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에 맞게 살자는 말을 철칙으로 여기며 산다. 보통은 부정적인 어투로 사용되는 말이지만, 나는 인생에 기준이 되는 철학쯤으로 쓰고 있다. 분수, 자기의 처지에 맞는 한도. 단어가 주는 적당한 무게감이 좋았달까. 나의 처지에도 한도라는 것이 있다면, 처지의 임계점 직전까지는 적절히 분배해가며 살아가는 게 맞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말이다. 나로서는 경제적인 부분에 있어서의 분수가 가장 엄격했다. 스스로 돈을 벌 수 있는 능력이 생기고 나서부터는 주변으로부터 꾸준히 신용카드를 만들라는 말을 듣곤 했는데, 그게 쉬이 이해되지는 않았다. 현재의 소비를 미래의 소비로 대체한다는 건 도저히 분수에 맞지 않는 행위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스물일곱까지 고집스럽게 체크카드로 삶을 영위했다. 그것이 가능했던 건 나는 스스로의 분수를 너무나도 잘 알기에 당장 손에 쥐지 못할 것을 욕심내 본 적이 없거니와, 그렇기에 크게 이질감이 드는 부분이 없어서였다. 물론 신용카드가 아예 없었던 건 아니다. 첫 직장에서 임직원 혜택을 얻기 위해 반강제적으로 만든 회사 카드가 있기야 했지만 2년 동안 지갑 안에서 썩고 있었다. 그러다 덜컥 분수에 맞지도 않는 짓거리를 하고 싶어진 건 노트북을 살 때였다. 보통의 남자들이 좋아하는 차, 옷, 시계, 신발, 가방 따위에 전혀 관심이 없는지라 큰돈이 한 번에 필요한 경우가 잘 없는데, 퇴근하고 바로 카페로 달려가 원고를 쓰고 싶었으니 노트북이 필수가 아니던가. 백만 원이라는 돈을 단번에 지불하기에는 무리였기에 결국 신용카드를 처음으로 써보자 싶었다. 직원에게 조건을 묻고 또 물어 결국 36개월, 꼬박 3년 간 노트북 비용을 나눠 내게 됐다. 달에 몇만 원이면 그래, 그리 큰돈은 아니었다. 문제는 나의 분수를 따지면 그리 큰돈이 맞냐 아니냐 보다 노트북을 산 자체가 옳지 못한 행동을 한 것처럼 자책마저 들었다는 거다. 그때 내 나이가 스물일곱이었고 지금 내 나이가 스물아홉이니 나는 서른의 여름 언저리까지 노트북 값을 갚아야 하는 빚쟁이가 되었다.
매달 빠짐없이 특정한 날에 빠져나가는 할부는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고 찾아왔다 떠났다를 반복했다. 그새 바뀐 것이 얼마나 많은지 할부금 따위가 알고 있으려나. 나는 금기를 깨고 난 이후에도 노트북은 단 한 번뿐인 예외라고 주장하며 분수에 맞는 인생을 살았다. 하지만 뭐든지 한 번이 어렵다고 했던가. 얼마 못가 다시 분수에 맞지 않는 짓거리를 하고 싶어 졌는데,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을 때였다. 지인들은 모두 나를 호구 새끼라고 혀를 차지만, 그 누구도 본인은 사랑하는 사람에게만큼은 돈과 시간을 없는 것까지 끌어 모아 온통 쏟아내지 않을 자신이 있다고 말할 수는 없으리라. 혼자 좋은 걸 보면 사진을 찍어 보내주고, 맛있는 걸 먹으면 그이도 먹여주고 싶어 장소를 적어두고, 귀에 박히는 멜로디가 들리면 제목을 찾아 알려준다. 사랑한다는 건 그런 거였다. 내가 보고, 듣고, 맛보는 것들이 오롯이 사랑하는 사람으로 수렴하는 것. 내 처지의 두배, 아니 그 이상을 할애하게 되는 것. 사랑이라는 것에 던져버리고 난 이상은 결코 돌려받을 수도 없단 사실을 알면서도 그렇게 하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 같았으므로 분수는 안중에도 없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에는 이 사랑이 분수에 어긋난다면 노트북을 살 때처럼 36개월 정도로 나누면 되는 걸까 하는 우문을 던진다. 그러니까 나의 사랑이 100이라면 3에서 살짝 모자란 정도로만 매달 사랑을 주면 우리는 약간이라도 더 오래 서로를 사랑할 수 있을까 하는 그런 물음 속에 염원을 담는다. 그러나 나는 언제고 사랑을 할부로 지급하는 법따위는 알지 못했다. 시작부터 100, 아니 1000을 전부 주고야 만다. 그렇게 열렬히 사랑했던 사람들이 지금은 다른 낡은 것들과 함께 추억의 한편에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자리잡았다. 처지에 맞지 않는, 분수에 넘치는 사랑을 끌어다 썼으니 한동안은 사랑같은 것 못하겠지 싶다가도, 다시 언제 그랬냐는 듯 그 앞에 서게 되는 것이 사랑이랄까. 사랑의 한도는 어디일까. 그런 것이 존재하기는 할까. 그에 있어서만큼은 참 분수도 모르는 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