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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jung Kim Apr 19. 2017

아이와 함께 배우는 에티켓 2

삶 속에서 실현되는 공공질서

                      도로횡단 5원칙

1. 멈춰 선다.

2. 신호등이 녹색인지 보고 좌우를 살핀다.

3. 손든다.

4. 좌, 우 차가 오는지 확인한다.

5. 직선으로 빠르게 건넌다.

출처http://mblogthumb1.phinf.naver.net

아이가 유치원에서 안전교육을 받은 내용이다.

물론 아이는 도로횡단 5원칙이라는 어려운 말은 기억조차 하지 못하지만, 길을 건널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몸소 보여주는데 기특하기 그지없다.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들 대부분은 규칙을 잘 지키려고 노력한다. 혹시 부주의해서, 딴생각하느라 정신이 팔려서  깜박하더라도 아이들은 계단을 이용할 때, 횡단보도를 건널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왜 보행자 사고 발생 중 유독 어린이가 많은 것일까.


나는 그 대답을 어른에게서 찾았다.

아이와 함께 집 앞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릴 때면, 늘, 항상, 무단횡단을 목격한다.


10명 중 절반은 나이 지긋한 어른들이고- 정확히 세어보진 않았지만- 그다음 순위로 10대 학생들과 젊은 성인이, 또 아주 간혹 아이 손을 잡은 부모들이었다.


물론 2분 내지는 3분의 기다림은 충분히 지루할 수 있다. 게다가 급할 때는 더욱 속이 타는 시간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생명과 직결되는 위험한 일이라는 사실을 안다면 그렇게 과감히 무단횡단을 할 수 있을까?


아이가 처음으로 누군가의 무단횡단을 목격했을 때, 나는 참으로 난감했다


할아버지가 빨간불인 걸 못 보셨나 보다.

 

아줌마가 빨간불에 건너면 안 되는걸 깜박했나 보다.


정말 위험한 건데 형아가 깜박했나 봐.


나는 괜한 변명을 했다.


아이들은 혼란이 온다.

교육과 현실의 괴리가  삶의 곳곳에서 불쑥불쑥 나타난다.


마트에서 무빙워크나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할 때도 마찬가지다.

분명히


뛰거나 걷지 마세요.


라는 표지판이 줄줄이 붙어있다.


'어린아이는 보호자의 보호 아래 안전하게 이용해주세요.'


라는 안내방송도 계속 나온다.


출처http://mblogthumb1.phinf.naver.net

나는 아이와 바깥 외출을 하기 시작하면서, 아이에게 무빙워크나 에스컬레이터에서는 절대 걷거나 뛰거나 장난치지 않게 했다.

아이가 한글을 읽게 되면서-규칙을 스스로 눈으로 확인하게 되면서- 잔소리는 줄었지만 늘 주의를 기울인다.

역시나 지루한 시간이고, 호기심과 움직임이 많은 아이에게는 견디기 힘든 시간일 수 있지만, 그렇게 하는 것이 안전하다고 믿고 있고, 그렇게 하기로 약속했으니 지키는 것이 맞다.


그런데 역시나 그 규칙은 어른들에 의해 깨진다.


무빙워크를 거의 뛰는 수준으로 가거나, 앞사람을 비집고 지나가는 어른들이 정말 많다. 그런 어른 주변의 아이들은 한 술 더 떠  무빙 워크를 역주행 한다. 부모는 전혀 주의를 주지도 신경을 쓰지도 않는다.



아저씨가 뛰면 안 되는 걸 깜빡했나 봐.


누나가 뛰거나 걸으면 안된다고 쓰여 있는데 글씨를 못 읽나 봐.


아이가 혼잣말을 한다.


'그러게나 말이야.'


깜박할 수도 있다고, 잘 모를 수 있다고 믿고 싶지만, 그렇게 순진하게 생각하기에는 일어날 수 있는 사고의 위험성을 무시할 수가 없다.


너무 팍팍하게 구는 거 아니냐고, 바쁠 때는 융통성 있게 행동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반박할 수도 있지만, 나의 편의를 위한 행동들을 아이들은 늘 보고 있다고 생각하자.    

어른들이 말하는 그 예외라는 융통성 있는 행동을  본 아이들은, 같은 상황에 닥치면 교육을 통해 배운 지식보다 직감에 더 빠르게 반응하게 되고, '어른들도 그러니까'고 빠르게 합리화 한다.


그래서 나는 늘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의식적인 사고를 하려고 한다.


혼자 이동할 때도 무조건 신호등, 횡단보도 규칙을 지킨다.

아무리 바빠도 차라리 약속시간에 늦고 말지 누군가에게 또 하나의 예외를 만들어주고 싶지 않다.


혼자 무빙워크를 탈 때, 다른 사람들이 다 나를 지나쳐 걸어 올라가더라도 인내심을 최대치로 발휘해서 끝 지점까지 정지상태로 간다.

고지식한 것도 아니고, 누가 알아주기를 바라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다만 내 아이뿐 아니라 우리 아이들이 유치원에서, 학교에서 배운 공공규칙들을 생활 속에서 실천할 수 있도록 좋은 본보기를 보여주는 바른 어른이 되고 싶을 뿐이다.




이러한 교육의 대상이 아이들이 아닌, 어른이 되어야 하지 않나 생각해본다. 어른들의 재교육을 통해  아이들의 교육의 본질이 지켜진다면 마땅히 해야하지 않을까.

염려와 간절함을 담아 공공질서의 실현을 위해 우리 어른들이 제발 모범이 되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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