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질환 치료기 (4)
우울증도 낫기는 하네요
좋은 소식을 들고 왔다.
나는 콘서타를 끊었다.
그리고 우울증이 치료되고 있다는 증거들이 하나씩 나타나고 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어떻게 내가 우울의 수렁에서 빠져나왔는지 상세히 기록하려 한다.
1단계. 우울에게 잡아먹히다
우울증이 생긴지는 벌써 5년이 다 되어간다.
우울증이 생긴 계기는 코로나와 거듭된 실패라는 상황이 더해졌기 때문이었다.
나는 본래 우울을 소설의 주인공이 겪는 고난 정도로 생각했다.
더 잘 되려고 이런 안 좋은 일이 일어나는 거네!
이쯤으로 치부해버리고 살아왔기 때문에 회복탄력성이 좋은 편이었다.
내가 생각보다 긍정적인 사람이었다는 사실은 고3 일기장을 어느날 발견하면서 확인할 수 있었다.
기억하는 고3 시절은 불안과 고뇌의 연속이었지만, 일기장에서 나온 내용은 생각보다 긍정적이었다.
굳이 의도하지 않았는데 삶에서 좋은 기억들만 쏙쏙 꼽아내 일기장에 기록하고 있었다.
우울증에 걸린 나는 우울한 상황만 반복해서 복기했는데, 과거의 나는 반대로 즐거운 상황만 되뇌이는 사람이었다.
지금에 와서 회고해보자면 역설적이게도 우울증이라고 진단 받은 이후로 나의 우울증은 시작되었다.
해야 할 일을 못하거나, 안 좋은 일을 일부러 발생시켜도 "나는 우울증이니까 이렇게 행동해도 돼" 라는 면죄부를 내 스스로에게 부여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울증이니까 과제 안해도 돼.
우울증이니까 사회생활을 하다가 울어버려도 어쩔 수 없어.
우울증이니까 타인에게 힘든 소리를 할 수도 있는거 아니야?
이러한 생각들이 오히려 나를 우울증에 빠트리고 나태하게 만들었다.
우울증의 증상에도 여러가지가 있지만 나는 회피와 무기력으로 나타나는 성향이었기 때문에 이러한 생각과 행동이 반복될수록 삶은 악화되어 갔다.
2단계. 일반의 삶을 엿보다
우울증에 빠져 허우적 거리던 때의 나에게 어떤 악화된 사건들이 나타났는지는 굳이 기술하지 않겠다.
그저 대충대충 되는대로 살아왔지만 생각보다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이었던 것 같다.
학교를 무사히 졸업하고, 취직을 했으며, 애인도 생겼다.
하지만 여전히 삶이 무가치하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앞으로 인생에 나타날 고난들을 하나씩 격파해나가는게 내게 너무 버거웠던 것이다.
삶이란 고난의 연속에 불과하다는 말을 뼈저리게 되새기던 시절이었다.
그러다 세번째 정신과를 방문하게 되고, 콘서타라는 ADHD 계열 약물을 복용하게 된다.
콘서타는 굉장히 효과가 좋았다.
나를 회피와 무기력에서 끌어내어 회사에서 할 일을 할 수 있게 만들어줬다. (사실 그 이전에는 회사에서 7시간씩 카톡하고 1시간만 일했다...;)
회사에서 일을 하다보니 성취감이 생기고, 그 성취감이 나의 자존감을 회복시켜주었다.
마치 우울증에 걸리기 전의 나로 돌아간 듯한 느낌이었다.
계속 이 약만 먹을 수 있다면 나는 평생 괜찮아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약을 먹을 수 없는 상황이 오게 되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이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네번째 정신과를 방문하고, 콘서타는 우울증 치료에 도움이 되는 약은 아니라는 얘기를 듣게 된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나도 은연 중에 콘서타가 치료제는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있었던 것 같다.
콘서타 복용을 중단하자는 의사 선생님의 말에 동의를 하고 한 주간 콘서타를 먹지 않았다.
그 한 주는 최악이었다.
우울증이 전혀 낫지 않다는 말은 사실이었다.
나는 이전처럼 회사에서 아무런 일도 할 수 없었고 괜한 말로 애인에게 상처를 주기만 반복할 뿐이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일주일을 보내고 다시 병원을 방문했는데, 의사 선생님은 내 몰골이 말이 아니었는지 "이번 한 주만 더 버텨보고 안되면 다음 방문 때부터 콘서타를 낮은 양부터 복용할게요." 라고 하셨다.
일주일을 더 버티라니.
어떻게 버텨야 할까 막막한 순간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나는 다시 애인에게 피해를 주는 말을 하게 되었고, 그 말로 인해 우리는 다퉜다.
