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브런치북 난시 12화

난시

by 다날


32


다수결로 장소를 결정했다. 과반 이상이 광장을 선택했다. 법원을 택한 열일곱이 숙제로 남았다. 소시지를 먹을 때도 양에 따라 싸움이 빈번했는데 목숨이 걸린 일에 진심을 보이는 건 오죽할까 싶었다. 내부의 갈등은 최악이었다.

법원을 선택한 무리의 대표는 강식이었다. 강식의 일그러진 미간이 이해는 됐다. 그는 처음부터 법원을 마음에 두고 계획을 세웠다. 동선까지 완성됐을 무렵 장소를 엎어야 했다. 보통 리더의 의견이 최종 결정됐기에 투표 결과를 전혀 예상 못한 표정이었다.

그러나 월이 잠재된 갈등의 가능성을 지워버렸다. 사실 월은 강식과 같은 선택을 했다. 우리의 지겨운 연설보단 그의 눈빛 한 번이 ‘지금’을 움직였다.

“광장을 반대한 분들은 잘 들어주세요. 저 또한 법원을 선택했지만 광장으로 결정돼 많이 속상합니다. 하지만 이 이후로 광장을 선택한 쪽을 적이라고 생각하진 맙시다. 장소만 다를 뿐 원하는 건 같다는 걸 기억해 주세요.”

월의 태도는 간곡한 부탁의 자세였다. 강식이라면 다시 한번 단호한 강요를 통보했을 것이다. 독재자라는 뜻은 아니다. 지금은 냉철한 투지보다 균열을 막아야 했다. 보통은 이런 상황을 승자와 패자로 가르는 승부로 착각한다. 그러나 월은 투표를 찬성과 반대가 아니라 큰 뭉치가 되기 위한 대화로 만들었다.


월 덕분에 강식과의 충돌 없이 계획을 수정했다. 광장을 최종 목적지로 정한 이후 전체회의를 두 번 더 했지만 강식은 최대한 자신의 의견을 굽혔다. 강장까지의 경로와 대열에 대해 논의했다.

혼에 대한 뉴스도 보도됐다. 이번엔 혼의 몸 상태에 대한 내용을 다뤘다. 총알이 신경을 파고들어 왼쪽 어깨부터 손가락 끝까지 왔던 마비증세가 호전되어 움직이는 데는 무리가 없다고 했다. 생명에 지장이 없다는 것에만 안도하여 굳은 몸은 생각도 못했다. 죽는 것보다 치명적인 건 장애였다. 인간들은 우리에게 장애가 생기면 쉽게 버렸다. 센터 철창에서도 안락사를 피하기 어려웠다. 아니 희박했다. 특히 다리가 부러지거나 잘려 몸을 홀로 움직이지 못하면 입양은 악몽이었다.

다행히 혼은 철창 밖의 시선들이 완전히 고개를 돌리는 상태는 넘겼다. 관심이 있어야 죽음의 문턱이 높아졌다. 인간들은 재판에서 아픈 신체가 유리하다고 착각했다. 판사가 빠르게 철창에서 풀어줘 봤자 그 몸으론 사장의 집조차 탈출할 수 없다.

이송날짜에 대한 언급은 따로 없었다. 기존에 발표한 대로 재판이 진행되는 듯했다. 혼의 계획에 변동 사항이 없는 건 희소식이었다.


33


그러나 우리의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충격적인 사실을 들었다. 혼이 잡혀간 이후 둘이 함께 있던 적이 없었다. 둘 다 저녁시간에 집에 없었다. 이상하게 어제는 한과 영이 집에서 저녁을 같이 먹었다. 씹는 소리조차 없는 냉랭한 식탁이었다.

“형 알고 있었지?”

“뭐를?”

“그 개가 혼이 형 집에 있는 거 알았지?”

한은 김치를 집어든 젓가락 한쪽을 놓쳤다.

“혼이랑 우리가 가기 전에 있을 거라곤 대충 예상했지.”

“아니! 우리가 간 날 말이야. 경찰들이 찾던 개가 집 안에 있는 걸 알았지?”

