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는 딱 한 개의 책장이 있다. 8칸으로 이루어진 보통 책장이다. 그 책장은 아이가 어릴 때 전집을 사면서 사은품으로 받은 것이다. 그래서 그때부터 지금껏 아주 잘 사용하고 있다. 그곳에는 전집이 꽂혀있기도 하고, 빌려온 책을 꽂아놓기도 하고, 맨 아래칸 중에 한 칸은 장난감 보관하는 칸으로 사용하고 있다.
지난번 도서관에서 책을 나눔 받았다. 도서관은 때마다 책을 정리하는데 가끔 대량으로 정리할 때 운 좋으면 전집도 얻을 수 있다. 그래서 원래 사고 싶었던 한국사 책을 얻게 되었다. 신났다.
새로운 책이 들어오니 기존에 있던 책을 정리해야 했다. 물론 아래칸의 소품을 빼고 넣어도 되지만 사실 책이 계속 그 자리에 있다고 읽는 것은 아니니 여러 번 읽은 책과 오래도록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책들은 정리하는 것이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보던 자연관찰 책과 과학동화책이 전집으로 두 칸을 꽉 채우고 있었다. 물론 최근에도 잘 보던 것이지만 아무래도 수준이 좀 낮아서 이제 한번 바꿔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것들을 정리하기로 마음먹었다.
주위에 나눔 하고 싶었지만 마땅히 보낼 곳이 없어서 당근마켓을 이용했다. 자연관찰 전집과 과학동화 전집을 각각 올려놓았다. 그런데 한참을 팔리지 않았다. 그런데 몇 번 문의만 와서 조금 귀찮아졌다. 그러던 어느 날 먼저 가격을 제시하며 자연관찰 책을 팔라고 하는 사람이 있었다. 생각했던 가격보다 훨씬 적었지만 그래도 빨리 보내는 게 좋아서 그냥 그분께 두 개의 전집을 모두 넘겼다.
책장에서 전집이 두 질이나 빠지니 텅 비었다. 늘 꽉 찬 책장이 답답했는데 그렇게 정리되니 속이 시원했다.
그리고 한편에 꽂혀 여전히 갈길을 잃은 책 기다리는 책이 있었다. 그중에 몇 권은 아이의 피아노, 바이올린 교재, 나의 중국어 학습 책, 그 외 드로잉책, 미로 찾기, 숨은 그림 찾기, 색칠하기 등이다. 그중에 한참 동안 보지 않고 방치된 것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누군가에게 나눔 하는 것도 좋을 것 같았지만 중간중간 아이가 사용한 흔적이 있어서 그럴 수가 없었다.
버리려고 내버려 둔 것 중에 '다문화 만들기 북'이라는 것이 있었는데 내용을 보니 종이로 자르고 오려서 만드는 것들이었다. 그냥 버릴까 아니면 어떻게 할까 한참 고민하다가 아무래도 멀쩡한 것을 그냥 버리는 것은 아까워서 주말 동안 아이와 함께해 볼까 해서 꺼내두었다. 그래서 몇 가지를 만들 수 있었다.
그 밖에 아직 멀쩡한 책 몇 권 중에 중요한 책은 몇 권 더 나눔을 해야 할 것 같고, 그렇지 않은 것은 정리해둬야 할 것 같다. 그래서 두 칸이 모두 정리해야 할 책이다.
얼마 전 본가에 다녀왔다. 내 방 방문을 열었더니 전집의 책들이 가득 쌓여있다. 그것들은 지난번 오빠네가 책을 정리한다고 했을 때 나에게 줄까 하고 물어봤던 책들이다. 다시 보니 책이 조금 많긴 하지만 지금 가지고 있는 책을 다 정리하면 책장 하나에 다 들어갈 것 같다.
요즘은 소장한 책 보다 도서관에서 빌려보는 책이 훨씬 더 많다. 그래도 집에 책을 가지고 있는 기쁨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처럼 소유만 하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물려받은 책을 다 보고 다시 정리하는 것이 목표이다. 많은 책을 소유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아이에게 양질의 책을 읽게 도와주고는 싶다.
한때 거실 인테리어로 책을 한쪽 면이 가득 꽉 차게 해 놓고 살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그것은 아이를 만나 이런저런 책을 사모으며 소용이 없어졌다. 여전히 집 한편 고전을 모두 구입해서 책장 빽빽이 꽂아놓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하곤 하나 역시 책은 도서관에서 빌려보는 것이 최고라고 생각한다.
내가 매주 빌려보는 책은 10권이 넘는다. 도서관 3군데만 돌아도 15권씩 빌릴 수 있다. 그러니 가족 셋이 빌리면 45권 정도를 빌려볼 수 있다. 주로 하루에 책 한 권을 읽고는 한다. 하나를 쭉 읽지는 않고 병렬식으로 3권의 책을 돌려가며 읽는다.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그래서 내 소유의 책은 거의 정리했다. 한때 유명한 책들을 다 모으고 있었는데 이제는 거의 다 정리하고 11권 정도만을 가지고 있다. 물론 본가에 있는 대학, 대학원 전공서와 이런저런 책을 합치만 그것보다는 더 많겠지만 일단 현재 내가 사는 집에 소유한 것은 딱 그 정도이다(언젠가 본가의 전공서적도 버리고 싶은데 그것은 아직 버리기가 아쉬워 보관 중이다)
내가 소유한 11권 중에는 시집 두 권과 고전 한 권 가장 좋아하는 작가님들 책 두 권, 영어로 쓰인 원서 세 권, 내가 쓴 책 두 권, 지인이 쓴 책 한 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소유한 책은 영원히 함께 하고 싶어 그래서 남겨둔 유일한 책들이다. 앞으로는 내가 쓰는 책만 소유하고 싶은 마음이다.
가진 물건 중에 책을 정리하는 것이 제일 어려울 줄 알았는데 책을 정리하는 것이 가장 편했다. 도서관이 내 책장이다 생각하고 정리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한 권도 소유할 필요가 없었다. 언제든 원할 때 가까운 도서관으로 가면 되니까 말이다.
책을 물질로 소유만 하지 말고 정말로 머리로 가슴으로 소유하는 내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
그렇게 점점 책을 소유하지 않는 자유를 누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