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심하게도, 저는 고독합니다 - <깊은 강>

책속 글귀로 고전 맛보기 - 세계문학전집 160번.

by 이태연

엔도 슈사쿠의 작품입니다. 저마다 다른 아픔을 가진 네 명의 일본인이 우연히 인도여행을 떠나게 됩니다. 그리고 동양과 서양, 강자와 약자, 선과 악, 삶과 죽음이 한데 어우러진 인류의 거대한 흐름 앞에 서게 됩니다. 다음은 자신의 죽음을 예견한 듯한 작가의 말입니다. " 나는 이처럼 유유한 큰 강을 일찍이 본 적이 없다. 어디가 상류이고 하류인지 분간이 안 될 만큼 한낮의 갠지스 강은 고요하고 햇살을 받아 반짝이고 있었으나, 그때 나는 햇살에 빛나는 유유한 강 저편에 작게 아스라이 사라져 가는 작은 배를 상상하고, 나도 언젠가 죽을 때 그렇게 될 수 있기를 바라기까지 했다."



<< 이소베의 시선 >> - 일에 집중하느라 소홀히 대해 왔던 아내가 환생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죽자, 삶과 죽음의 고리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됩니다. 노년이 된 후에도 아내를 잊지 못하고, 환생한 아내를 찾아 인도로 여행을 떠나 점쟁이까지 찾아가게 됩니다.



* 죽음이란 모든 게 소멸되는 일이었다. 다만 그녀가 생전에 사용했던 일상의 물건들이 여전히 이 집 안에 남아 있다. (당신이 살아 있는 동안) 이소베는 생각했다. (죽음은 저 멀리 내 건너편에 있는 것 같았지. 그런데 당신이 두 손 벌려 막아 주었던 죽음은, 당신이 없어지자마자 바로 눈앞에 나타난 것 같아.)


* 이소베는 마침내 환생의 나라에 들어왔음을 느꼈다. 환생 같은 건, 진정으로 믿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의 귓속 깊디깊은 데서 아내의 마지막 헛소리가 내내 들려왔다. " 나……반드시…… 다시 태어날 거니까, 이 세상 어딘가에, 찾아요…… 날 찾아요…… 약속해요, 약속해요. " 이소베는 유리창에 비친 자신의 늙수그레한 얼굴에 눈길을 주었다. 희끗희끗한 백발, 뺨에 난 검버섯.


© parvibansal, 출처 Unsplash



* 아내가 죽기 전까지는 그런 사후의 일 따윈 전혀 무관심했지요. 죽음조차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허나 집사람이 숨을 거두기 전날 했던 말 한마디가…… 마음의 실에 딱 걸려 떨어지질 않습니다. 삶의 방식을 정했어요. 바보예요, 나도. 인생에는 알 수 없는 일이 있습니다.


* 강은 변함없이 묵묵히 흐르고 있다. 강은, 이윽고 재가 되어 자신 속에 흩뿌려질 시신에도, 머리를 그러안고 꼼짝도 않는 유족 남자들한테도 무관심했다. 이곳에서는 죽음이 자연의 일부라는 사실이 똑똑히 느껴졌다.


* 결국은 종교조차도 서로 증오하고 대립해, 서로 사람을 죽인다. 그런 것을 신뢰할 수는 없었다. 지금의 그에게는 아내에 대한 추억만이 이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잃고 나서야 비로소 아내의 가치, 아내의 의미를 알게 된 느낌이었다. 남자로서 일이나 업적이 전부라 생각하며 살아왔으나,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 외톨이가 된 지금, 이소베는 생활과 인생이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걸 겨우 알게 되었다. 그리고 자신에게는 생활을 위해 사귄 타인은 많았어도, 인생에서 정말로 마음이 통한 사람은 단 두 사람, 어머니와 아내밖에 없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 fraenkly, 출처 Unsplash



<< 오쓰의 시선 >> - 미모의 미쓰코에게 희롱당한 상처를 안은 채 신학도의 길에 접어듭니다. 그러나 신부가 되지는 못하고, 갠지스 강으로 죽으러 가는 가난한 사람들을 강가의 화장장으로 데려다주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신'이라는 단어가 거북하다면 '양파' 같은 단어로 바꾸어도 좋다고 하며, '양파'는 어떤 종교에나 존재한다고 말합니다.



* 내가 신을 버리려고 해도…… 신은 나를 버리지 않습니다.


* 당신에게 버림을 받았기 때문에, 나는…… 인간에게 버림받은 그 사람의 고뇌를…… 조금은 알게 되었습니다.


* 신이란 당신들처럼 인간 밖에 있어 우러러보는 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인간 안에 있으며, 더구나 인간을 감싸고 수목을 감싸고 화초도 감싸는 저 거대한 생명입니다.


* 소년 시절부터 어머니를 통해 제가 딱 한 가지 믿을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의 따스함이었습니다. 어머니가 잡아준 손의 따스함, 품에 안아 줄 때 그 몸의 따스함, 사랑의 따스함, 형제들에 비해 분명히 우둔했던 나를 보듬어 준 따스함. 어머니는 제게도 당신이 말하는 양파 이야기를 늘상 해 주었는데, 그때, 양파란 이런 따스함이 훨씬, 훨씬 강한 덩어리, 즉 사랑 그 자체라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제가 추구한 것도 양파의 사랑일 뿐, 이를테면 교회가 말하는 여러 다른 교의가 아닙니다. 이 세상의 중심은 사랑이며, 양파는 오랜 역사 속에서 그것만을 우리 인간에게 보여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 iatulp, 출처 Unsplash



* 저는 고독하기 때문에 필시 고독할 당신에게 이야기를 건네고 싶습니다. 한심하게도, 저는 고독합니다…….


