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료로 향초 만들 기회가 있었다. 값싼 향초가 아니라 천연오일과 재료로 만들 수 있는 좋은 향초였다. 예전의 나라면 공짜니까 무조건 만들어야지 생각했다면, 요즘은 필요하지 않은 것은 아무리 공짜라도 갖지 말자는 주의이다. 그래서 거절했다. 집안에 새로운 향초가 생기진 않았지만 이미 가진 것으로 충분했다.
집을 조금씩 자주 비워내다 보면 어느새 물건을 사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 어떤 물건이라도 아무리 작은 물건이라도 그것이 모이기 시작하면 점점 거대한 산을 이뤄나가기 때문일 테다.
게다가 어떤 물건이 들어오면 그 물건 때문에 집에 있는 다른 물건을 억지로라도 더 비워야 하는 것도 알기 때문이다. 물건을 마구마구 사고 싶은 생각이 드는 날이면 더더욱 쓰레기 봉지를 들어야 한다.
원래는 물건을 버리기를 참 어려워하는 사람이었다. 모으고 또 모으고, 버리지도 못하고 잘 모아놓는 스타일이면서 게다가 물건을 사는 것도 참 좋아했다. 그런데 요즘엔 물건을 자꾸만 버리고 싶다. 물건을 사는 기쁨은 진작에 알았고 여전히 굉장히 기쁘다. 그러나 물건을 버리는 기쁨을 알게 된 지는 얼마 되지 않는다.
가장 버리기 힘든 것은 사이즈가 늘 같은 내 옷이나 신발이다. 자주 오래 입어 낡아버린 옷도 내가 아끼던 것이라 버리는 것이 어렵고, 이미 수명을 다 한 것 같은 신발도 눈감고 몇 번은 더 신을 수 있을 것만 같다.
차라리 작아진 아이의 신발이나 옷이 부럽다. 어차피 작아서 못 입지 않는가! 내 옷이 작아지는 것은 너무 끔찍한 일이니까 차라리 옷이 확 커지면 좋겠다. 지금 여기서 한 3킬로만 사라지면 지금 버려야 말까 고민하는 꽉 끼는 옷들을 버리지 않을뿐더러 몇 번이고 더 입고, 심지어 남는 사이즈에 여유롭게 입을 텐데 하는 생각도 든다.
이런 생각으로 살다 보니 이제는 더 이상 내 삶에 필요하지 않은 물건도 생겼다.
최근에는 바디샤워와 린스 및 트리트먼트 제품을 사용하지 않고 있다. 여름에는 매일 같이 샤워를 두세 번씩하고 있었으니 바디샤워가 필요할 틈이 없었다. 갖고 있던 바디샤워가 다 떨어진 후에는 아이의 것을 사용했고 꼭 필요하다면 비누가 있기 때문에 그것을 사용할 생각이다.
머리카락이 펌이나 염색이 되어 있던 시절에는 머릿결이 많이 상해있어 매번 머리를 감을 때마다 린스나 트리트먼트를 해줘야 하는 시간이 꼭 필요했다. 그러나 머리카락을 온전히 잘라서 생머리인 지금은 그것들이 필요 없다. 그래서 더 이상 필요하지 않아 졌다.
요즘은 바디샤워나 타월을 사용하지 않으니 몸이 덜 건조하기도 하다. 물론 가끔 그 향긋한 냄새가 나는 것이 그리울 때도 있지만 지금은 딱히 필요하지 않는다. 매일 샤워하는데 물로만 샤워해도 괜찮은 것 같다.
다만 점점 추워지며 날이 건조해지니 바디로션은 필요한 것 같다. 집에 있는 오일과 바디로션을 전부 찾아내어 알뜰하게 쓸 생각이다.
또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게 무엇이 있을까 고민해 본다.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은 너무도 많다. 이 글을 쓰며 내가 가지고 다니는 가방을 살펴보니 수많은 것들이 들어가 있다. 텀블러, 이어폰, 핸드크림, 립밤, 립스틱, 지갑, 빗, 여분의 양말, 동전지갑 등등...
이 작은 가방에도 이렇게나 많은 것들이 들어있는데 일상생활에서 필요한 물건이 얼마나 많을까?
그럼에도 조금씩 내가 쓰는 물건을 간소하게 줄여나가려고 한다. 더 이상 사용하지 않고, 즐겨 쓰지 않는 것은 영원히 안녕할 수 있도록 노력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