한은 탁자 밑으로 떨어진 젓가락을 잡고는 허리를 펴지 않았다. 미세하게 흔들리는 몸의 진동이 꼭 울 때와 비슷했다.

“알았냐고 몰랐냐고!”

“알았어. 혼이의 일기장을 보고 알았어. 혼이가 개를 데리고 가지 않았단 걸.”

영은 엉덩이 밑에 숨겨 놓았던 일기장을 한의 구부러진 등판에 던졌다. 일기장에서 찢긴 종이 한 장이 삐져나왔다.

“왜 숨겼어?”

“무서웠어. 마지막 장에 적힌 일기만 경찰에게 안 들키면 우린 괜찮아질 수 있었으니까. 그 내용을 경찰이 보게 된다면 내가 공범이 되는 거잖아.”

영의 눈가에서도 눈물이 흘렀다.

“그래도! 우리 때문에 총에 맞았잖아. 우리 때문에….”

“그렇게 될 줄은 몰랐어. 마지막 일기에도 총을 쏜다는 말은 없었으니까… 작전에 실패했을 때 돈이 든 가방과 우리가 풀어줬던 개들의 위치만 적혀 있어서 나도 몰랐다고!”

형제는 더 이상 큰 소리도 내지 않고 흐느껴 울었다. 서로에 대한 의심이 확신이 되는 순간을 견디지 못했다. 서로에게 화를 냈지만 증오는 없었다. 영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다시 물었다.

“그럼 개가 집에 있는 건 뭘 보고 알았어?”

일기엔 강식의 위치는 쓰여 있지 않았다. 영이 이미 확인했으니 거짓은 아니었다. 게다가 일기는 모두가 함께 봤으니 한만 아는 사실 같은 건 없었다.

“혼이는 절대 그 개를 위험에 빠뜨릴 수 없는 걸 알았으니까. 혼이가 좋아하던 여자애의 개였으니까.”

영의 눈동자가 말랐다. 절대 믿을 수 없다는 건조함이었다.

“오후 내내 집을 뒤졌지만 나는 못 찼았단 말이야. 어딨었던 건데.”

“아마 엄마 방에 있었을 거야. 일부러 확인하진 않았어. 정말 거기에 있을 거 같아서.”

“그래서 형은 나보고 집에 남아 있으라고 했던 거였어…”

대체 마지막 한 장이 뭐였길래 한은 읽지 않았던 걸까. 한은 누구보다 가장 먼저 혼의 마지막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영을 포기할 순 없었던 건가. 혼도 그런 한의 선택을 기대했을지도 몰랐다. 아마 총성에 대해 적었더라면 한은 영을 뒤로한 채 혼에게 달렸을 거다.

다만 혼은 몰랐다. 엄마의 방을 알고 있는 사람이 둘이 아닌 셋이란 사실을 말이다. 마지막 작전의 두 번째 차질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었다. 친구에 대한 한의 마지막 양심이었다.

“내가 다 가고 나서 얼마나 집을 뒤진 줄 알아? 혼이 형이 돈을 받기 전에만 개를 찾으면 납치가 아니었다고 우길 생각이었어. 집 안엔 없다고 확신할 때 그 개가 내 앞에 있었어. 그때 내가 얼마나 혼이 형한테 미안했는 줄 알아?”

“나까지 떠나버리면…… 넌 어떻게 살게… 넌 아직 면허도 없잖아.”

“그래도 내가 혼이 형 등에 총을 쏜 거 같아….”


강식에게 혼의 작전을 들었을 때보다 더 충격적이었다. 울컥했지만 결코 한에 대한 원망은 아니었다. 한 역시 나에게 친구였다. 한의 선택에 한의 의지는 전혀 없었다. 게다가 영과 달리 나는 당장 지나간 일에 괴로워할 시간이 없었다. 혼의 마지막 작전을 완성시키기 위해 냉정해야 했다. 스스로에게 계속 주문을 걸었다. 나는 혼이다. 나는 혼이다.


