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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강해 Oct 28. 2024

삼십만 원과 아버지의 눈물.

수족냉증으로 녹여야 했던 두툼한 그 손에. [2]

https://brunch.co.kr/@naganghae/3




때로는 엄마의 잔소리와 달리, 내 인생에 도움이 되는 것이 있다. 아주 늦은 밤까지도, 이른 아침이 올 때까지도 잠을 안 자고 버텨가며 밤을 지새우는 습관 또는 고집. 아빠의 수술이 대수술이니만큼 쉬이 잠들 수 없었기 때문에. 내가 잠든 사이 아빠가 어떻게 돼버릴까 봐 졸음이 쏟아져도 눈을 감을 수 없었다.


갑작스레 결정하게 된 수술에 내가 갖고 있는 것이라곤 10년이라는 세월을 견딘 노스페이스 패딩, 김밥 한 줄과 음료수를 산 후 남은 11만 원이 든 체크카드, 이어폰, 담배 두 갑과 라이터가 전부였다. 하루아침에 간병인이 되어 병원 생활을 하게 되리라곤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아, 좋다."


무료한 시간을 채울 수 있는 건 한계가 있는 법. 아무것도 없는 병원에서는 당연히. 걷는 걸 싫어하지만 별수 없이 밤 산책에 나섰다. 무심코 올려다본 하늘이 캄캄했는데, 서늘한 바람과 함께 나를 뒤덮는 세상이 이상하게도 포근하게 느껴졌다. 입바람을 후 내뱉으면 허연 입김이 흩어지는 모양도 부뚜막에 두둥실 떠다니는 연기 같았다. 이가 시릴 만큼 큰 숨을 마시고 뱉으며 한 시간을 서 있는 채로 하늘의 품을 만끽하다가도, 세상은 너무 괘씸하다며 욕지기를 해댔다. 내 머릿속 자아의 사춘기가 들끓은 것이다. 세상은 X발 왜 나한테 이딴 일이 벌어지는 거냐고. 그러지 않아도 인생살이 힘들어 죽겠는데. 돈이라도 많으면 몰라. 허공에다 온갖 저주를 퍼붓다 보니 나조차도 잊고 있던 두려움의 존재가 물밀듯 올라와 젖힌 눈꼬리에 눈물방울이 맺혀 흘렀다.


"춥다···. 들어가자."


편의점으로 가 여행용 세면도구를 샀다. 수건은 아쉽게도 없지만 어떻게든 되겠거니. 갈아입을 속옷은 물론 옷 한 벌 없는 마당에 수건이 중요한가. 무엇보다 내 몸에 붙은 해로움이 아빠의 몸을 더럽힐지도 모른단 생각에 덜컥 겁이 나 달아나듯 샤워실 안으로 들어섰다. 덜컹거리는 문 하나를 간신히 걸어 잠근 채 헐벗고 있자니 괜히 불안하기도 했다. 저 밖은 성별 불문하고 모르는 사람들투성이였으니까.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열 수 있을 정도로 허접한 문을 등지고 서둘러 거품 질을 시작했다. 실수든 고의든 누군가가 이곳에 들어오면 얼굴을 가릴지, 가슴을 가릴지, 사타구니 사이를 가릴지 고민하며.


온몸을 씻어내고 나선 같은 자리만 빙빙 돌았다. 역시 수건은 내 생각만큼 없어선 안 될 존재였나. 길게 내려온 머리카락을 아무리 쥐어짜도 물이 뚝뚝 흘러 미칠 지경이었다. 벗어둔 옷을 들고 망설이다, 에라 모르겠다며 옷으로 전신을 닦아냈다. 어떻게 닦아도 물기 가득한 몸에 푹 젖은 옷을 다시 입는 건 두 번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을 정도로 최악이었다. 땀에 젖었던 위아래 속옷은 또 얼마나 찝찝한지. 씻었음에도 고린내가 진동하는 듯했다.




그 이후 며칠이 지나 아빠의 상태는 좋아졌다. 목소리는 여전히 힘이 없어 이제는 할아버지가 아니라 할머니 같았지만.


나는 남은 11만 원으로 아빠와 내가 먹을 간식을 사러 또다시 편의점으로 향했다. 그때 본 것은 말로만 듣던 샤인머스캣. 사람들 말로는 이게 그렇게 달고 맛있다던데. 그래, 이건 아빠 몫. 내 몫은···.



추억의 불량식품 아폴로 두 개와 헤이즐넛 향 커피, 얼음. 처음 병원에 왔던 그날 하루 만에 이 생활에 적응이라도 한 것인지, 말 그대로 룰루랄라 신나게 골랐던 간식들. 그래서인지 간호사 언니들은 죄다 나와 아빠에게 정말 보기 좋다며 칭찬일색이었다. "따님이랑 아버님 사이가 너무 좋아 보여요.", "간병하시는 분 중에 이렇게 밝으신 분 처음 봐요." 등등. 어두울 필요 있는가. 몸이 회복되길 기다리며 낯선 환경을 받아들이고, 아빠와 시시콜콜 농담하는 것이면 충분한데. 내가 유달리 긍정적이었던 걸까.


하기야, 가진 것 없는 날 대신해 엄마가 이틀 동안 내 자리를 채웠을 때 아빠는 굉장히 좌불안석이었다고 했다. 당신은 그냥 집에 가고 강해를 부르라고 했다지. "네가 있는 게 훨 편하더라. 엄마는 아픈 사람 앞에 두고 표정도 안 좋고, 말투도 까칠하고, 내가 뭐 부탁하면 짜증부터 내고···." 이틀 만에 나를 다시 만나자마자 한 말이 이 말이었으니.


나는 할머니 같은 아빠의 목소리가 웃겨 자지러지기 일쑤였고, 아르바이트하며 길러낸 넉살 덕에 간호사 언니들과 초코파이를 나눠 먹는다거나 모르는 어르신들과 짧은 수다 시간을 갖는 걸 즐겼다. 수면 부족에 시달리고 없는 돈을 아껴야 한단 강박에 뱃가죽이 등에 달라붙어도 소소하게 채우는 행복. 그거면 충분했다.


"아빠, 이거 샤인머스캣이래. 포도 그런 거. 드셔 봐."


아빠가 찍어 주신 내 모습. 지금 봐도 든든하다. 주머니에 손 꽂아 넣고 참 잘났다. 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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