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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복작북작 Nov 22. 2023

#11.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어른

엄마는 어릴 때 나쁜 아이였어

‘장난감 돈으로 아이스크림을 사 먹을 수 있을까? 한 번 사러 가봐야지.’


내가 5~6살 때 우리 아파트 경비실에서는 아이스크림을 팔았다. 50원 100원이면 아이스크림을 사 먹을 수 있던 시절이었다. 엄마는 때때로 언니와 나에게 아이스크림을 사주셨다.


어느 날 엄마와 문구점에 들렀다가 은행 놀이 세트를 선물 받았다. 은행 놀이 세트에는 돈을 담아 건네는 쟁반, 1000원, 5000원, 10000원 지폐가 그려진 마분지, 1원, 5원, 10원, 50원, 100원, 500원이 새겨진 플라스틱 동전, 실제 통장과 비슷하게 생긴 통장이 있었다. 나는 은행이 뭔지, 돈이 뭔지 잘 몰라서 언니와 마음대로 상상해서 은행 놀이를 했다. 손님과 은행원 역할이 없어지기도 하고 서로 돈을 더 갖겠다고 신경전도 벌였던 것 같다. 그런데 동전 10개가 10000원보다 더 많은 줄 알고 싸웠을 것이다.


요즘에야 새우깡 한 봉지에 1500원씩 하니까 아이들이 무슨 과자라도 사 먹으려면 지폐가 필요하다. 그런데 내가 어릴 때에는 웬만한 과자는 50원 100원이면 살 수 있었다. 내가 원하는 것은 동전으로 살 수 있었다. 지폐는 얼마나 큰돈인지 그 당시에는 관심 밖이었다. 지폐는 어른들의 돈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언니와 은행 놀이를 하는데 문득 장난감 동전으로 아이스크림을 사 먹을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언니! 우리 이 돈으로 아이스크림 사 먹자.”

“그래!”

나보다 고작 한 살 많은 언니도 돈에 대한 관념이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해맑게 집을 나셨다.


수박 바. 죠스바. 스크류바. 캔디바, 바밤바. 비비빅. 빵빠레....

아이스크림이 가득 든 냉장고에서 나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스크류바를 고르고 언니는 죠스바를 골랐다. 그리고 아저씨에게 장난감 동전을 내밀었다. 아이스크림 가격에 맞게 장난감 동전을 낸 것도 아니고, 그냥 장난감 동전 2개를 내밀었다. 그때는 동전의 숫자가 뭘 의미하는지 잘 몰랐기 때문이다.


아저씨의 표정은 복잡했다. 가격도 맞지 않는 장난감 동전으로 아이스크림을 사겠다는 어린아이들이 웃기기도 하고, 귀엽기도 했을 것이다. 장난감 동전으로는 아이스크림을 살 수 없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기도 하지만, 동심을 깨고 싶지도 않으셨던 것 같다. 결국 아저씨는 웃으며 장난감 동전을 받고 아이스크림을 주셨다.


내가 스스로 아이스크림을 사 먹어 보다니!

너무 신기하고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동전은 이렇게 쓰는 거구나!

언니와 나는 그 뒤로 2~3번 더 장난감 돈으로 아이스크림을 사 먹었다.

 

며칠 뒤에 엄마는 경비 아저씨에게 우리 자매가 장난감 돈으로 아이스크림을 사 먹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엄마는 아저씨에게 돈을 지불하고 장난감 동전을 받아오셨다. 엄마도 우리가 어이없고 웃겼던 것 같다. 엄마는 우리를 혼내지 않고 우리에게 장난감 돈으로는 아무것도 살 수 없다는 것을 알려주셨다. 언니와 나는 장난감 돈은 그저 장난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성장하면서 나를 따뜻하게 바라봐 준 어른들이 정말 많이 계셨다. 엄마, 아빠, 할아버지, 할머니, 외할머니, 외할아버지, 큰아버지, 큰어머니, 친절한 선생님들, 이웃집 아주머니... 어리숙한 모습을 따뜻한 눈길로 봐주신 어른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따뜻해진다. 내 삶이 힘겨웠을때에  희망을 잃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따뜻하게 사랑 받았던 기억 때문이다. 그분들 덕에 나는 아이들이 미숙한 모습을 보일 때 귀엽게 느끼고, 친절하게 가르쳐 줄 수 있는 어른이 되었다.


윽박지르며 자신의 말을 듣게 하는 어른들도 있었다. 밥을 잘 안 먹는다고 화장실에 가둔 이웃집 아주머니, 높임말을 쓰지 않는다고 뺨을 때린 아주머니, 자율학습 시간에 문제집을 안 풀고 가정 실기평가 준비를 했다고 뺨을 때린 선생님, 자율학습 시간에 독서를 했다고 반성문을 쓰게 한 교감 선생님. 이분들을 만나면 나는 썩은 미소를 지을 것이다. 예전 일을 얘기해도 기억도 못 할 사람들이니. 이분들을 생각하면 그때 받은 상처가 아직도 쓰라리다. 그래도 정말 다행인 것은, 나에게는 좋은 어른들이 가까이 있었고, 무서운 어른들은 어쩌다 만났다.


나는 때때로 맘 카페를 본다. 맘 카페의 글을 읽다 보면 어떤 아이가 어리석은 행동을 하는 걸 욕하는 글이 있다. 이때 ‘어려서부터 못돼 먹었다’든지, ‘걔네 부모님이 애를 너무 오냐오냐 키운다’든지, ‘따끔하게 훈육해야 한다’는 등의 댓글을 보면 내가 위축이 되는 것 같다. 내가 어릴 때 엉뚱한 짓도 많이 했고,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잘못도 많이 하며 컸기 때문이다.


요즘 시대에 장난감 돈으로 아이스크림을 사 먹으려고 하면 어떤 반응일까. 어떤 사람들은 어려서부터 글러먹은 인성이라고 하거나, 그래도 교양있는 사람들은 돈 개념을 확실히 알려줘서 애초에 그런 잘못을 하지 않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하지 않을까. 옳고 그름을 정확히 알려줘야 하고 실수는 없어야 한다는 생각 아닐까.


아이들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정말 실수를 많이 한다. 잘못을 많이 한다. 아이들은 아는 것이 많지 않다. 그래서 어른들에게 배워야 한다. 실수나 잘못을 저질렀을 때 무섭게 혼나는 아이들은 자신이 잘못할 때마다 자신에 대한 부정적 감정이 쌓일 것이다. 하지만 실수나 잘못을 아이들의 특성이라 인정받고 옳은 것이 무엇인지 배운 아이들은 실수나 잘못도 낭만적인 경험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이런 아이들은 감사하는 마음, 다른 사람의 잘못도 너그럽게 이해하는 마음까지 갖게 된다.


나의 어리숙한 모습을 따뜻한 눈길로 바라봐 주신 분들이 그리운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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