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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air Dec 01. 2021

요리가 싫다.

집밥은 이제 그만

아침에 일어나 아이를 등원시켜놓고 곧바로 돌아와 샤워를 한다. 상쾌한 기분으로 컴퓨터를 켠다. 그리고 조금 아주 조금의 시간이 흐르고 본격적으로 무엇을 좀 하려고 하면 남편이 깨어난다. 기지개를 켜고 밖으로 나온다. 나의 흐름이 끊긴다. 그냥 끊기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끊긴다. 아침은 얼마나 의욕적인가. 엄청난 대작 글을 쓸 수도 있을 것 같고 나는 아침에 커피나 한잔하며 책을 보면 좋겠는데 그것은 불가능하다. 나는 하던 일을 멈추고 아침 겸 점심을 차려야 한다. 뭘 좀 해보려는데 멈춰야 하니 정말 짜증이 난다. 특히 아침에 너무도 글이 잘 써지는 날 그것을 끊고 밥을 차리려면 신경질이 난다. '그놈의 밥' 코로나 이후 계속 재택근무를 하는 남편 덕분에 하루 두 끼를 꼬박 차려내고 있다. 하루 한 끼만 차렸으면 나는 덜 지쳤을까?




휴, 지겨워. 밥 좀 그만 먹고살면 좋겠어.




이 소리가 절로 나온다. 매일매일, 매일 아침저녁으로 하는 소리다. 되도록 마음속으로 하려고 노력하는데,

종종 입 밖으로 나온다. 며칠 전엔 아침밥이 차리기 싫어 구시렁거리다가 남편에게 혼이 났다. 그렇다고 밥을 안 차린 것도 아닌데 이런 소리를 듣고 있어야 하니 "니가 밥 차려 먹던가"라는 소리가 목구멍까지 나왔지만 참았다.



지금 내가 월급을 아주 많이 받고, 이 집안의 경제활동을 책임지는 사람이었다면 나는 그 소리를 입 밖으로 낼 수 있었을까?



지금 내가 해야 하는 일은 '전업주부'의 일이다. 이 일은 매달 월급을 받기 때문에 청소, 빨래, 음식 만들기 등의 일을 기본으로 포함하고 있다. 전업주부의 생활이 너무 길어지니 지쳐서 올해 초에는 출근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퇴사하고 난 후에는 똑같이 출근 시간을 지키며 카페로 출근해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곤 했다. 출근을 할 때나 안 할 때나 그래도 아침은 거의 매일 차려놓고 나갔다. 내가 워킹맘이 돼도 이 '밥상 차리는 일'은 끝나지 않았다.



그래도 서울에서의 생활은 견딜만했다. 왜냐하면 저녁은 종종 외식을 하기도 했고 때론 우리가 먹고 싶은 음식을 시간에 맞춰 배달해먹으면 되었다. 혹은 걸어서 3분 내에 반찬가게가 최소 5개가 넘었다. 그런데 제주도에서는 다르다. 먼저 저녁 외식하는 시간이 맞지 않는다. 아이가 하원에서 외식을 하러 가기엔 너무 이른 시간이고, 또 집에 와서 잠시 있다가 저녁시간에 맞춰 나가면 우리 집 앞 큰 도로는 제주도의 가장 큰 메인도로기 때문에 그 시간에 움직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 도로의 계속되는 정체로 왔다 갔다 운전하고, 길에서 버리는 시간이 너무 크기 때문에 우린 평일의 외식은 거의 포기했다. 그런데 더 슬픈 것은 내가 사는 곳은 위치상 배달도 안 되는 것이다. 가끔 들어오는 배달앱 쿠폰을 보며 눈물짓는다.



누군가는 음식 만드는 일을 매일 기쁨으로 할 것이고, 누군가에겐 그 일이 지옥에 있는 일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미안하게도 난 후자다. 이런 마음으로 요리하는 것이 미안하기도 하지만 나는 요리를 하는 것이 정말 정말 싫다. 왜 매일 아침, 점심, 저녁 세끼나 먹어야 하는지도 모르겠고 그것도 매일 다른 메뉴를 고민해서 먹어야 하는지, 그리고 그 메뉴를 만들기 위해 일주일에 한두 번은 꼭 마트를 가서 대량의 식재료를 사 와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아마 나 혼자만 살았다면 인스턴트, 라면, 햄버거, 치킨 당연히 외식메뉴로만 살았을 것이다.



다행인 것은 남편은 내가 차려주는 모든 음식을 아주 맛있게 먹는다는 것이고 , 불만인 것은 매일 다른 음식을 먹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말로 하진 않지만 너무도 뻔히 알고 있는 터라 나는 알게 모르게 그것이 스트레스다. 매일 다른 반찬으로 상을 차려내는 일. 정말로 쉽지 않다. 참고로 우리 아이는 태어날 때부터 지금까지 먹는 것에 전혀 관심이 없다. (더 슬프다.)





어차피 해야 할 일이라면 기분 좋게





난 이게 어렵다. 그러니까 매일 투덜거리며 밥을 차리겠지. (정말로 매일 투덜거리는 것이 아니다. 변명 아닌 변명) 나는 평생 이렇게 밥을 차리며 살 수 있을까?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안다. 이 생활이 족히 내가 죽는 날까지 계속될 것이라는 것을. (결혼을 원망한다. 흑흑...)



사실 작년엔 여러 가지 이유로 내가 워킹맘이 잠깐 되었던 것인데, 그곳에선 매 따뜻하고 맛있는 점심을 줬다. 몇 년 만에 매일, 점심마다 남이 손수 차려준 음식을 먹고 있자니 정말 행복했다. 나를 위해 차려진 한 끼는 정말 맛있고 소중했다. 그래서 결심했다. 나중에 돈을 많이 버는 순간이 오면 꼭, 매끼마다 식사를 차려주는 분을 고용하고 싶다. 진심이다. 나는 지금 차도, 집도 필요 없다. 나에겐 오로지 밥을 해줄 사람이 필요하다.








오늘은 비가 온다. 비가 오니 부침개랑 막걸리가 자동으로 생각난다. 지금 바로 그 갓 부쳐낸 부침개가 먹고 싶은데 또 몸 움직이지 않는다. 글에 대고 계속 불평했지만 난 오늘도 저녁을 만든다. 참고로 내가 생각해놓은 오늘 저녁 메뉴는 '비빔밥'이다. 소고기를 볶고, 무생채를 만들고, 콩나물을 데치고, 버섯을 볶아야 한다. 아... 오늘 저녁도 푸짐하겠다. 오늘 저녁 메뉴는 정해두었으니 내일 아침이 또 걱정이다. 도돌이표 나의 고민. 아! 정말 지겨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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