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매된 저작권, 훔쳐진 겨울

내가 셔터를 눌렀고, 그들은 다운로드했다.

by 혀니버터맘



이 글은 2025년 <브런치 × 한국저작권위원회> '세계 책과 저작권의 날' 공모전에 출품하는 에세이입니다. 창작자의 권리와 그 무게에 대해 누군가는 '겪어보지 않으면 모른다'라고 합니다. 그 '겪어본 사람'으로서의 경험을 기록하고 남겨둡니다.






봄 신상을 촬영하던 날이었다. 날씨는 한겨울, 옷은 봄이었다. 얇은 셔츠와 치마를 입은 모델은 입술이 파래졌고, 나는 얼어붙은 손끝으로 삼각대를 폈다. 햇살이 가장 예쁘게 들어오던 오후 3시. 시간을 기다려 햇빛이 들어오자 나는 카메라의 초점을 맞추고 앵글을 잡았다.


겨울 신상품은 한창 팔리고 있었지만 우리는 다음 시즌을 준비해야 했다. 외주 모델을 쓸 여유도, 포토그래퍼를 부를 예산도 없었다. 둘이서 모든 걸 해냈다. 동업자가 모델이었고 나는 사진을 찍었다. 구도와 배경, 동선까지 전부 내 손으로 설계했다.


그렇게 완성된 착장 사진 한 장은 단순한 이미지 파일이 아니었다. 마음과 시간과 체력이 함께 들어간, 우리의 겨울이었다. 쇼핑몰을 운영하는 동안 매 시즌 이런 노동을 반복했고 그 과정이 버겁기도 했지만 즐겁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찍은 사진을 그대로 쓰고 있는 타 쇼핑몰의 페이지를 발견했다. 심지어 얼굴도 지우지 않았다. 모델의 얼굴, 포즈, 배경, 심지어 옷이 접힌 결까지 모든 것이 고스란히 베껴져 있었다. 로고만 바뀌었을 뿐 모든 건 내가 만든 그 장면이었다.


내 사진을 도용한 쇼핑몰만 열 곳이 넘었다. 처음엔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곧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한 도매 중개업자가 내 사진을 B2B용으로 무단 제공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사진이 그들의 '판매용 이미지 자료'였다. 중개업자에 의해 나의 창작물이 도매로 팔리고 있었던 셈이다.


창작자의 권리가 무참히 유통되는 현실이 실감 났다. 일부 판매자는 상황을 알지 못했다고 했고 연락을 받자 곧장 사과했다. 당시엔 '저작권'이라는 개념이 지금처럼 일상적이지 않았다. 온라인 이미지를 ‘문제없이 써도 되는 것’으로 여기는 분위기가 컸다. 대부분의 판매자도 그 사진이 훔친 것이라는 사실조차 몰랐을 것이다. 하지만 정작 가장 책임져야 할 중개업자는 말했다.


“이 업계가 원래 그런 거예요. 예민하게 굴지 마세요.”


그 말에 분노가 차올랐다. 예민한 게 아니었다. 이건 '도둑맞은 사람'의 최소한의 권리 요구였다.


나는 고소를 결심했다. 사진 원본, 촬영 일시, 등록 시점, 비교 자료를 정리해 직접 고소장을 작성했다. 법무대리인조차 없었다. 고소장을 접수하고도 한참 후에야 방문하게 된 경찰서. 사이버수사대는 너무 바빴다. 담당 경찰은 경찰서 구석의 컴퓨터를 가리켰다.


“여기 앉아서 조서 직접 써보실래요?”


어이없지만 그 컴퓨터 앞에 앉아 직접 조서를 작성했다. 피해 시점, 증거 자료, 비교 이미지, 가해자의 사용 방식까지 모두 내 손으로 타이핑했다.


나는 단지 피해자가 아니었다. 창작자로서 내 권리를 입증해야 하는 기록자였다. 법은 '지켜주는 것'이 아니라 '지킬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에게만 응답하는 시스템'처럼 느껴졌다. 아무도 관심 없는 이 일을, 혼자서 이렇게까지 열 올리며 설명해야만 하는 현실이 참 씁쓸했다. 하지만 그만큼 확신할 수 있었다. 이 권리를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대신 지켜주지 않는다는 걸.


그 이후로도 몇몇 사건은 합의로 마무리되었고 어떤 사건은 끝내 해결되지 않았다. 명백한 도용임에도 '증거 부족'이나 '경미한 침해'라는 말 아래 솜방망이 처벌로 끝나는 경우가 허다했다.


나는 이 일 이후, 사진을 올릴 때마다 긴장하게 되었다. 이 사진도 누군가 가져가진 않을지, 워터마크를 넣어야 할지 생각을 하는 나 자신이 괴로웠다. 이제 창작 불신과 방어가 먼저인 작업이 되어버렸다.


어쩌면 저작권이란 건 거창한 게 아니다. ‘이건 누구의 손끝에서 시작됐는가?’, ‘그 사람에게 동의를 구했는가?’ 그 질문을 스스로에게 묻는 것. 그게 저작권의 첫걸음이다. 누군가의 콘텐츠를 사용한다면 우리는 그것이 누군가의 노동과 권리 위에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그 인식이 창작자의 권리를 보호하는 첫걸음이다.


2015년 겨울, 대중은 저작권에 무지했고 그래서 나는 내 사진을 지키기 위해 직접 싸워야 했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지금, '알면서도 쓰는 사람들'에게 그 권리를 설명해야 하는 현실은 그대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