기 전에 떠났고 집엔 아무도 없었는데 강식은 어떻게 숨긴 일기의 위치를 안단 말인가. 또 내가 총기함을 봤다는 걸 어떻게 추측이 아닌 확신을 할 수 있는가. 기다렸다는 듯 물었다.

“나는 계속 집에 있었어요.”

분명 그의 냄새도 소리도 나지 않았다. 집 안 범위의 존재는 모두 나의 코끝과 고막을 벗어날 순 없었다.

“아니요. 당신은 집에 었었어요.”
“영과 경찰 한 명만 집에 있지 않았나요?”

“중간에 혼의 동선에 혼란을 주기 위해 따로 집으로 왔던 거겠죠. 아니지, 그럴 거라면 차라리 강식이 아예 근처에 없는 게 낫지. 아닌가…….”

나도 모르게 혼잣말로 경우를 따져보고 있었다. 그는 나의 옹알이가 끝날 때까지 가만히 기다렸다.

“당신은 당신의 감각을 얼마큼 믿을 수 있나요?”

뼈를 때리는 말이었다. 맞다. 사실 나의 감각은 인간보다 뛰어난 것이지 신의 영역이 아니다. 인간들과 비교하다 보니 내 능력을 과대평가하고 있었다.

“그럼 당신은 집 어디에 있었죠?”

“혼의 엄마 방 안에 있었어요.”

“혼의 엄마요?”

그러고 보니 혼의 엄마에 대해선 들어본 적도 궁금했던 적도 없었다. 방이란 방은 우리가 일차적으로 뒤졌고 최종적으로 열댓 명의 경찰들이 작은 서랍 안쪽까지 살폈지만 엄마 방이라는 공간은 없었다.

“엄마 방은 없었어요.”

“방 앞에 엄마 방이라 써 놓진 않죠. 집 안에 있는 방 중 하나일 뿐이죠.”

“여자 냄새가 나는 방은 없었고 모든 방을 뒤졌는데도 당신은 발견되지 않았어요.”

“그 방은 혼의 아빠 방 안에 있어요. 옷장 벽면 뒤쪽에 작은 방으로 통하는 문이 있어요. 아무리 꼼꼼하게 뒤졌어도 절대 그 문을 찾을 수 없어요. 혼과 그의 아빠만이 그 문과 방의 존재를 알고 있으니까요. 이유는 모르지만 아빠는 절대 그 문을 경찰에게 보여주지 않을 거라 했어요.”

나 역시 그 옷장을 여러 번 지나쳤다. 공간의 울림이 느껴지지 않았다. 분명 소리가 메아리칠 수 없는 벽이었다. 게다가 사장이 경찰에게 아내의 방을 보여주지 않은 이유를 짐작 조차 할 수 없었다.

“이곳에서 두 번째 차질이 생겼어요.”

“어디서요?”

“한의 동생에게 들켰어요.”

“영이에요. 영이 한의 동생인 건 어떻게 알았어요?”
“경찰의 무전이 들렸어요. 혼의 계획대로라면 내가 엄마 방을 나왔을 때 경찰만이 있어야 했어요. 하지만 경찰은 없고 그 아이뿐이었죠. 경찰이 저를 발견하고 혼의 도주시간에 맞춰 그들의 시선을 혼의 집으로 돌리는 게 중요했어요. 그런데 그 아이 때문에 경찰은 혼을 쫓는데 총력을 다 할 수 있었죠.”

“도망갔으면 됐잖아요.”
“한의 동생이라잖아요.”

만약 영이 우리와 함께 산을 올랐다면 혼은 도망칠 수 있었을까. 그랬다면 혼은 총에 맞지 않았겠지. 이상하게 나는 총알이 혼의 등을 파고드는 모습보다 경찰을 따돌리고 도주에 성공한 그의 뒷모습이 더 싫었다. 어젯밤 뒷산에서 도망을 쳤다면 그는 평생을 완이처럼 살 것 같았다. 원하진 않았지만 지옥의 문 앞에서 쓰러질 수 있었던 게 다행이었다. 무엇보다도 두 번 다시는 혼을 보지 못할 상상이 가장 끔찍했다.


“이후로는 나보단 당신이 더 잘 알겠죠.”

“작전의 끝은 뭐였나요?”

“첫 번째 작전은 성공했어요. 두 번째가 실패였지.”

사실 첫 번째 작전은 강식보다 내가 더 실감 나게 알았기에 궁금한 게 없었다. 최후의 작전만을 몰랐을 뿐이었다.

“혼은 정해 놓은 도주로를 순서대로 밟아가며 갈림길마다 총을 한 발씩 쏘기로 했어요. 그가 총을 쏜 이유는 총성보다 멀리 퍼질 수 있는 소리를 낼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에요. 결코 나나 경찰의 목숨을 목표로 한 격발은 아니었어요.”

강식은 본인이 억울한 듯이 말했다. 오늘 처음으로 그의 음성이 흔들렸다.

“큰 소리가 필요했던 이유는요?”

“그게 마지막 작전이었요. 혼이 쏟아 올린 총성의 간격은 대충 파악했었죠?”

어두워 공간적으론 설명을 못하겠지만 시간적으로 거의 일정했었다. 혼의 걸음 속도가 구간마다 크게 다르지 않았다면 일정한 거리를 통과할 때마다 총을 쏜 듯했다. “혼선을 주려는 의도였겠죠.”