34


조 형제는 비밀에 갇히지 않았다. 혼에 대한 미안한 감정은 숨기지 못했다. 냉장고가 얼어가는 소리만이 집을 채웠다. 대신 집 밖에서는 절실했다. 한은 밤낮으로 배달을 했고 영은 학교를 빠지지 않고 다녔다. 어떻게든 살아야 된다는 몸짓이었다. 절실했다.


혼의 이송날짜는 하루 앞으로 다가왔고 우리는 작전준비에 총력을 기울였다. 우리는 이제 산의 능선을 타고 병원 뒤쪽 산으로 내일 아침 전까지 오를 것이다. 그곳에서 쉬지 않고 다시 새로운 능선을 타고 광장 교차로의 뒷산에 정오쯤 도착한다. 대열을 갖춘 우리의 행진이 혼을 기다리고 있다.

산은 자정의 암막을 통해 우리에게 출발 신호를 보냈다. 나와 강식을 필두로 2열 종대로 84마리의 개가 움직였다. 우리는 저번처럼 조심스럽게 걸을 필요가 없다. 오히려 중력이 누르는 힘에 각자의 무게를 더했다. 맨 뒤의 월은 노래를 불러줬다. 목이 터져라 짖으며 병원의 불빛을 향해 전진했다. 여섯 번째 구간을 지나 혼의 일곱 번째 구간을 지나갔다. 아직 그가 남긴 눈물은 마르지 않고 철령거렸다.

“혼이 오고 있다! 혼이 오고 있다!”

모두가 나의 선창에 따라 떼창을 했다.

“혼이 온다! 혼이 왔다!”

우리의 짖음에 산 아래의 가로등 마저 꺼졌다. 병원의 창문엔 하나둘씩 불이 켜졌다. 우리의 아침이 떴다. 무서워지는 게 아니라 계속 걸어가기 위해 짖었다.


해가 서서히 우리의 머리 위로 향했다. 해가 우리를 따라왔다. 겨울의 칼바람에 귀를 열고 딱딱하게 얼어버린 메마른 땅에 금을 내며 걸었다. 달리는 차의 엔진소리와 클락션 소리, 지나다니는 인간들의 숨소리와 말소리, 상가에서 흘러나오는 노래와 광고 소리에 묻힐지언정 우리는 멈추지 않았다.

드디어 해가 우리의 꼬리를 비추기 시작했다. 광장 위로 뻗은 육교가 보였다. 우리는 일곱 줄의 대열로 대형을 바꾸어 섰다. 일곱 번째 구간에서의 좌절을 되살렬 혼에게 보여주자. 일곱 발의 총성이 없어도 우린 하나로 모였으니 신경 쓰지 말고 광장까지 나아갔다. 다시 한번 나는 외쳤다. 목구멍에서 피 맛이 풍겼다.

“우리가 오고 있다!”

산의 중턱을 지나 입구로 내려갔다. 지금부터 우리는 광장에 도착할 때까지 절대 짖어선 안 됐다. 인간들의 욕설과 폭력에도 반응하지 않았다. 모든 걸 무시하고 혼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했다. 절대 뛰지 않으며 도망가지도 않았다. 마지막을 향해 걷는 우리에게 공포는 사치였다. 우리의 당당한 걸음에 인간들이 도망을 갔다. 우리는 이빨을 드러내지 않았다. 땅의 울림만으로도 인간들은 우리를 두려워했다.


인간들아 겁을 먹지 마라. 건물로 숨고 골목길로 도망가지 마라. 고개를 쳐들고 똑똑히 우리의 행진을 두 눈에 담아라. 젊은이들은 우리를 스마트폰에 담아 모두에게 알려라. 가능한 멀리 우리의 작전이 끝날 때까지 퍼뜨려라. 경찰을 부르고 구조대원을 불러라. 우리는 광장에 다다르기 전엔 단 한 명의 이탈자도 없을 테니 있는 힘껏 신고하고 또 신고해라. 모두가 우리를 볼 수 있게 기자는 카메라를 들이밀어라. 단 한순간도 우리의 미소를 놓치지 말고 따라붙으며 우리를 모르는 인간들에게 알려라. 뭐든 좋으니 던질 게 손에 쥐어진다면 우리에게 가차 없이 던져라. 우리는 우리의 길을 걸어갈 테니 우리가 도망갈만한 모든 샛길을 막고 우리를 포위해라. 광장으로 가고 있으니 총성을 울리든 방망이를 휘두르든 혼신의 힘을 다해 우리에게 공격을 퍼부어라.


