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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air May 23. 2022

너나 잘하세요.

미니멀


정리하는 것을 그리 즐기는 편이 아니다. 그래서 집이 종종 폭탄 맞은 모양새를 하곤 한다. 그래도 미니멀 라이프를 지향하면서 물건을 조금(아주 조금) 덜어내었더니 자주 정리하지 않아도 그럭저럭 모양새를 유지하곤 한다. 무엇보다 제주의 주택으로 이사하며 집이 넓어지고 수납공간이 많아지면서의 이유도 있는 것 같다. 아무튼 오랜만에 주방 가전의 배열을 바꾸면서 베란다의 식재료를 정리했는데 그곳엔 내가 이전에 사다 놓은 삼계탕 재료가 나왔다. 당황했다. 나는 우리 집에 있는 모든 물건을 파악하며 살고 있다고 장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다 놓은 삼계탕 재료가 집에 있었네?'




얼마 전 삼계탕을 끓이려고 재료를 사러 마트에 갔다. 삼계탕용 닭을 사고 삼계탕 끓일 때 육수를 내려고 한약재가 들어있는 한방 재료 팩을 사려고 찾았다. 종류가 꽤나 다양했다. 삼계탕 재료로 들어가는 한약재에는 황기, 엄무, 당귀, 구기자, 대추, 오가피 등이 있었다. 한약재라서 그런지 다양하게 고루 들어있는 재료 팩이 조금 비쌌다. 한약재 한 팩에 4~5천 원인데 1번밖에 사용하지 못하니 조금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료를 제대로 다 구비해서 삼계탕을 만들 바엔 역시 외식이 나을까? 일단 다른 것부터 사고 다시 돌아와서 신중하게 골라봐야겠다 생각을 했다. 그러다 아이 하원 시간이 가까워져서 사려던 것을 잊어버리고 급하게 돌아왔다. 결국 나는 삼계탕 재료가 담긴 팩을 사지 못해 못했다  그래서 집에 있던 갖가지 야채와 인삼, 대추 등을 넣고 삼계탕을 만들어 먹었다. 그날따라 왠지 모르게 부족한 맛이었다. 아쉬웠다.




그랬기 때문에 베란다에 놓여있는 삼계탕 재료를 보면서 당황스러웠다. 왜 그것이 남아있었냐면 원래 한약재로 된 팩을 하나만 사고 싶었는데 마트에서는 그 삼계탕 재료 팩 개당 가격이 꽤 비싸곤 해서, 여러 개 들어있는 제품이 그나마 저렴해서 사놓게 된 것이다. 우리 집 아이는 입이 정말 짧은데 딱 몇 가지만 열렬히 좋아해서 스스로 찾아 먹는 것들이 있다. 그것 중에 한 개가 삼계탕이라 자주 끓여먹게 된다. 심지어 자주 끓여먹었는데, 그리고 베란다 재료들도 잊어버릴 새라 자주 정리해줬는데도 불구하고 잊어버린 것이 나에겐 너무 충격이었다.






삼계탕이 보글보글









대형마트에 가면 여러 개 함께 파는 묶음상품이 판다. 1+1 은 기본이고 2+1 제품들도 진짜 많다. 확실히 여러 개 사면 가격이 저렴해진다. 그런데 나는 그것들이 집에 오랫동안 쌓여있을 생각을 하면 마음이 불편하다. 그래도 식재료는 금방 사라지니 괜찮다. 식재료나 소스 등은 여유 있게 구입해 놓는 편이다. 떨어지지 않고 구비해놓는 것은 카레 가루, 짜장 가루, 수프 , 소스 등의 것들이다. 주기적으로 먹는 것은 오히려 묶음으로 사야 저렴하다. 그렇다고 대용량 팩을 선호하지는 않는다. 왠지 많이 들어있는 것을 사면 먹기도 전에 금방 질리는 느낌이랄까?




물건 중에는 어떤 것들은 1개만 사도 1년 가까이 사용하는 것들이 있다. 그 나머지 것들을 1년이나 보관하면서 지내야 한다는 것이 생각만 해도 너무 불편하다. 예를 들면 내가 지금 사용하는 빨랫비누는 사용한 지 거의 1년이 넘은 것 같은데(이전 집에서도부터 사용) 아직도 1/3 가량이 남았다. 그때 내가 빨래 비누를 1+1으로 샀더라면 아직도 사용하지 않은 빨비누가 남아 우리와 함께 이사를 왔을 것이고, 앞으로 최소 3개월을 쓰고 그다음 후에 새로운 빨래 비누를 꺼내 사용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그 비누는 대략 15개월 정도 우리 집 서랍장에 묵혀있다는 것인데... 정말 긴 시간이 아닌가! 그나마 다행인 건 비누에는 유통기한이 없다는 것일까?