“그것도 맞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에요. 처음 두 발만 구간이 만나는 점이라 연속해서 쏜 거예요.”

총성이 울릴 당시 산의 모든 나뭇가지 사이를 찢어버리는 광활한 소리에 처음엔 간격을 인지하지 못했다. 네 번째 총성부터 규칙을 찾아내어 혼을 쫓을 수 있었다.

“혼이 자신에게 총을 쏘는 경찰들의 추격에도 불구하고 미리 지정해 둔 지점에 멈춰 쏘려는 이유는 당신의 친구들을 위함이었죠.”

“한이랑 영이요?”

“아니요. 당신이 구해줬고 당신과 맹세했던 그 친구들이요. 혼이 그린 마지막 장면은 많은 인간들에게 그들을 보여주는 거였어요. 혼에게 제가 필요했던 진짜 이유이기도 하죠.”

강식이 도통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몰랐다. 뜬금없이 등장한 나의 친구들이라니 좀 전까지의 긴박한 작전과 어울리지 않았다. 강식도 나의 반응을 예상했는지 잠깐 생각정리 할 시간을 줬다. 그 짧은 순간에 내가 정리한 내용은 두 가지였다. 나의 친구들은 어디에 있었던 건가 그리고 그들은 결국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도대체 혼은 무엇을 상상한 걸까.


“당신의 친구들은 인간의 눈으론 볼 수 없을 정도의 산속에서 혼의 신호를 기다렸어요. 혼이 총성을 울리기로 약속한 장소마다 있었어요. 경찰의 포위망보다 훨씬 뒤쪽이었죠. 그래서 혼은 큰 소리가 필요했어요. 총성은 구간마다 대기하던 당신 친구들에게 출발 신호였어요. 혼이 일곱 개의 장소에서 총성을 쏴야만 했던 이유였어요.”

이 허무맹랑한 미친 전개에 감정이 절정에 다다를 줄은 몰랐다.

“하지만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어요!”

나는 같은 대상에게 당한 또 한 번의 배신에 흥분을 가라앉힐 수가 없었다. 혼의 작전이 성공할 수 있었다. 애초에 그들이 약속하지 않았더라면 혼은 평범하게 한과 함께 전단지를 나눠주며 나와 밥을 먹고 자고 있을 테다. 발가락 마디마디가 분노에 떨렸고 눈은 파르르 댔으며 미친 듯이 발바닥으로 땅을 긁었다. 당장 내 앞에 있는 강식을 때려죽이고 싶었다.

“아직 나는 실패했다고 말한 적 없어요.”

나에게 선택권을 주는 한 마디였다. 혼의 마지막 이야기를 들을지 완이가 될지에 대한 선택을 강요했다. 모든 근육이 끊어질 만큼 몸에 힘을 주고 버텼다.

“당신의 친구들은 나타나지 않은 게 아니라 못한 거예요. 총엔 일곱 발이 장전 돼 있었어요. 왠지 알아요?”

“구간이 일곱 개니까요.”
깊은 사고를 할 수 없었다. 자칫하면 강식을 물어뜯으려 이를 갈고 있었다.

“혼에겐 총알이 더 있었지만 딱 일곱 발만 장전하고 나머진 산에 버렸어요. 지금까지 어떤 변수에도 혼의 계획은 잘 진행됐어요. 그런 그가 여분의 총알이 없었을까요? 이게 세 번째 차질이었어요.”

마취총을 쏘던 인간들도 항상 여분의 총알을 들고 다녔다. 고작 개 한 마리 잡을 때도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는데 혼이 총알을 버렸단 게 이상했다. 누군가를 쏠 생각이 없었다 하더라도 혼의 상황이었다면 불안 때문에도 총알을 최대한 챙겨 놨을 거다.

“반드시 일곱 발만 쐈어야 한 거죠? 여덟 발부턴 실패고요. 이거 말곤 총알을 버릴 이유가 없어요.”

“그거예요. 혼과 당신의 친구들의 약속에서 요점은 총성의 횟수였어요. 첫 구간부터 일곱 번째 구간까지 총성이 모두 울렸을 때만 혼의 집을 향해 달리기로 한 거예요. 이 작전을 전달하기 위해 내가 필요했고 내가 집에 남아 있었던 이유죠. 하지만 당신도 들었다시피 혼은 여섯 번째 총성과 함께 마지막 한 발을 쏠 수 없었어요. 혼은 잘못된 위치에서 실수로 방아쇠를 당길까 봐 딱 일곱 발만 가져갔어요.”


혼의 작전은 혼 자체였다. 혼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그가 꿈꾼 세계가 담겨 있었다. 미비하지만 홀로 꿈틀거렸던 소년의 반란은 폭동으로 끝났다. 아름다운 어둠이었다. 모든 색을 합쳐야 어둠은 존재했다. 모든 빛이 모이면 세상은 하얗게 빛났지만 가볍고 아름답지 않았다. 마지막 총알이 하늘로 날아갈 때 번쩍였던 빛은 어둠에 금세 가려졌다.


아직 내 친구들의 색이 합쳐지지 않았다. 일곱 번째 총성 따위는 필요 없다.


keyword
이전 09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