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먹고 저질러버린 것은 처음이었던 불효. 내가 살아가는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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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부 부모님을 위한 소원이네요."
무엇이 이상한 것인지 알지 못했다. 뒤이은 발표를 전부 듣기 전까지는. 모든 학생의 소원은 다 거기서 거기, 거의 비슷했다. 비싼 외제 차를 산다거나, 해외여행을 간다거나, 집을 산다거나. 지금은 몇 년 전의 이야기라 기억이 희미하지만, 확신할 수 있을 정도로 전부 그랬다. 마지막 발표에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어딘가 목이 죄는 것처럼 숨이 턱턱 막혔으니까. 썩 그리 통쾌한 사실이 아닌 무언가를 알아차리는 순간은, 마치 까맣다 못해 타버릴 것만 같이 아주 까만 천으로 내 머리통을 덮은 느낌이더라.
나는 사실 22살보다도 더 어렸을 때, 부모님께 해서는 안 될 말로 다짐 아닌 다짐한 적이 있다. 난 엄마, 아빠가 돌아가시면 바로 죽어버릴 거라고. 대신, 당신들이 살아계시는 동안에는 못난 실수도 잦고 많이 틀어지더라도, 어떻게든 열심히 살아갈 거라고. 뭐, 그런 말. 그 말이 어딘가 잘못됐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만큼 나에게 그들은 삶의 원동력이며 그들이 없는 삶은 살아갈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해야 하나. 그게 사실이기도 하고, 전부였다. 이럴 때 보면 나도 참, 몹쓸 말을 쏟아놓고 변명은 그나마 들을 만하게 하는구나 싶다.
"야, 라이터 있냐?"
"왜. 담배 피우게?"
"··· 아니, 좀 줘 봐."
흡연 구역 앞. 빽빽한 담배 연기가 내 머리 위로 흩어졌다. 왜인지 모르게 울컥하는 속을 꾸역꾸역 참아가며 써 내려갔던 종이를 연기와 함께 불태웠다.
"뭐 해! 그걸 왜 태워."
"아, 몰라. 그냥··· 나, 이게 맞나 싶다."
혼란이었다. 인간의 삶에 정해진 정답은 없다지만, 나의 소원 세 가지는 좋게 말해 효심이지, 지금 생각해 보면 미련한 X끼 그 이상, 이하도 아니라는 게 느껴져서.
들숨과 날숨을 가장한 한숨을 들이마시자, 여태 없던 갖가지가 머릿속으로 침투하기 시작했다. 남이 피우는 담배 냄새는 정말이지 역시나 역했다. 그래도 상관은 없었다. 간접흡연 따위는. 타들어 가는 내 소원, 아니. 미련함이 풍기는 냄새가 더욱 고약했다. 나는 그 모든 것을 한참이나 들이키고 내쉬길 반복했다.
"아, 씨! 알바 늦었다. 가라! 카톡 할게!"
부모님에게 나의 존재가 당장 득이 될 수 없다면 해는 끼치지 말아야겠단 생각으로 17살에 시작했던 아르바이트. 재가 돼 버린 종이로 인해 알 수 없는 깨달음을 얻었던 그날에도 아르바이트를 가야 했던 22살. 급여를 받으면, 그렇게 돈이 차곡차곡 모이면 엄마, 아빠에게 무엇이든 해 드리겠단 일념 하나로 했던 것들은 다 무엇이었나. 단 1년도 쉬지 않고 죽어라 했는데. 딱히 용돈이 필요했던 것도 아니고, 받은 적도 없고, 물욕이 심했던 것도 아니었는데. 3년, 4년 내내 옷 한 벌 사 입지 않을 정도로 그런 것엔 관심 없었는데.
대학교 강의 시간에 오가는 짧은 이야기일 뿐임에도, 내가 지니라 칭한 교수님의 가벼운 농담으로 시작된 순간임에도 단 한 번을 나를 위해 생각하지 않았다. 부모님을 위해 살아가는 삶? 누구도 강요한 적 없잖아. 그런데 나는 왜. 또는 나와 비슷한 누군가는 왜 그럴 수밖에 없는 걸까. 위하는 사람을 사랑하기 때문에? 글쎄. 그래도 그렇지. 만약에 소원 세 가지를 이룰 수 있다면. 고작 재미를 위한 시간이었잖아.
그날 밤. 평소와 다름없이 아르바이트가 끝난 후 녹초가 된 몸을 이끌고 편의점에 갔다. 군것질이라곤 거들떠보지도 않던 내가, 캔맥주와 과자 두 봉지를 샀다. 파라솔 하나에 자리를 잡고, 좋아하는 노래를 들으며 맥주와 과자가 바닥이 보일 때까지 먹어 치웠다. 그토록 궁금했던 과자 맛은 그저 그랬다. 딱 상상할 수 있는 맛. 근데 이상하게도 꽤 만족스러웠다. 잠깐이지만 행복했다.
"하아, 내일도 먹을까."
COVER IMAGE BY: Unsplash의Beau Carpen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