그래도 현재 살고 있는 제주 집은 넓은 편이라 다행인 건데, 만약 집이 좁았더라면 나는 더 예민해지고는 했을 것이다.










지금도 서랍장엔 의도치 않은 물건들이 자리하고 있다. 예를 들면 선물로 받은 선크림이다. 작년 6월인가에 선물 받았는데 벌써 1년이 지났다. 지금 사용하고 있는 선크림은 어마어마한 대용량이라 아마 올해 말까지는 충분히 사용할 것 같은데 이러다 사용하지도 않은 선크림이 유통기한이 다 돼서 버리는 일이 생길까 봐 너무 무섭다. 게다가 어디선가 받아온 샘플은 왜 써도 써도 나오는 것일까? 분명 샘플을 주면 좋다고 받아오는데, 화장품 본품 사용하는 도 오래 걸리기 때문에 샘플을 사용하는 일이 많지 않다. 그래서 꼭 유통기한이 다해서 버리기 일쑤다. 아깝다. 정말 아깝다.




그것 외에도 아이 영어 책을 사면 영어 노트를 한 권씩 주는데 그것도 꽤 여러 권 샀더니 공책이 쌓이기 시작했다. 정작 필요했던 한글 노트는 인터넷에서 10개 묶음 밖에 팔지 않아 그것으로 샀더니 아직 2개 정도밖에 못써서 지금 영어 노트와 한글노트가 서랍장에 가득 들어있다. 언젠가는 쓸 노트지만 왜 그것이 서랍 속에 쌓여 있는 것이 답답해지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남편은 나랑 다른 것 같다. 치약을 1개 사도 한 달은 넘게 충분히 사용할 텐데, 지난번엔 치약을 5개나 구입하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마트에 다른 물건을 사야 해서 갔는데 거기서도 치약이 싸다며 2개를 더 구입했다. 하루에 치약을 7개나 구입하는 것이 내가 보기엔 조금 이상했다. 남편은 충치가 잘 생기는 이라서 양치질을 열심히 하곤 한다. 그래서 치약도 많이 사용하기도 한다. 그래도 치약을 한 달에 한 개는 못쓸 텐데... 저 치약이 묵혀진다면 최소 7개월인데. 7개월 동안 혹시 치약이 세일하지 않을까 봐서 그런가? 참 이상하다.






사용되길 기다리는 칫솔, 치약, 쉐이빙 폼





남편은 쇼핑을 좋아하지 않는다. 옷도 가방도 신발도 거의 사는 일이 없다. 근데 유일하게 맥주, 치약, 바디로션, 비누, 선크림 이런 것들은 욕심내어 구입한다. 특히 나중에 먹을 것이라며 컵밥이나 죽 종류를 사들고 올 때면 혹시 내가 밥을 주지 않고 굶긴 적이 있나? 그런 생각도 들곤 한다. 그래도 먹는 것은 결국 없어지긴 한다. 그런데 남편 옷장에 쌓여있는 비누 3개를 볼 때면 왜 내가 마음이 무거워지는지 모르겠다. 고작 비누 3개인데... 저거면 한 2년은 넘게 쓰겠지? 이 집에서 이사할 때에는 다 사용했길 간절히 바라는 중이다.






비누 4개 세트는 영원히 쓸 것만 같아





 

비누를 보면서 심란한 마음이,  다행히도 당근 마켓에 한 달 동안 올려놓았던 아이의 장난감이 한 개가 팔리며 조금 가라앉았다. 나라도 물건을 차근차근 정리하고 있으니 다행이다.




그런데 나는 나의 물건이나 신경 쓰지, 왜 남편이나 아이의 물건까지 제거하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그렇지 않은가? 나나 잘하자~ 나나 삼계탕 재료 사 온 것이나 잊어버리지 말고 잘 기억해뒀다가 유통기한 넘기기 전에 사용하자~!!라는 생각이 드는 하루다. 다음엔 잊지 말고 꼭 집에 있는 삼계탕 재료 팩을 사용해야겠다!












메인 사진 : https://pin.it/3 IRWAaL

본문 사진 : https://pin.it/3 j3 Syg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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