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소설입니다.
그 해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했던 3월. 휴교령이 내려졌고 우리는 모두 집에서 꼼짝하지 않았다. 원래도 꼼짝하기 싫어하는 너는 출근을 안 해도 돼서 너무 좋다며 나에게 전화로 말을 전했다. 출근을 안 하는데 월급을 받는 직업이라며, 그러게 너도 공무원시험이나 보지 왜 그렇게 대기업에 목을 매느냐고 나에게 타박을 했었다. 그날 나와의 마지막 통화를 끝으로 나는 더 이상 너와 통화를 할 수 없게 되었다.
너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아닌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되고 말았다.
휴교령이 내려진 3월의 교사들에게는 출근 대신 줌으로 수업을 하라는 명령이 내려졌고, 줌이라는 세상을 한 번도 접해보지 못한 너는 온라인으로 여러 가지를 검색해서 마이크도 사고 조명도 샀다. 줌으로 할 수 있는 활동에는 뭐가 있을지 교사 커뮤니티도 샅샅이 살펴보았다. 그렇지. 너는 그런 교사였다. 늘 열심히 하고 누군가에게 피해를 끼치기 싫어하는 사람. 받은 건 꼭 돌려줘야 하고 사람들과 깊은 관계를 맺기 어려운 사람. 그게 바로 너였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아이들이 우리 반이라는 명렬표에 이름이 적히고 얼굴도 모르는 아이들의 학부모들과 전화로 상담을 하며 아이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불편한 점은 없는지 이야기 나누느라 하루가 다 지나가 버렸다.
그렇게 모두가 집이라는 감옥에 갇혀 지내던 3월, 벚꽃은 피었다 져버렸고 너는 창밖으로 봄냄새를 맡았다고 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봄냄새가 뭔데? 나는 조금 웃으며, 사실은 많이 비웃으며 그렇게 물었다.
따뜻한 냄새, 있잖아. 봄냄새.
그런 게 진짜 존재하는거야? 시에서나 나오는 표현
그래? 나는 이게 봄냄새 같아. 따뜻한 바람 냄새.
여기서 나는 심하게 웃어버리고 말았다. 웃기고 있네, 라는 생각을 하며.
사실 네가 교사가 되고 나는 너를 무척이나 질투했다. 일반대학을 나온 나는 졸업하고 4년째 취준생이라는 신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고, 지방 교대를 나온 너는 당당하게 초등학교 교사가 되었다. 그리고 코로나 바이러스로 출근하지 않는 동안에도 월급을 따박따박 받았다. 세상이 참 불공평하다고 생각했다. 고등학교 때 더 공부를 잘하던 나였으니, 그렇게 생각하는게 당연한게 아닐까. 나는 인서울이었고, 너는 연고도 없는 지방으로 진학을 했을 때, 내 인생은 네 인생보다 찬란하게 빛날거라고 의심하지 않았다. 그렇게 너를 질투하며 나는 월세가 밀려가고 있었다. 코로나 때문에 아르바이트 자리에서도 잘리고 집에서 밥만 축내고 있는 나는 네가 코로나에 걸려서 죽길 바랐다. 그랬는데, 너는 좀비가 되고 말았다. 이건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네 동생은 참 한량이었다. 어쩌면 너와 그렇게 다른지 신기하다고 보는 사람들마다 이야기했다. 코로나로 인해 거리두기가 진행되는 와중에도 네 동생은 신촌의 클럽에서 술에 취해있었다. 남이 마시던 술잔으로 같이 마시고, 마스크도 쓰지 않은 채 화장은 진했고 향수 냄새는 담배 냄새와 겹쳐져서 역겨웠다. 내가 너희 자매를 싫어했던 이유 중에 하나는 네 동생 때문이다. 항상 운이 좋은 예쁜 애. 내가 들어가고 싶어 하는 대기업을 한 번에 입사 한 애. 그래서 내 속을 뒤집어 놓았던 애.
모두가 코로나에 걸릴까 봐 집 밖으로 나가지 않던 시절에 당당하게 클럽에는 놀던 생각 없는 애. 그러고도 코로나에 걸리지 않은 애. 나는 너보다 그 애를 더 싫어했다. 한마디로 너희 자매는 참 재수없는 애들이었다. 그렇게 다른데도 사이가 좋은 것 까지도 모두 다 꼴 보기 싫었다.
