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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긋난 약속

by 밥반찬 다이어리

충무로역에서 급히 내린 미리는 사무실로 가기위해 환승했어야할 정거장을 두개나 지나쳐 왔다는 걸 알아차렸다.

“아후 이런.”

그렇다고 결혼식장이 있는 신사역 방향 열차에 다시 올라탈 수도 없었다.

이미 그녀의 머리 속에는 이대리가 헤짚어놓은 PPT의 기억을 다시 짜맞추지 않고서는 다음 행동이란 걸 할 수가 없는 혼란의 상태였기 때문이다.


“아휴 과장님. 안오셔도 된다니까 굳이 오셨네요. 어쩌죠.”그런 말은 미리의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런식으로 귀를 간지럽히는 미사여구는 알아서 편집할 줄 알게 되었다는 게 사회 짬밥의 장점이라면 장점이랄까.

“아. 이 대리님. 아까 말한 PPT 화면 좀 보여주시겠어요?”

“여기요.이 앞 페이지에 들어가야 되는 게 맞는지 모르겠어서요.“


미리는 다시 자리로 와서 가방을 내려놓으며 마음도 같이 내려놓았다.

‘어차피 왔어야 했구나. 다시 손봐야겠네.’


”황과장님. 근데 오늘 어딜 가시는데 그렇게 신경쓰고 오신거에요? 조금 늦더라도 꼭 가셔야겠어요. 집에 들어가기엔 너무 이쁘게 하고 오셨는데..“

미리는 얕은 한숨이 쉬며 속으로 말했다.

‘이대리님. 나도 그러고 싶었죠. 그런데 말야. 보고서 작업 마무리하면 이미 결혼식은 끝난다는게 문제죠.’

물 건너갔다는 상황을 받아들이니 차라리 마음이 편해졌다.

무엇이든 결정하기 전이 가장 고통스러운 법이다.


“위이잉이이이잉”

누군지 알법하게 다급한 진동소리가 요동쳤다.

책상 위에서 울리는 진동을 바라보며 미리는 고민했다.

사실을 말하자니 금형이 실망할 것이고, 말을 안하자니 무책임한 것 같았다.

그 두개의 고민 덩어리가 시소 양끝에 매달려 미리가 어느 쪽으로든 앉아주길 기다리는 듯 했다.


“미리님. 왜 전화 안받아요. 저 기다리고 있는데 오고 있는 거죠? 친구녀석 결혼 당일 되니 왜 제가 더 떨리는지..”

메세지가 도착했지만 미리는 창을 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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