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면증이 심해졌다. 새벽 다섯 시가 되어 새파란 햇볕이 밀물로 몰려오는 광경을 목격하고서야 겨우 잠에 든다. 할머니 손은 약손 같은 과학과 미신이 적절히 섞인 주문 비슷한 게 필요했다.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 양을 센다. 양이라, 솔직히 영 시답잖다. 과학적인 근거라고는 전혀 없고 순수 미신으로만 이뤄진 것도 모자라, 살면서 양을 봤으면 얼마나 봤다고 초면에 가까운 동물에게 의지하라는 건지. 차라리 개나 고양이를 셀까 하다, 달리 방법이 없으니 속는 셈 치고 두 눈을 꼭 감은 채로 천천히 울타리를 뛰어넘는 양을 상상한다. 양은 번호표 뽑고 대기하는 건가, 떼로 넘으면 어떡하지, 한 마리씩만 넘는다는 보장은 없잖아. 한 마리씩 차례대로 세는 게 원칙이라 정한다. 한 마리, 두 마리, 세 마리…백만 스물한 마리. 에너자이저야 뭐야. 이 세상 양이란 양은 다 세고 날도 샐 기세였다.
아무래도 괘씸해서 안 되겠어서 소문의 근원지를 찾아봤다. 영미권에서 잠이 오지 않을 때 양을 세는 이유는 'sleep'이라는 단어와 'sheep'이라는 단어가 비슷한 소리를 내기 때문이란다. 한글로 치면 잠과 양은 전혀 다른 소리이므로 양을 세는 건 헛수고였다. 단순하게 무언가를 세는 행위에 집중하는 건 어떨까 했지만, 한쪽으로 넘어간 양들에게 충분한 공간이 있을까 라던지, 이 많은 양들을 관리하는 양치기에게 합당한 월급이 주어지고 있는가 하는 걱정이나 하고 누워있는 인간에게 세는 것에만 집중하라는 건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도 잠이랑 비슷한 단어가 뭐가 있을까 생각해본다.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마땅한 대체재가 떠오르지 않는다.
짐은 어떨까. 점 하나 차이라고 떠오르는 무거운 짐을 하나씩 곱씹는다면 잠을 커녕 불면증만 더욱 악화되고 말 거다. 그래서 반대로 덜어가기로 한다. 잠이 오지 않음은 이고 있는 짐이 너무 많아서일 테니, 자꾸 수면 위로 부상하는 짐덩어리 들을 지하 깊은 곳으로 누르는 거다. 끝나가는 전세 계약, 새로 구해야 하는 직장, 내 책에 대한 반응, 줄어만가는 통장 잔고, 내 안에 양반 귀신이 몇 명 있다는 점괘, 복잡 미묘한 인간관계. 당장의 걱정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것들을 죄다 불러온다. 천천히 하나씩,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보이지 않는 저 너머의 검은 공간으로 등 떠밀어 보낸다. 진부한 말이지만 내게 주어진 상황 안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것, 무엇보다 중요한 건 결과에 연연하며 후회하지 않는 것, 가장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정말 연연하며 후회해야 하는 건 따로 있다. 나 자신이 우려하는 게 아닌 남이 손가락질할까 두려워 움츠려 드는 순간들, 그럴 것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왜 그랬을까 부끄러움에 몸서리친다. 나와 남은 엄연히 다르다. 발음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괜히 혼란스러워한다. 다시 한번, 나에게서 남을 덜어내 본다. 내가 알고 있는 내가 있고, 또 내가 쓴 일부분으로 판단 지어지는 내가 있다. 당신이 말하는 내가 있고, 또 누군가의 입을 통해 듣게 되는 나도 있다. 가끔씩 내가 확신하는 나의 모습보다 남으로부터 재단되는 내가 진짜면 어떡하나 우려스럽다. 나는 그저 내가 알고 있는 나로서 온전하게 살아가는 수밖에는 없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이 그것뿐이기도 하거니와, 남들이 바라는 나의 모습을 완강히 거절할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을 헤집어 놓는 것들을 어느 정도 정리했다. 거짓말처럼 불면증이 사라졌다고 말하면 순 거짓말일 거다. 극적인 반전은 없겠지만, 적어도 아침에 조금은 개운해진 상태로 잠에서 깨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