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같은 반 친구가 전학을 간다고 했다. 지난여름 같이 생일 파티를 여느라 그 아이의 엄마를 만났을 때 엄마는 고민 중이었다. 좀처럼 제주가 적응이 안 된다고 했다. 그러더니 결국 전학을 간다고 한다.
제주가 적응이 안 된다는 말. 이곳에 2년을 살았는데 아직도 낯설다는 말이 떠올랐다. 그때 현지인들 얼굴에는 다들 이게 무슨 말이냐고 얼굴에 물음표가 떠오르는 것이 보였다.
외지인들만 아는 그 마음. 그런데 나는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알 것만 같았다. 나도 그와 같은 마음이었으니까.
'우리 집이 아니잖아'
사실 제주에서만 이런 마음이 들었던 것이 아니다. 서울에서도 미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신혼을 보냈던 미국에서도 당연히 학위를 마치면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와 서울의 첫 번째 집은 정말 싫어서 별 생각이 없었고, 그러다 두 번째야 드디어 마음 놓고 살던 곳에서 갑자기 집주인에게 계약을 종료하겠다는 말을 듣고 더욱 그 마음이 커졌다. 결국 그 어느 곳도 진짜 내 집이 아니었으니까...
그러다 제주를 왔는데 언제 떠날지도 모르고, 게다가 이번에도 집주인과의 계약이 언제 끝날지 모르니 그것은 당연한 마음이었다.
4년 차 제주... 이제 제주는 완전히 적응도 했고, 낯설지도 않다. 음식, 마트, 병원 등등 뭐 하나 불편한 것이 없다. 게다가 여기 집주인들은 오히려 그들이 육지에 살아서 이곳은 우리가 원하는 만큼 더 살 수 있을 것도 같다. 그러나 또다시 닥쳐올 추위와 잔디 깎기가 걱정되고 싫어지고... 다시 마음에 선긋기가 시작되었다.
'한계'
부적응이 아니라 우리는 이곳 생활의 한계를 깨달았을 때 떠나고자 마음을 먹었다.
어떻게 하면 제주에 더 오래 살 수 있었을까... 그러나 조금 더 살고, 못 살고의 문제이지 분명한 것은 이곳에 영원히 살 생각은 없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차라리 이제 그만 정리하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1%의 아쉬움이 있을 때 떠나자.
이제 그만 제주를 떠나자.
며칠 전 마지막으로 정원의 잔디를 깎았다.
잔디를 깍을때 사용하던 잔디 깎기 기계도 올해로 4년이 되었다. 분명 입주하며 창고에 전기 잔디 깎기 기계가 있었지만 작동하지 않았다. 그래서 수동으로 된 저렴한 것으로 살 수밖에 없었다. 그때 물건을 사면서도 1년 길어봤자 2년을 쓸 것이라 생각했지만 무려 4년이나 썼다. 올해 잔디 깎기 기계를 보니 많이 노후되어 있었다. 날에 조금씩 생기는 녹이라던지, 군데군데 나사가 빠지기도 했다. 그러니까 4년 동안 정말 알차게 잘 썼다 싶었다.
마지막으로 잔디를 깎으며 속이 시원했다. 사실은 정말로 하기 싫었다. 작년부터는 잔디일지를 쓰고 있는데 '내가 얼마나 잔디를 자주 깎았는지'를 눈으로 볼 수 있었다. 올해는 무려 27번이나 잔디를 깎았고(작년보다 자주, 짧게 깎았다) 올해도 더위와 모기와 싸우느라 힘들었다.
그래도 마지막 잔디를 깎는다니 시원섭섭했다. 부끄럽게도 매번 구시렁거리며 잔디를 깎았는데, 무려 4년이나 깎은 셈이니 최소 90~100번은 잔디를 깎았을 텐데 그렇게 긴 시간 동안을 불평하고 있었다니 마음이 참 불편하고 힘들었다.
분명 내 집이었다면, 내 정원이었다면, 이곳에 여기 영원히 살 것이라면 그렇게 끊임없이 불평했을까?
그것은 나의 문제기도 했지만 이곳을 떠나야 사라질 불평이기도 했다.
더 이상 미련을 갖는 것도, 불평을 하는 것도 지쳤다. 새로운 곳에서 완전히 달라질 수 없겠지만, 그래도 다른 곳에서 새롭게 시작해 보자 마음을 먹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제 그만 제주와 이별할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