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족냉증으로 녹여야 했던 두툼한 그 손에.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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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지금까지도 병명을 확실히 알 수 없는(빌어먹을 기억력 탓에 기억이 안 나는) 병으로 아빠는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나는 전문대를 졸업하고 사립대 편입 불합격 여부를 기다리고 있던 때였던 것 같다. 대충 그 시기쯤이었다. 여러모로 불안했고, 돈은 모아도 모아도 모이질 않고, 갖고 싶은 것은 너무나도 많아졌다. 어릴 적 꿈꾸었던 나의 장래 희망에 대한 미련도 있었구나. 아무튼, 내 머릿속 자아가 홀로 사춘기를 겪기에 딱 좋은 환경이었다. 힘들었나? 슬펐나? 잘 모르겠다. 알 수 없었다. 내가 무슨 감정을 갖고 살아가는지. 같은 일상의 반복은 나를 무뎌지게 만들어서. 아, 겉만 번지르르한 걸레 같았다. 한번 사용하면 금방 눅눅해져 그 이상 흡수할 수 없을 정도로 쓸모없는. 나는 그 당시 재활용도 안 될 낡은 걸레였다.
운전 경력이 얼마 되지 않았던 나는, 아빠와 나의 목숨을 담보로 운전대를 잡았다. '사람만 안 치면 돼. 사람만 안 죽이면 돼. 천천히 가 보자.' 그렇게 한 시간가량을 달렸다. 조수석에 앉은 아빠는 눈 한번 감지 못한 채 긴장해야 했다. 이 초보 운전자가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르니까. 꼭 할아버지처럼 힘없는 목소리로 이러쿵저러쿵. "2차, 2차선! 천천히 꺾어야지." 이런 말을 끊임없이 이어갔다.
"강해야, 좀 쉬었다 가자."
"······ 힘들어? 저기 좀 앉을까."
동네 병원만 들락일 줄 알았던 내 눈엔 너무나도 거대한 병원. 여차저차 도착하자마자 차가운 계단에 나란히 쭈그려 앉아 마스크 틈새로 입김을 뿜어댔다. 수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곁눈질했다. 간간이 돌아 본 아빠의 안색은 죽어가고, 숨소리는 거칠어졌다. 극심한 수족냉증에 고생인 두 손으로 아빠의 손을 감쌌다. 이렇게 제대로 손을 잡아 본 게 언제가 마지막이더라. 두툼하고, 길쭉하고, 핏줄이 울퉁불퉁한 손. 그 듬직한 손이 내 손바닥 아래 감춰져 하얗게 질려갔다.
시름시름 앓는 소리를 내는가 하면, 어지럽다며 눈을 뜨지 못하는 아빠의 상태가 심상치 않았다. 여기 이대로 있어도 되나? 조금만 더 쉬면 괜찮을 것 같다고? 믿어도 될까? 의사를 불러야 하나? 사람들은 우릴 어떻게 보고 있을까? 나는 아빠의 두 손을 내 가슴속 깊은숨에 감싸길 반복했다.
'이거 뭔가 지금··· X 된 거 같은데.'
누가 봐도 정상은 아니었을 우리의 모습. 그러나 사람들은 겨울날 칼바람과 같이 쌩쌩 지나갈 뿐이었다. 감히 도와달란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아빠의 말을 철석같이 믿어보기로 했다.
걸어가는 내내 부축하고 있던 아빠의 몸은 늘어졌다. 얼굴은 꼭 금방이라도 저세상으로 가버릴 것만 같았다. 죽은 사람의 얼굴을 실제로 보면 이런 얼굴이겠다 싶을. 넓고 다양한 병원 시설에 죽을 둥 살 등 하다 정신을 차려보니 응급실에 도착했다. 어떻게 하다 거기까지 가게 됐더라? 아빠의 생사가 갈린 상황에 놓여있다 보니, 그런 순간순간들을 머리에 담을 새가 없었다.
위 세척을 하는 동안에 얼음장같이 차가운 손이 내 손을 꽉 부여잡고 놓아주질 않았다. 미친 사람 같겠지만, 나는 웃음이 새어 나오기도 했다. 그냥. 좋았다. 이 위기의 상황에서 내가 아빠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손 하나 내밀고 있는 거. 그게 전부지만, 보고 있기 힘들 만큼 안쓰러운 사람이 나 하나를 믿고 버틴다고 생각하면 힘이 절로 샘솟았다.
"우리 강해, 웬일로 아빠보다 손이 따뜻하네."
"··· 그러게. 신기하다. 어떻게 딱 이때 따뜻해지지?"
침이 질질 새고 입냄새가 좀 나는 게, 좀 그러면 뭐 어때. 그나마 안정을 되찾아가는 아빠의 말 한마디, 한마디를 더 듣고자 허리를 구부려 밀착했다. 조금 더 오래 냄새를 맡고 싶었다. 힘이 쭉 빠져 갈리는 목소리가 나에겐 유일한 버팀목이었다. 우리는 서로를 위해 더욱더 손아귀를 조였다. 우리 참 대견하다. 잘하고 있다. 그런 말을 건네는 것처럼 빈틈없이 꽉. 아빠는 역시 대단했다. 이걸 참아내네. 기특해서 죽어버릴 것만 같았다.
"혼자 안 무섭나? 혼자 갔다매. 아빠는 괜찮나?"
"에이, 뭐가 무서워. 아빠 지금 수술 들어갔다."
"뭐? 엄마는? 엄마한테는 말했나?"
급한 대로 결정하게 된 수술. 정신없이 쫓아다니느라 추운 날씨에도 땀을 삐질삐질 흘렸다. 숨 고르기가 무섭게 울려대는 벨 소리에 털썩 주저앉아 바닥을 응망했다. 나보다 12살 많은 언니는 어린 동생을 걱정하면서도, 아빠의 상태를 직접 알 수 없는 답답함 때문인지 쉴 새 없이 질문을 쏟아냈다. 동시에 엄마에게도 전화가 계속해서 걸려 왔다. 이런 상황에 무서움을 느낄 수 있겠나. 전문의라도 된 것처럼 환자 가족들을 다독이는 듯한 기분이었는데.
"난 뭐, 편의점 가서 김밥 먹으면 되지."
"밑에 식당 있다던데."
"나 편의점 음식 좋아하잖아."
"돈은 있나?"
"있지, 당연히."
식을 줄 모르던 내 땀이 겨우 멈춘 저녁. 별 탈 없이 수술은 잘 끝났더란다. 나는 또 엄마와 언니에게 전문의 행세를 하며 병원 건물 내 편의점으로 향했다. 당장 가진 돈 십삼만 원으로 얼마가 될지 모를 날을 버텨야 한다는 생각에 옆통수를 긁적이며 한참 동안을 배회했다.
"··· 감사합니다."
오늘 하루 밥 한 끼 먹지 못했다. 김밥 한 줄과 음료수 하나를 사 들고 흡연 구역으로 걸어갔다. 담배를 피우고 싶지 않았지만, 병실 안으로 들어가고 싶지도 않았다. 이어폰 줄을 타고 들려오는 노랫소리가 내 심장까지 꽝꽝 진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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