* 신이란 단어가 싫다면 양파라 불러도 됩니다.


* 모든 종교는 똑같은 신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어느 종교이건 불완전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불완전한 인간에 의해 우리에게 전해져 왔기 때문이다.


* 그가 찾는 것은, 길 한쪽 귀퉁이에서 남루처럼 웅크린 채 헐떡거리며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인간의 모양새를 하고서도 인간다운 시간을 한 조각도 갖지 못한 인생이며, 갠지스 강에서 죽는 것만을 마지막 소망으로 삼아 마을에 간신히 당도한 자들이다.


* 인간의 강, 인간의 깊은 강의 슬픔, 그 안에 저도 섞여 있습니다.



© snowscat, 출처 Unsplash



<< 미쓰코의 시선 >> - 여러 남자를 만나지만 진정한 사랑은 하지 못합니다. 대학 시절 카톨릭 신자인 오쓰를 유혹하고 버리죠. 그러나 그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신혼여행지인 프랑스에서 신학 공부 중인 오쓰를 찾아가게 됩니다. 이혼 후 마음에서 우러나오지 않은 자원봉사도 해 보지만, 인도에서 오쓰를 다시 만나게 되면서 내면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 미쓰코는 가학적인 기분으로 자신의 사냥감을 보았다. 뭐든 시키는 대로 하는 남자, 나를 위해 하느님조차 버리는 남자, 그런 남자이기에 더욱더 곯려 주고 싶다.


* 어디론가 가고 싶다. 무언가를 찾아서 어디론가 가고 싶다. 확실하고 뿌리 있는 것을, 인생을 붙잡고 싶다.


* 대학 시절에 몸속을 마냥 치달았던, 자신을 더럽히고 싶다는 그 충동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이었는지 그녀는 사회인이 되고서야 깨달았다. 마음 깊숙이 뭔가 파괴적인 것이 숨죽이고 있다. 그것이 분명한 형태를 취하기 전에 미쓰코는 칠판지우개로 글씨들을 모조리 지우듯 소멸시키고 싶었다.


* 미쓰코는 자신이 다른 여자들과 달리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모래밭처럼 바싹 메말라 고갈되어 버린 여자, 사랑이 다 타 버린 여자.




© sergio_capuzzimati, 출처 Unsplash



* 사랑이란 뭘까. 오쓰는 양파란 무한한 부드러움과 사랑의 덩어리라고 했는데.


* 인생에는 미처 예상할 수 없는 일, 알 수 없는 일이 있다. 어떻게 인도까지 올 마음이 내켰는지, 스스로도 확실히는 알지 못한다. 그녀는 이따금 인생은 자신의 의지가 아닌,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힘으로 움직여지고 있는 느낌이 든다.


* 다시 태어난다고요? 전 잘 모르겠어요. 죽으면 모든 게 사라진다고 생각하는 쪽이 맘 편해요. 온갖 과거를 짊어지고 다음 세상에서 살기보다는.


* 사랑의 흉내 짓은 더 이상 원치 않았다. 진정한 사랑만을 원했다.


* 난 인간의 강이 있다는 걸 알았어. 그 강이 흐르는 건너편에 무엇이 있는지 아직 모르긴 해도. 그치만 과거의 많은 과오를 통해, 자신이 무얼 원했는지 이제 겨우 아주 조금 알게 된 느낌이야.


* 당신은. 정말로 바보야. 그 따위 양파 때문에 일생을 망치다니. 당신이 양파의 흉내를 냈다고 해서 이 증오와 에고이즘 밖에 없는 세상이 바뀔 턱이 없잖아요. 당신은 여기저기서 쫓겨나, 급기야 목이 부러져, 죽은 이의 들것을 타고, 당신은 결국 무력할 뿐이잖아요.




© nayanbhalotia, 출처 Unsplash



<< 에나미의 말 >> - 인도인 가이드입니다. 여행객들에게 인도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려 애씁니다.


* 그녀는…… 인도인의 괴로움 전부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인도인이 겪어야만 했던 병고와 죽음과 굶주림이 이 상에 드러납니다. 오랫동안 그들이 고통 받아 온 모든 질병에, 이 여신은 걸려 있습니다. 코브라와 전갈의 독에도 견디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녀는…… 헐떡이면서, 쭈그러든 젖가슴으로 인간에게 젖을 주고 있습니다. 이것이 인도입니다. 이런 인도를 여러분께 보여 드리고 싶었습니다.


* 그녀는 성모 마리아처럼 청순하지도 우아하지도 않고, 아름다운 의상도 걸치고 있지 않습니다. 거꾸로 추하고 늙었고, 괴로움에 헐떡이며 그걸 견디고 있습니다. 이 치켜올려진, 고통으로 가득 찬 눈을 한번 보세요. 그녀는 인도인과 함께 괴로워합니다. 조각상이 만들어진 건 12세기인데, 그 괴로움은 현재에도 그대로입니다. 유럽의 성모마리아와 다른, 인도의 어머니 차문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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