그날 너는 그 애를 데리러 클럽으로 향했다. 이런 시국에 클럽에서 놀다가 코로나라도 걸릴까봐 걱정하는 너의 마음이 여기까지 전해지는 것 같았다. 그러나 네가 감히 누굴 걱정하겠니. 네 동생은 술에 취한 채 친구들에게 포옹과 키스를 남발하고 네 차에 타서 잠이 들어버렸다. 그리고 너는 클럽에 들어갔다가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되고 말았다. 심지어 94F 마스크까지 썼는데도 말이다. 아 불쌍한 내 친구.
너는 코로나에 걸린 줄도 모르고 다음날 출근을 했다. 하필이면 학생들이 등교하는 날이었다. 수업을 하고나서 너는 몸이 너무 안 좋아 조퇴를 했다. 그 길로 코로나 검사를 했고 너는 확진이 되었다.
학교는 발칵 뒤집어졌다. 코로나 초창기에 그랬다. 확진자의 동선을 파악해서 사람들에게 연락을 돌리는 일. 개인정보따위는 무너져버린 대한민국에서 너는 거의 최초의 먹잇감이 되어버렸다.
“서울 서초구 한 초등학교에서 근무하고 있는 김모 교사가 집합제한 명령을 어기고 신촌의 한 클럽에 다녀온 후 코로나에 확진되었습니다. 김씨는 그 사실을 숨기고 출근을 하였고 학급 학생 중 6명이 감염되었습니다. 질병관리본부에서는 김씨와 접촉한 모든 사람들을 검사하였고 교육당국에서는 김씨에게 징계를 검토하고 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살면서 뉴스에서 너의 소식을 들을 줄이야. 너처럼 있는 듯 없는 듯 지내는 애가 뉴스에, 그것도 나쁜 소식으로 만나게 되다니, 나는 너무 기뻐서 눈물까지 흘리며 웃어댔다.
너는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뭐,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았고, 평소 네가 클럽에는 가지 않는다는 것을 아는 지인도 많지 않았다. 너에게 친구라고는 나밖에 없었으니까. 네 엄마는 너에게 조금 미안했지만 동생을 위해서 입을 다물어주기를 원했다. 대기업인사팀에서 알면 동생은 잘릴 수도 있다고. 적어도 너는 공무원이니까 잘릴 염려는 없지 않냐고. 평소 철밥통이라는 자랑을 나에게 하면서 나에게도 9급 공무원 시험을 권유했던 너니까 네 말에 책임을 져야했겠지. 감히 나한테 9급 공무원이라니. 기가 막혀서 그날 잠도 못잤다.
그 날 부터였을 것이다. 학부모들의 항의가 시작된 것은. 처음에는 코로나에 확진된 학생의 어머니들께서 울면서 전화를 걸어 원망을 쏟아 놓는 것부터 시작되더니 종국에는 반 전체 학부모들이 담임 교체를 원한다며 교장실로 찾아가는 일까지 벌어졌다. 너는 교장 선생님의 종용으로 학부모들 앞에서 무릎을 꿇고 사과를 해야 했다. 얼마나 치욕스러웠을지, 이제 내 기분을 알았겠지? 교사라고 자랑질해대던 네 앞에서 내가 그만큼 치욕스러웠다는 걸. 이제야 좀 깨달았길 바랐지만 너는 그럴 새도 없이, 나에게 미안한 마음은 전혀 표현하지도 않은 채 교실에서 목을 맸다.
다음날은 코로나로 등교하지 않는 날이었다. 아이들이 집에서 줌을 켜고 기다리는데 도대체 줌이 열리지 않자, 학부모들이 교무실로 또 항의 전화를 하기 시작했다. 교감선생님은 교실에 올라왔다가 천장 선풍기에 매달려 있는 너를 발견하고 혼절을 했다고 한다. 너의 부고 소식을 듣고 나는 슬프거나 놀라거나 미안하다는 감정보다는, 너는 갈 때까지도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친다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다.
