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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unjung Kim May 22. 2017

간직하고 싶은 재미난 성장 기록

배꼽 잡는 7살 아들의 어휘력

2015년 겨울, 아이가 꽉 채운 5살이던 어느 날의 일이다.

아침을 먹고 거실로 가던 아이가 다시 주방 쪽으로 돌아와 심각한 표정으로 하는 말,


"가만, 그러고 보니 디저트를 먹어야겠어."


우리 부부는 아이의 표정과 말투가 너무 진지해서 한참 웃었다.

우리만 알 수 있는 웃음 포인트가 있기 때문이다. 당시 아들이 한참 빠져있던 디즈니 만화채널의 '바다탐험대 옥토넛'이라는 만화에 나오는 등장인물인 바나클 대장의 말투와 행동이었다. 

이미지 출처http://www.disney.co.kr/html/junior/program/gallery


너무나도 늠름하고 비장한 표정으로 디저트를 먹겠다며 둠칫 둠칫 걸어오던 아이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아른거리지만 결코 같은 모습을 다시 볼 수는 없기에, 다시 시켜보아도 그때 그 감동이 없기에, 나는 가끔 그때 아들이 얼마나 사랑스럽고 귀여웠는지를 말로 기록해 놓고 싶었다. 일명, 주원이의 '어록'이라고 할까.


또 다른 어록.

6살 겨울, 한글을 깨치고, 얇은 보드북을 혼자 읽기 시작하던 어느 날, 아빠와 책을 보던 아들은 또 한 번 큰 웃음을 안겨주었다.

옆에서 눈 감고 자는 척 듣고 있어서 책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아이는 분명한 한 마디에 나는 결국 웃음을 터트렸다.


"참와"

아이는 참외를 참와라고 읽었다. 참외참와로 읽는 게 웃겼지만, 더 재미있는 건 아빠는 참외라고 정정해주지 않고 진지하게 책을 읽어 나갔고 아이는 한동안 계속 참와를 외쳤다. 나중에서야 스스로 참외라는 것을 알게 될 때까지. 엉뚱한 이 엄마, 아빠는 오히려 계속 참와를 외치며, 아이가 계속 참와라고 말하길 바랐다. 순수한 그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워서, 그때만 가능한 그 모든 행동들이 아쉽고 소중해서 그랬던 것  같다.


최근의 어록.

7살 봄, 어느 토요일 이제는 제법 한글도 쓰고 글밥이 많은 책도 읽는 아이가 월간 어린이 과학동아를 읽고 있었다. 나와 남편은 각자 주방에서 베란다에서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아이가 큰 소리로 말한다. 세상 처음 알게 된 사실을 전하는 기쁨의 유레카를 외치듯!


"엄마, 아빠. 요정이 엉덩이에 알을 낳는데!"


'요정이 엉덩이에 알을 낳는다고?'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남편 역시 나와 다른 공간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동일한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래? 진짜 신기하다."


둘 다 조금 성의 없는 대답을 하고 하던 일에 바빴는데, 세상 진지하게 아이가 계속 얘기한다.


'그래. 아이에게 집중하자.'


그리고서 남편과 나는 아이가 읽고 있던 페이지를 보았고 결국 한참 배꼽을 잡고 웃었다.


아이가 말한 것은, 물론 요정이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요충. 아이는 요충요중으로 읽었고, 엄마 아빠는 사이좋게 요중요정으로 자동 필터 해서 들었던 것이다. 이런 실수마저도 어쩜 이렇게 귀여운지. 역시나 오주원 어록에 기록해놓고 나중에라도 앨범처럼 꺼내 읽어야지.

 


세상 모든 부모들이 고슴도치의 마음으로 내 아이의 모든 처음을 함께하고, 그것이 세상 신기하고 놀라울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아이가 자라면서 그 신기함과 놀라움은 무뎌지고 익숙해지고 더 이상 감탄하지도 칭찬하지도 않게 될지도 모른다. 또 점점 함께 하는 시간이 줄어들 것이고, 함께하는 잠깐의 시간조차 다 기억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이 너무 아쉬워서, 가끔 이렇게 큰 웃음을 주었던 일들을 소중히 기억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아이가 점점 자라면서 웃을 일이 많기를 바라지만 또 울어여야 할 일들도 많을 것이다. 자이언티의 노래처럼, 가끔 우리가 함께 웃고 즐거워했던 이런 추억들을 초콜릿처럼 꺼내 먹으며, 함께 웃고 다독이면서 그렇게 또 추억이 쌓여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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