1열의 선두가 육교의 첫 번째 다리 첫 칸에 발을 올렸다. 2열부터 5열은 각각 두 번째부터 다섯 번째 다리를 올랐다. 6열은 교차로의 왼쪽 입구 앞에 서서 혼을 기다렸다. 마지막으로 7열은 혼을 태운 경찰차가 진입할 오른쪽 입구에 서서 혼을 기다렸다. 월은 5열의 끝에서 대열을 정리하며 떼창을 이끌었다. 벤치에 앉아있던 인간들은 하나 같이 육교 위로 올라왔다. 우리가 무서우면 그렇기 위에서 내려라도 봐라. 우리를 둘러싼 건물은 창을 열어 우리의 소리를 들었다. 입구도 출구도 없는 교차로 앞에 멈춰 선 차들은 경적을 울렸다. 하지만 우리는 굴하지 않았다. 어차피 우리를 치고 갈 수 없었다.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심지어 화음을 쌓으며 7열 쪽으로 증폭됐다. 6열 쪽 멀리에서 다른 종류의 사이렌이 울렸다. 6열의 열두 마리가 희미하게 보이는 소방차를 향해 포효했다. 7열은 네 다리에 온 힘을 주기 시작했다. 절대 물러서지 않고 경찰로 하여금 혼을 내리게 할 작전이었다.

나는 혼이 이루지 못한 일곱 번째 구간의 선두에 서 있었다. 그는 무서워하지 말고 웃으며 잠깐 내려도 됐다.


광장을 꽉 채운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는 7열 앞에 멈췄다. 다섯 대의 경찰차가 줄지어 정지했다. 앞에서부터 순서대로 경찰들이 내렸다. 유독 검은 차량이 중앙에 끼어 있었다. 수갑을 찬 두 손이 경찰의 손에 이끌려 차에서 내렸다. 우리가 기다리던 혼이었다. 꼿꼿하게 핀 허리에 당당하게 치켜 세운 얼굴이었다.

“모든 열은 대열을 갖추어 혼에게 천천히 다가가자!”

각자의 위치에 있던 나머지 열들이 서서히 움직였다. 모두 내가 있는 7열의 옆에 멈춰 섰다. 경찰들이 쏜 공포탄 소리가 하늘을 가렸지만 혼이 쏟아 올렸던 총성에 비하면 새의 지저귐 정도였다. 곧이어 소방차의 사이렌 소리도 한 곳에 멈췄고 구조대원들이 마취총, 그물, 올무, 케이지를 들고 뛰어왔다. 경찰은 막대기를 치켜들고 혼의 얼굴을 가렸다.

이미 뒤쪽의 덩치 큰 친구들은 마취총을 맞고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렀다. 절대 뒤를 돌아보지 않기로 우린 약속했다. 귀를 닫고 눈만 뜬 채로 혼을 향해 전진했다. 경찰은 곤봉으로 우리의 옆구리를 찔렀다. 우리의 대열은 처참히 무너지고 있었다.


정적이 혼란을 잡았다. 순간 모든 사이렌 소리와 인간들과 우리들의 불협화음이 멈췄다. 육교 밑 쉼터의 무대에서 기타 소리와 함께 익숙한 음성의 파동이 모두의 귓가를 진동시켰다. 한과 영이었다.

영은 기타를 연주했고 한이 마이크에 입을 갖다 댔다. 어떻게 우리의 작전을 알고 장비를 설치했는지 아무도 몰랐다. 덕분에 모든 폭력과 비명이 사그라들었다. 나는 이제야 혼에 품에 안겼다.

