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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침이슬 Nov 06. 2024

시간표에 숨겨진 암호

물상을 아시나요

"선생님은 무슨 과목이신가요?"


가끔 듣는 질문이다. 특별보강이 있거나 대타로 수업을 맡아 처음 들어가는 교실에서. 같은 학교에 있지만 해당 학년 수업이 없으면 학생들은 나를 모른다. 


"어떤 과목인 것 같아?"

"음... 딱 보니까 사회 쪽인데요?"

"..."


"영어네. 영어 선생님이죠?"

옆에서 누가 거든다. 애매한 미소로 답했다.


"과학인 것 같은데. 제가 사회 과목은 거의 다 들었거든요.

사회 선생님은 아니고 과학 쪽이네요."


역시 고3의 안목인가. 사회 과목을 다 들으면서 여러 선생님을 파악했구나. 그나저나 사회를 얼마나 들었다는 걸까? 교실 앞 시간표를 정독한다. 


고전, 실수, 언매, 실영, 사문, 정법, 생과, 생윤, D, E, F, G, H...


암호 같다. 봐도 무슨 과목인지 잘 모르겠다.  


시간표 아래에 선택과목과 이동수업 교실이 빽빽하게 붙어있다.

D 시간에 생활과 윤리는 3-1, 정치와 법은 3-2, 화학은 3-3, 지구과학은 3-4...

F 시간에 여행지리는 3-5, 생활과 과학은 3-6, 고전과 윤리는 3-7...


암호를 해독했다. 고전과 윤리, 실용수학, 언어와 매체, 사회문화탐구, 정치와 법, 생활과 과학, 생명과 윤리.


그러고 보니 같은 교무실에 계시는 사회과 선생님이 어떤 과목인지도 잘 모르겠다. 


동료 선생님들과 커피를 마시다가 과목 이야기가 나왔다. 

"나 때는 물상이었는데."

연차가 꽤 높은 부장님이 말을 꺼내셨다.


'물상이라...'

처음 듣는 말은 아니다. 어디선가 들어봤던 말이다. 물상... 물상... 과학 교과서 이미지가 떠오른다. 표지에 '물상' 진한 두 글자가 분명히 있었다.


"물상? 그게 뭐예요?"

90년대생 선생님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묻는다.


2000년대 이전 중학교 과학에 물상과 생물이 있었나 보다. 같은 교무실에서 같은 커피를 마시던 교사들이 학창 시절 물상을 배운 쪽과 아닌 쪽으로 나뉘었다. 추억을 소환하며 왁자지껄한 가운데, 반대쪽 선생님들은 대화 소재가 무엇에 관한 것인지도 모른다. 


내가 고등학생이던 시절과 비교하면 교과목이 정말 다양하다. 선택할 수 있는 과목도, 선택해야 하는 과목도 많다. 학생이 공부해야 하는 과목도, 시험 쳐야 하는 과목도 늘었다. 겨우 현재 교육과정에 익숙해지려고 하는데 내년에 또다시 새로운 교육과정이 적용된단다. 공부해야겠다. 공부엔 왕도가 없다. 나이는 중요하지 않다. 배움에는 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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