대부분의 말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애인이 내게 한 말 몇가지를 똑똑히 기억한다.
"자기는 의지력이 아주 강한 사람이야. 생각만 단단히 먹으면 뭐든지 다 해낼 수 있어."
"자기가 다 나으면 우리 더 잘 지낼 수 있겠지? 우리 행복하게 잘 사귈 수 있는 상황이니까 우울증만 빨리 해결하자."
이때 조금 깨달았다.
은연 중에 나는 우울증을 나을 수 없는 병이라고 치부하고 있었다.
과거 우울증에 나았던 친구에게 너는 어떻게 치료했냐고 물어보자, 그 친구는 "우울증은 평생 걸리는 것 같아. 그냥 계속 치료해야 하는거지. 나는 또 병원 갈 생각을 하고 있어."라고 답했다.
그 말로 인해 나는 우울증은 절대 나을 수 없는 병이고, 언젠가 또 다시 발병할 수 있으니 완치되는 것은 불가능하다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앞서 애인이 말했듯이 나는 생각한 대로 살아가는 사람이라, 우울증은 나을 수 없는 병이니 나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는 걸 그 말로 인해 깨달았다.
어쩜 이렇게 바보같을 수가.
나을 생각조차 하지 않고 치료를 진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정말 신기하게도 우울증이 나아야 한다, 나을 수 있다, 애인을 위해서라도 낫자, 라고 생각한 이후로 나의 상황은 빠르게 호전되었다.
3단계. 우울의 장막에서 벗어나다
내가 낫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회사에서 일을 할 수 있어야 했다.
콘서타를 먹지 않고는 하루에 1시간도 일 할 수 없었지만, 시간을 점차 늘려갔다.
1시간에서 3시간, 3시간에서 5시간, 일주일이 지난 후 마침내 나는 온전히 콘서타 없이도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병원에 방문했을 때 콘서타를 먹지 않았고, 앞으로도 안 먹어도 될 것 같다는 내 의사에 의사 선생님이 하신 말이 기억에 남는다.
"oo씨는 굉장히 의지력이 강한 사람이에요. 보통 콘서타를 복용하던 80%는 중단을 하지 못하거든요. 타고난 의지가 강하다는, 항우울에 도움이 되는 능력 하나를 타고나셨다고 보면 돼요. 이 사실을 self-validate해서 살아가셔도 됩니다."
많은 칭찬을 들으면서 나는 다시금 앞서 생각했던 사실을 확신할 수 있었다.
나는 정말 생각하는 대로 사는 사람이구나.
마음만 단단히 먹으면 못하는 일이 없겠구나.
삶의 희망을 엿본 기분이었다.
그리고 현재 나는 콘서타를 복용하지 않은 채 3주 가까이 흘렀다.
5일 정도 끊었으면 완전히 끊은거라고 봐도 된다 하셨으니, 나는 이제 콘서타 없이도 살아갈 수 있는 몸이 되었다.
물론 아직 항우울제는 복용 중이다.
약을 복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단번에 단약할 수 없어 여전히 복용해야 한다.
그러나 나는 왠지 모를 확신에 차있다.
약을 천천히 줄일 수 있고, 이제 나는 우울증에 걸리지 않은 나로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보다 세상은 살만한 곳일지도 모른다고.
생각보다... 인생이란건 값진 것이라고.
이 세상 모든 우울증 환자들에게
우울증을 겪는 모든 사람들에게 내가 무언가 조언할 주제는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저 내가 나아가는 과정을 전시함으로써 이런 형태의 치료도 있을 수 있구나, 깨닫기를 바라기 때문에 글을 적어가는 것이다.
나는 그들의 삶을 공감할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완전한 이해를 할 수는 없다.
어떻게 그 고통을 알 수 있다 말할 수 있으랴.
죽음을 눈앞에 둔 사람의 고뇌를, 쉬이 말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한가지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
해가 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
사주에서도 대운이 오기 전에 가장 큰 고난이 닥친다고 한다.
좋은 날을 목전에 두었기 때문에 고통을 받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미래지향적 생각이 우울증 환자들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 그렇더라.
그저 그 사실에 대한 한 증인이 되고 싶을 뿐이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행복하길 바란다.
행복이란 나와 가장 먼 단어라, 내게 있어 누군가의 행복을 바란다는 것은 그 사람을 사랑한다는 뜻과 다를바 없다.
그러니 당신이 행복하길 바라고, 긴 터널 끝에서 그래도 문이 존재하긴 한다는 점을 깨닫길 바란다.
당신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행복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