수갑에 두 손이 묶여 나를 안아줄 수도 쓰다듬어 줄 수도 없었지만 혼은 무릎을 낮춰 나와 눈을 마주했다. 혼은 활짝 웃고 있었다. 경찰이 한과 영에게 가는 길을 나의 친구들이 온몸으로 버터 냈다. 특히 강식이 이를 드러내며 경찰을 위협했다. 말리고 싶지 않았다. 조 형제는 어떤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나와 혼을 보며 끝까지 노래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를.


소년이 어른이 되어 세상을 알아갈 때에 하얀 마음은 점점 어두워지고

잠 못 이루는 날이 많아지겠지

나의 오늘이 흘러가면 서글픈 추억들 중에 작은 조각이 되겠지

잡을 수 없는 시간들은 떨어지는 빗방울이 사라지듯 나를 스쳐가네


1절이 끝나는 동시에 앰프 선이 빠지며 조 형제의 노래를 울리지 않았다. 다시 ‘지금’은 폭력 속으로 뛰어들었다. 나 역시 곤봉에 옆구리를 얻어맞았다. 혼은 이번에도 최선을 다해 우리를 지켰다. 나를 때리던 경찰이 혼을 차로 밀어 넣으려 했다.

“잠시만요. 한 마디만요. 잠깐이면 돼요.”

보는 눈이 워낙 많았던지라 경찰은 혼의 요청을 허락했다.

“고마워. 한과 영이한테도 돌아올 때까지 열심히 살고 있으라 전해 줘. 그리고 말이야. 내가 너무 미안해…… 이제 너는 자유야! 더 이상 나의 개도 우리 엄마의 개도 아니니까 친구들과 멀리 떠나. 다음엔 내가 널 찾으러 갈게.”

나는 마취총에 옆구리가 시렸다. 혼의 모습이 잔상처럼 흐려졌다. 그의 표면이 불규칙하게 변했다.


35


나는 혼의 집에서 깼다. 갈비뼈가 부러졌는지 움직일 수 없었다. 나의 다리와 몸통 중간을 붕대로 감아 놓은 건 아마 사장이었겠지. 그는 나를 조심스럽게 들어 그의 방으로 데려갔다. 옷장을 열어 잠시 나를 소복이 쌓인 옷 위에 올려두더니 옷장의 벽면을 밀었다.

새로운 방이 나왔다. 내가 그토록 궁금해하던 엄마의 방이었다. 인간 한 명이 눕기도 힘든 작은 공간엔 온통 혼의 어릴 적 사진으로 도배되어 있었다. 모든 사진엔 혼과 낯선 여자의 얼굴이 함께 웃었다. 혼의 엄마였다. 그리고 둘 사이엔 작고 하얀 새끼 강아지가 안겨 있었다.

“이게 너란다. 너는 혼이 엄마가 죽으면서 버려졌단다. 혼의 손에 직접말이다. 그때 혼이는 엄마에게 소중한 모든 것들을 없앴단다. 그중 가장 소중했던 게 너였어. 혼이는 차마 너를 죽이지 못하고 어느 집 앞에 놔두고 왔다더라. 아마 그게 네가 나를 만나기 전의 주인이었겠지. 어느 날 소방서로부터 너를 인계받아 너의 목 안에 있는 인식칩을 조사했더니 그게 너였어. 그래서 혼이는 너를 자신에게서 벗어나게 할 수 없어서 너를 데리고 도망쳤나 봐. 넌 처음부터 떠돌이 개가 아니라 우리의 친구란다.”


아직 마취가 완벽하게 깨지 않아 몽롱했다. 세상의 빛이 전부 퍼져 나갔다. 모든 것들이 사방으로 도망쳤다. 저마다의 틈으로 탈출했다. 살랑거리는 꼬리처럼 매 순간 흔들거리는 잔상과 망상 사이의 농도로 내 눈이 움직였다. 흐릿한 경계에 어지러웠지만 너무나 아름다웠다.

keyword
이전 11화난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