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작권, 그리고 창작의 희망

by EJ

1. 두 가지 경험


1) 나만의 글인가


글을 쓰다 보면 가끔 그런 경험을 합니다. 제 딴에는 나름대로 괜찮은 글귀가 떠오릅니다. 그런데 왠지 찜찜해서 검색 사이트에 접속하여 그 말을 입력해 봅니다. 예상했던 대로 그 말이 있습니다. 독창적으로 지어낸 말이라고 생각했지만, 다른 사람이 먼저 그 표현을 생각해 냈거나, 아니면 어디선가 본 글이 무의식 속에 남아 있던 것일 수도 있습니다. 만약 그 말을 자기의 것처럼 쓴다면 속절없이 저작권 침해 내지는 표절이란 오해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대형서점에 가보았습니다. 무수히 많은 책, 하루에도 수도 없이 쏟아져 나온다는 신간들…. 사람은 하고 싶은 말이 참 많다는 것을 새삼 느꼈습니다. 하루가 아닌, 글의 역사가 시작된 시점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까마득한 먼 미래를 생각하면, 책 속에 들어있는 생각과 표현의 양은 도대체 얼마나 많은 것입니까? 과연 그 많은 말들은 서로 다른 말들인지…. 저와 비슷한 생각과 표현을 선대, 동시대, 후대의 누군가도 할 수 있다고 보면, 별로 대단치도 않지만 이것이 과연 저만의 것인가 싶기도 합니다.


의사가 다른 훌륭한 의사의 기법을 적용하여 환자를 치료하면 칭찬을 받지만, 작가가 다른 작가의 표현을 적용하여 글을 쓰면 비난을 받습니다. 어느 사극에서 토지의 대부분을 소유한 귀족을 비판하면서, 송곳 하나 꽂을 땅도 남겨놓지 않았다는 대사를 한 것이 문득 생각납니다. 기존의 창작물을 피해서 자기만의 독창적인 작품을 만들어내려면, 해가 갈수록 우리의 후대 작가들은 고달플 수도 있겠습니다. 그것은 비단 글쓰기만의 문제는 아니고, 창의성을 요구하는 일을 하는 모든 사람의 도전 과제일 것입니다.



2) 나만의 글


이런 경험도 있습니다. 어떤 글을 써놓고 완성했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서 보니 고쳐야 할 부분이 보였습니다. 또 얼마의 시간이 지나서 보니, 고치면 더 나을 것 같은 부분이 보였습니다. 처음에 완성했다고 생각했던 시점에 글을 발표했다면, 결국 미완성의 글을 선보인 셈입니다. 이미 출간한 책 속에서 아쉬운 표현을 나중에 발견하면 공연히 독자들에게 미안해지기도 하고, 저작권으로서 보호될 만한 더 가치 있는 글을 쓰지 못한 것이 아쉽습니다. 어쩌면 완성된 글이란 영원히 있을 수 없고, 어떤 글도 실은 그저 미완성의 수위를 낮추어 선보이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타인이 이미 저작물로서 발표한 글은 법적으로 보호를 받고, 고의 여부를 떠나서 이를 무단으로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이러한 저작권에 대해 생각하다 보면, 수백 권의 책을 써낸 작가들도 대단하지만, 평생 한 권, 아니 단 몇 장 분량의 글을 전하고 가는 작가들도 존중하고 싶어집니다. 그것이, 세상에 내보일 만한 나만의 글은 한두 줄 쓰기도 어렵다는 자세로 오랜 세월 심혈을 기울여 독창적으로 일궈내고 가다듬은 것이라면….


그러나, 이러한 생각이 마치 저작권이 창작을 제한하는 제도라거나, 우리 스스로 창작의 문 앞에서 위축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2. 무한한 창작을 위하여


우리는 여전히 자유롭게 창작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작가는 새롭고 특별한 생각을 창조하기도 하지만, 누구나 공감하는 생각을 감동적으로 전달하는 사람들이기도 하므로, 생각의 틀이 유한할지라도 무한한 표현이 나와주길 기대해 봅니다. 이처럼 우리가 존중하고 보호해야 할 저작권의 대상은 생각이나 개념이 아닌 표현입니다. 기존에 없었던 새로운 생각들이 더 나타날 수도 있지만, 사람이 느끼고 고민하는 바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저작권의 대상을 생각이 아닌 ‘표현’으로 설정한 것은 합리적입니다. 앞서 후대의 작가들의 고달픔을 언급했듯이, 독창적인 생각뿐 아니라 독창적인 표현을 한다는 것도 물론 쉬운 일이 아니지만, 그래도 여기에 지속적인 창작의 가능성이 있습니다. 권리와 제약의 양면성을 가진 저작권이라는 사회의 규칙 속에서도 새로운 창작을 위해 자유롭게 더 정진할 수 있는 희망은 여전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생각을 더욱 풍성하게 표현하기 위해서도 상황에 따라서는 타인의 글을 인용할 필요가 있는데, 상업적인 이용의 경우에는 동의를 얻고 그 출처를 명확히 표시하며, 교육이나 비평 등을 위한 경우에도 출처를 명확히 표시하는 등 공정한 사용 절차를 준수한다면, 나의 글 속에 들어 있는 타인의 글은 내 생각을 더욱 확장하고 심오하게 만드는, 내 글의 떳떳한 일부가 될 것입니다.





3. 불변의 원리 : 저작권 존중, 그리고 창작의 공유


뛰어난 작품은 흔히 기존 작품의 토대에서 탄생합니다. 많은 저명한 작가들이 고전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고백합니다. 생각뿐 아니라 실은 표현도 고전의 융합이 저 밑에서 떠받치고 있을 것입니다.


AI 생성물 및 AI가 학습한 데이터의 저작권, 온라인상에서의 저작권 침해 등 새로운 도전 과제가 우리 앞에 있습니다. 창작자들이 정당한 저작권을 누리도록 국가는 법제도를 정비하고, 플랫폼 사업자 등은 가치를 정당하게 분배해야 합니다. 이와 함께, 창작자도 '해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전도서의 문구가 일깨워주듯이 자기 창작물도 수많은 사람의 보이지 않은 도움을 토대로 한 것임을 인정하는 열린 마음이 필요합니다. 그러한 생각으로 창작물을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도록 창작 공유의 문화를 더욱 활성화한다면, 우리의 문화는 더욱 풍성한 문화가 될 수 있습니다.


인공지능 시대에도 역시 ‘저작권 존중, 그리고 창작의 공유’라는 두 축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근본은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아마도 지금 진행하고 있는 ‘저작권 글 공모전’에 응모한 작품들의 상당수도 표현 방식은 제각각 다르지만 추구하는 방향이나 취지는 이와 유사한 내용으로 수렴할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4. 마치며 : 이어져갈 문화의 발전


저작권은 창작이나 문화의 향유를 제약하는 제도가 아니라 창작을 더 진흥시키고 다양화하며, 문화의 향유를 더욱 확대시키는 토대입니다. 우리가 타인의 저작권을 존중하는 문화를 만들어 가면서, 동시에 창작 공유의 문화를 더욱 확대해 간다면, 그리고 개척하기가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얼마든지 무궁무진하게 열려있는 표현의 세계에서 계속해서 정진한다면, 우리의 후배들도 앞선 창작자의 저작권을 존중하고 더 새로운 창작을 위해 노력함으로써 ‘문화가 계속 이어져 더욱 발전해 가는 고리’를 유지해 나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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