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시골 할머니 댁에 다녀오셨다며, 밭일이 많아서 힘들었다고 투덜거리신다.
나는 그 말에,
“엄마 오늘도 고생하셨겠다. 밭엔 뭐가 있었어?”
하고 물었으면 될 걸, 또다시 이렇게 답하고 만다.
“엄마는 왜 쉬질 않아? 아빠가 잘못한 게 아니라, 엄마가 쉴 줄 모르는 거야.”
엄마는 그저 고단한 마음을 내려놓고 싶었을 뿐인데
나는 엄마에게 ‘다르게 살아야 한다’는 말을 얹는다.
엄마는 서운해하고, 나는 후회한다.
엄마와 나의 대화는 늘 이런 식이다.
엄마는 딸이 조금이라도 더 잘 살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잔소리하시고,
나는 엄마가 조금이라도 편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잔소리한다.
서로를 사랑하는 마음은 충분한데, 그 마음을 전하는 방식은 공감보다 잔소리라는 언어를 쓴다. 그래서 우리는 가깝고도 멀다.
며칠 전 상담에서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우리는 자기 자신에게 가장 이상적인 엄마가 되어야 해요.”
순간 가슴이 울렸다.
생물학적 부모가 언제나 이상적인 부모가 되는 건 아니라고,
인간은 진화적 관점에서 보아도 동물에 가까운 면이 있어 누구도 완벽한 양육을 제공할 수 없다고 하셨다.
“그 한계를 넘어서 완벽에 가까운 부모가 되는 사람은 많지 않아요. 하지만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이상적인 부모가 될 때, 비로소 그 한계를 극복할 수 있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희망이 보였다.
엄마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나에게 해주면 되는 일이구나.
그렇다면,
정말 좋은 이상적인 엄마라면 지금의 나에게 어떤 말을 해줄 수 있을까?
"은아, 오늘도 집은 엉망이네!
남자 셋 키우면서 어떻게 집을 정리정돈 하면서 사니?
그렇게 부지런 떨면 에너지 바닥나서 둘째랑 못 놀아 줘 둘째한테 못 웃어줘
집 좀 엉망이면 어때 대신 첫째랑 둘째가 환하게 웃고 있잖아.
그런 아이들 보면서 너도 웃고 있잖아. 집은 좀 엉망이어도 괜찮아."
"은아, 오늘은 몸이 안 따라주니 더 힘들지?
몸이 자꾸 힘이 빠지니 네가 그렇게 사랑하는 둘째한테 자꾸 하지 말라 그러고
소리치게 되고 그렇지? 네가 둘째 안 사랑해서 그런거 아니란거 알아.
누구나 몸이 힘들면 자기 상황을 통제하고 싶어지고
그게 마음대로 안 되면 힘들어서 결국 소리치게 되고 그래, 괜찮아
아이이름 소리만 쳤지, 잔소리 구구절절 안 했잖아 그걸로 충분히 잘했어
네가 아이 이름 소리친 날보다 부드럽게 불러준 날들이 더 많은걸
오늘도 고생했다 내 사랑하는 딸."
이 글을 적으며 내 마음속 작은아이가 운다.
매일 잠들기 전 기억하고 싶다. 내가 나의 가장 이상적인 엄마라는 것을.
스스로에게 좋은 엄마가 되어 누구보다 따뜻하게 나를 토닥여주고 위로해 주고 싶다.
그렇게 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나는 나의 엄마에게도, 남편에게도, 아이들에게도
한결 더 따뜻한 사람이 되어 있을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