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의 피로가 미리의 온 몸을 적신 탓에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땅 밑으로 꺼져 들어가는 듯 했다.
위잉위잉위잉~
미리는 계속 이어지는 진동음 길이로 전화가 걸려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예상한대로 그였다.
전화기를 보는 미리의 눈빛이 우왕좌왕 흔들렸다.
그러나 끝내 미리는 전화기의 통화 버튼을 누르지 않았다.
윙~
“미리님. 계속 연락이 없어서 걱정되네요. 금요일인데도 늦게까지 일한거에요? 아니면 중요한 약속이라도 생겼나봐요. 그간 우리 바빠서 만난 지 좀 됐는데 드디어 내일 하림이 결혼식날 보겠네요.”
낮부터 와 있던 금형의 메시지에 대답을 하지 않은 시간이 길어질수록 미리는 중압감에 속이 답답해졌다.
몇 번이고 폰을 양손에 쥐어들고 엄지 손가락을 키보드에 갖다 대기를 반복했지만 이제 더 이상 미룰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아. 금형님. 연락이 늦었네요. 이거 참. 뜻하지 않게 보고할 업무가 생겨버려서 일하느라 지금까지 정신없었네요.’
‘아 이런. 미리님 엄청 고생했겠는데요. 급하게 마무리 하느라 늦어졌군요. 내일 미리님의 예쁜 얼굴이 돋보이도록 푹 자요.’
메시지를 확인한 미리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거울을 보며 평소보다 클렌징을 더 꼼꼼히 하고 그간 아껴뒀던 페이셜 오일을 듬뿍 발랐다.
미리는 피곤했는지 밤새 깨지 않고 창 틈으로 새어 나오는 빛줄기에 부스스 눈을 떴다.
습관적으로 폰을 열고 감기려는 눈꺼풀에 힘을 주어 근육을 들어 올리며 생각했다.
‘아 뭘 입고 가지? 옷도 없는데.. 그나저나 은근히 긴장되네.’
일어나서 거울 앞에 선 미리는 전날 밤 신경 써서 얼굴에 수분을 채워준 덕분에 피부가 한결 건강해 보인다고 생각하며 미소를 지었다.
회사에서 마무리 짓지 못하고 나온 보고서가 간간히 떠올라 신경쓰이긴 했지만 그녀의 몸은 결혼식장으로 향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