이 사건은 뉴스에 보도 되었지만 여론은 너에게 호의적이지는 않았다. 당시에 클럽에 가서 코로나에 걸린 교사라는 프레임이 너에게 씌워져 있었기 때문에 너는 이미 전 국민의 적이었다. 적인 네가 죽었다고 하니 오히려 사람들은 집에서 목을 매지 학교에서 목을 패는 민폐교사로 너를 더욱 낙인찍었다. 너는 죽어서까지 전 국민의 욕받이가 되었다.
나는 이런 사태를 모두 지켜보며 너의 장례식에서 육개장을 먹었다. 너의 대학 동기들이 몇몇 왔다갔지만 평소 집에만 있기를 좋아하고 친구라고는 나밖에 없던 너였기에 너의 손님보다는 너의 부모님의, 너의 동생의 손님이 더 많았다. 아니, 시작부터가 코로나 장례식이었기 때문에 손님 자체가 거의 없었다. 썰렁한 빈소를 지켜보며 육개장을 먹는 나는 육개장이 참 맛있다는 생각을 했다. 원래는 코로나 시국에 서로 음식을 먹는 일 자채가 금지되어있었다. 장례식에서도 물이나 조금 마시고 가는 손님들이 대부분이었지만 나는 3일동안 너의 삼일장을 함께 해야 했기 때문에 밥을 먹은 것뿐이다. 내가 뭐 딱히 너를 좋아해서 육개장을 먹은 건 아니라는 걸 알아주길 바란다. 그렇다고 내가 3일장에 함께 한 것도 너를 좋아해서는 아니었고 그저 너에게 친구라고는 나밖에 없는데 내가 절친이라고 믿는 사람들에게 실망을 주기는 싫었기 때문이다. 방송국에서 취재하러 나와서 너의 부모님과 싸우는 모습도 꽤나 재미있었다.
그렇지만 아무리 친구라해도 입관식에까지 참여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 네가 입관할 때 텅 빈 빈소에 나 혼자 지키고 있었다. 올 사람도 없지만 나는 입구에 앉아 너를 미워했던 지난날을 떠올렸다. 그리고 조금은 후회도 들었다. 이렇게 갈 줄 알았으면 너무 미워하지는 말 걸 그랬다고.
하릴없이 휴대폰만 들여다보고 있는데 입관이 원래 이렇게 길어지는 건가 싶을 정도로 오래 걸렸다. 거의 2시간이 지나있었다. 나는 허리가 아파 장례식장 밖으로 슬슬 나가보았다. 5월의 햇살은 따사로웠고 초록으로 빛나는 나무에서 풀냄새가 났다. 이게 바로 봄 냄새인가, 네가 말하던 봄 냄새가 이런 건가, 하고 피식 웃었는데 웃음소리는 비명으로 바뀌었다. 내 목에서 나는 소리는 아닌데 장례식장 곳곳에서 비명소리가 퍼져나오고 있었다. 입관 할 때 저렇게 슬픈거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다시 하늘을 올려다 보았는데 내 옆으로 검은 상복을 입은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며 뛰어가고 있었다. 나는 그들을 바라보다 뒤를 보았는데 거기 네가 있었다.
입에는 피를 흘리며 명주옷은 군데군데 빨갛게 물들어있었고, 너는 의례 그 표정 없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내 옆을 스쳐가는 누군가가 도망쳐! 라고 소리쳤고 내 옷소매를 잡아끌었다. 비현실적인 모습에 그를 보니 네 동생이었다. 언니 빨리 도망쳐! 이 사태의 원흉. 네가 아닌 네 동생. 그 애가 클럽에만 가지 않았다면 너는 아직도 살아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나는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그리고 나에게로 몸을 삐걱대며 걸어오는 너를 보았다. 죽었다던 애가 살아나서 나에게 다가온다. 봄 냄새를 잔뜩 품고서.
그제서야 나는 네가 조금 안쓰러워졌다. 얼마나 눈을 감기 억울했으면 다시 살아났을까.
나는 봄 냄새를 맡으며 눈을 감았다. 나뭇잎 하나가 얼굴을 스치고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