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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jung Kim Nov 10. 2024

찰나의 순간에

망설이지 않을 반사신경

좋은 날씨를 이렇게 누려도 되나 괜한 걱정이 들 정도로 요즘 날씨가 너무 가을스럽고 좋다.

노벨 문학상을 받은 한강 작가가(이렇게 영광스러운 이름, 한 번 입에 올려봅니다) 세계 곳곳의 전쟁과 기후위기를 언급하며, 벅찼을 수상소감에서 말을 아꼈듯이, 세상이 이러한데 단풍놀이나 즐겨도 될까 지레 조심스러워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늦게라도 찾아와 준(유난히 무덥고 길었던 여름을 생각하면) 이 계절에 감사하며 마음껏 즐기지 않을 수 없다.

늘 거기 있어준 하늘 한 번, 스치는 바람 한 번, 노랗게, 빨갛게 옷 입은 나무들에 한 번 더 눈길을 주고 그 앞에 나와 내 가족을 세워두고 사진도 원 없이 담아보았다. 주말의 가을이, 한 해와 함께 저물고 있다.


일요일 오후, 아이들을 데리고 근처 대학교 캠퍼스에 만연한 가을을 즐기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1차선 좁은 길 한가운데에 작은 강아지를 목격했다. 목줄도 없고 주변에 보호자가 없는 걸로 보아 보호자 몰래 잠깐 마실 나왔거나 (안면이 없는 녀석인걸 보아 이 동네 친구는 아닌 듯한데) 유기견이거나.


차를 세울까? 망설여졌다.

'세워서 어쩌지? 나는 강아지가  무섭고, 잡아올 용기도 없는데..'

멀뚱히 길을 막고 서 있는 강아지를 향해 클락션을 울리자 강아지는 놀란 토끼처럼 도로 위를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한다. 어쩔 수 없이 차를 한쪽에 세우려는데 마침, 맞은편에서 동네 주민분이 자전거를 타고 오시다가 강아지를 향해 어이 어이 하시며 한쪽으로 몰아주셨다. 

잘됐다. 1차선 도로를 막고 차를 세우고 이러 지도 저러 지도 못하고 있느니 동네 주민분이 알아서 해결해 주시기를 내심기대하며 빠르게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와서도

동네 주민분께서 알아서 어떻게 하셨겠지? 유기견으로 신고했어야 하나? 다시 나가볼까?

실제 아무것도 하지 않았으면서 혼잣말처럼 중얼거리게 되고 계속 신경이 쓰였다. 제발 마음씨 좋은 어떤 애견인이 발견하여 보호자에게  데려다주었으면.


동네를 방황하던 강아지가 무사히 주인 품으로 돌아갔다고, 어디 뉴스에서라도 알려주면 좋을 텐데.

오늘 내가 지나쳐버린 무관심의 대가로 나는 여전히 마음이 불편하고 신경이 쓰인다. 내 최소한의 양심은 내일 그 강아지가 길가에서 로드킬 당한 채로 발견되지 않기만을 바라고 있다.


최근 이동진 평론가가 한 매체에서, 어느 대학원의 심리학 실험결과에 대해 이야기했다.

인간의 선함은 여유에서 나온다.
바쁘다는 것은 악에 가까운 것 같다.


실험내용은 다음과 같다.

실험 참가자들은 모두 A를 출발해서 B에 도착하여 발표를 해야 한다는 동일한 조건을 가지고 있다. 다른 점은 A에서 시간차를 두고 출발한다는 것이다.
A를 출발하여 가는 길에 변수가 존재하는데, 준비하고 있던 연기자가 쓰러지며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최초 출발한 사람은 쓰러진 사람을 부축하고 구급차를 부른다. 그러나 A에서 출발 시간이 늦은 사람, 즉  B에 도착하기 5, 10분 정도 시간밖에 남지 않은 사람일수록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을 외면하더라는 것이다. 당장 시간이 빠듯한 상황에서 누군가를 돕는다는 행위가 당연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참고:인간의 선함은 여유에서 나온다
아이, 바빠죽겠는데, 다른 누군가 돕겠지.

빠른 자기 합리화를 하게 된다. 한 10분만 더 빨랐어도, 적어도 구급차를 부르는 성의는 보였을 텐데, (내가) 시간이 없다, 바쁘다는 이유가 그 순간 선과 악을 가르는 기준되어버린다. 바쁘다는 것은 악에 가깝다는 이 평론가의 말이 깊이 와닿았다.

과연 그럴까 싶지만, 바로 오늘 내가 비슷한 행동을 했다는 사실이 자명하여할 말이 없어진다.

사진출처https://skenergy.tistory.com/m/1993

그러면, 여유가 있다는  무엇일까.

비단, 시간과 돈의 문제만은 아닌듯하다. 시간이 있어도, 돈이 있어도 그 일을 기꺼이 할 만한 마음의 여유있어야 한다.

둘째의 장애를 받아들이기 전의 나는, 마음에 그 어떤 여유도 없었다. 오로지 내 아이만 불쌍하고 나만 힘들다고 생각하니 다른 이들의 아픔은 크게 다가오지 않았다.

아이의 장애를 삶으로 마음으로 오롯이 받아들이고 나니, 다른 아픈 아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 아이들을 조금이나마 돕기 위해 정기후원을 하게 되고, 필요를 나누게 되고, 그 부모들의 아픔을 공감하고 위로할 수 있게 되었다. 돈도 시간의 여유도 아닌, 내 마음의 한 끗 차이 여유로, 다른 이들을 기꺼이 바라보고 그들의 필요를 돕고 싶어진 것이다.


기꺼이 한다 것 무엇일까.

오래 고민하거나 생각하기보다, 행동이 앞서는 타고난 기질가지고 있거나, 친절과 배려가 자연스럽고 습관처럼 몸에 배어있어야 가능한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기꺼이 하기에는 너무 그릇이 작은 사람임에 틀림없다.

몇 번을 고민하고 망설이고 돌아섰다가 친절할 기회를 자주 놓치는 사람이며, 인내와 노력으로 친절과 배려를 쥐어짜 내는 옹졸한 사람에 가깝다. 그래놓고는 아주 오래 찝찝하고, 불편한 마음으로 그 일을 두고두고 후회하는 사람이다.


내 마음을 열리게 하는, 행동하게 하는 버튼 하나가 딸깍 올려져야(외부의 힘이 가해져야) 겨우 친절하고 배려있는 사람 모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 부끄럽지만, 그래도 이런 부족한 나라는 것을 잘 아는, 최소한 분수를 아는 사람이라는 사실이 조금은 위안이 된다고 하겠다.


타고난 기질은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니 나의 간장종지만 한 성품이 어디 쉬 바뀌겠냐만, 연습하면 되지 않겠나 또 희망을 가져본다.

마음의 여유도 조금씩 크기를 늘려보고, 오래 고민하고 망설이다 후회하던 시간을 열 번 중  다섯 번으로 줄여보고.

간장종지만 하던 그릇이 물 한 잔 넉넉히 담아낼 수 있는 컵이 된다면, 그래서 어느 날 갑작스레 만난 목마른 이에게 선뜻 나누어 줄 수 있는 여유가 반자동으로 나올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만족스러울 것 같다. 그렇게 조금씩 선한 삶을 넓혀가면 좋을 것 같다.

도울까 망설이게 되는 그 찰나의 순간, 기꺼이 손 내미는 반사신경을 갖게 되는 그날까지!



[마태복음 25:40]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부지중에 행한 작은 선의에 대한 보상은 성경에서도 다루는 중요한 덕목이기도 합니다. 독자님들의 삶 속에도 작은 선함이 차곡차고 쌓여가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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