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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

주택살이는 어려워

by Blair

오랜만에 여유 있는 아침이다. 그런 아침 내가 한 일은 마당의 거미줄을 제거하는 일이었다. 거미줄을 제거할 때마다 느끼는 것은 집안에 들어오는 거미는 그래도 작고 귀여운 축이라는 것이다. 야외에 거미줄을 열심히 치고 살아가는 거미들은 오색빛깔 찬란하며 굉장히 통통하고. 크고 무섭게 생겼다. 그리고 어찌나 거미줄을 많이 치는지 핼러윈 데이에 집에 거미줄을 따로 치지 않아도 이미 거미줄로 뒤덮인 모습을 연출해 줄 지경이다.



그래서 때때로 마당 곳곳 거미줄을 제거해줘야 한다. 무시무시한 거미와 싸우기 위해서는 장갑과 마스크 그리고 기다란 막대기가 필요하다. 사실은 기다란 막대기만 있으면 되지만 왠지 마스크도 하고 장갑과 끼면 거미가 덜 무섭기 때문이다.



거미줄을 열심히 제거했다. 그러다 아주 우연히 태양광 기계를 봤다. 오래간만에 확인한 그 기계에는 빨간 버튼이 켜있었고 아래에는 점검이라고 쓰여있었다. 화면에는 계통 차단기 확인이라는 분명 한국말이지만 무슨 말인지 모를 글이 쓰여있었다. 일단 조심스럽게 태양광 기계의 버튼을 온오프 해봤다. 그래도 똑같아서 다시 한번 해봤다. 전혀 효과가 없다. 할 수 없이 그 위에 있는 차단기 함을 열어봤다. 그런데 열어보니 차단기는 없고 선이 가득한 것을 보며 놀라서 문을 닫았다. 그리고 태양광 패널이 설치되어 있는 2층으로 올라가서 살펴본다. 뭐라도 해볼 것이 있는 것인가 매의 눈으로 찾아보지만 할 수 있는 것이 전혀 없었다.



어쩔 수 없이 태양광 인버터 기계 앞쪽에 쓰인 사이트를 검색해 고객센터에 전화를 건다. 목소리만 친절한 상담원은 이것저것 만져보라고 한다. 그래도 기계에 별다른 반응이 없자 자신은 기계를 만드는 곳이지 as 하는 곳이 아니므로 태양광 설치업체에 맡겨보던지, 전기를 보시는 기술자들에게 as를 맡겨보라고 한다. 그것도 안되면 본인들한테 연락을 해도 되긴 하는데 그러면 맡기기만 해도 10만 원이 훨씬 넘는 출장비가 넘으니 알아서 하란다. 오 마이갓!

(그냥 전화를 절대 하지 말라고 할 것이지!)



결국 집주인에게 연락하여 태양광 업체와 as기사분의 연락처를 받았다. 다행히도 태양광 as 기사님과 바로 연결되어 점심을 먹기 전에 도착하셨고 금세 고치고 떠나셨다. 휴... 다행히 간단한 작업이었다.



겨우 이렇게 짧게 써진 글이지만 오랜만의 휴식을 방해한 반나절의 고군분투기이다.



주택살이는 쉬운 게 없다. 그동안 쉬운 게 하나도 없었다.




태양광 이녀석... 아침부터 왜 말썽이야!







이번이 as기사님을 만난 처음이 아니다. 당연하다. 그러나 마지막일 것이라 기대해 본다. 이사를 두어 달 남겨놓고 as기사분을 또 만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분명 제주의 주택살이는 낭만만 있을 줄 알았으나 현실이었다. 왜 이렇게 고장 나는 것이 많은지, 때마다 하나하나 as기사를 불러가며 고치는 것은 사실 좀 피곤했다.



어떤 날에는 샤워를 하는 중에 보일러가 터지는 소리가 나서 급하게 보일러로 뛰어가기도 했고, 또 어떤 날은 난로와 연결된 전기콘센트에서 타는 냄새가 맡기도 했다(불이 날 뻔), 가장 걱정이었던 것은 배수구가 막혀서 물이 역류하는 것이었다. 무려 두 번이나 고압으로 뚫었다. 어떤 날은 데크가 썩은 줄 모르고 데크 위에서 뛰어가다 데크가 아래로 부서져서 그 사이로 다리가 쑥 빠져 멍도 들고 상처가 난 날도 있었다. 어떨 때는 부는 바람에 등이 엎어져 때마다 일으켜 세우느라 고생했다.



지난번에는 아무래도 샤워기에서 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너무 커서 바깥으로 나가보니 호수가 연결된 배관이 터져서 목욕탕처럼 밖으로 물을 내뿜고 있었다. 그 달 상하수도 비용은 참 많이 나왔었다.



심지어 태양광 as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사 오자마자 제일 처음으로 고장 나서 새로 설치한 것이기도 했다. 물론 업체선정부터 설치기사분을 부르는 것도 다 내 몫이었다.



사실 이 집의 가장 큰 문제는 노후에 의한 누수였다. 이사올 때부터 그것이 문제였다. 처음엔 2층 거실에 누수가 좀 있었는데 신경 쓰이지 않았다. 일년살이하고 갈 것이라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러나 누수가 이곳저곳 점점 늘어났다. 나중엔 창고의 전구를 타고 물이 흘러내리기도 하고, 창고 사이사이 그리고 창문 틈에서도 새고 특히 마지막으로 2층 방까지 크게 물이 샌 것은 조금 큰 사건이었다. 결국 대대적인 방수 공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큰돈을 들여 방수공사를 했는데도 집 구조 특성상 완전히 방수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정말로 안타까웠다.









몇 년 동안 한 집에 살게 되니 이제야 집안 곳곳 고치는 것에 익숙해졌다. 그러나 그렇다고 고장 나는 게 좋거나 즐겁거나 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제발 고치지 않게 조금만 더 버텨다오 이런 마음으로 살고 있다고나 할까?




하지 마 그때마다 다행인 것은 집주인이 너그러워 아낌없이 고쳐주셨다. 그렇다고 무엇이든 쉽게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매번 집안의 집 밖의 모든 것이 고장 나지 않고 무사하길 진심으로 바랬다.




종종 불평을 하면서도 계속 이 집에 살고 있으니 사람들이 물었다. "그냥 가까운 곳으로 살기 조금 편한 빌라나 아파트로 이사 가는 것은 어때? 조금 더 안쪽 동네로 들어가면 주택도 좀 더 저렴한 가격에 살 수 있고, 요즘은 정원도 다 관리해 준다는데 그런 곳으로 가는 것은 어때?"




그러나 이사를 갈 마음이 없었다. 그 가장 큰 이유는 이 집이 마음에 들어서였다. 그래도 제주의 이층 집이 마음에 들었고 제주에 산다면 쭉 이 집에서 살고 싶었다. 그리고 다른 이유는 얼마 남지 않는 기간 다른 집에 가서 살며 그곳을고치기는 싫었다. 여기서는 적어도 보일러, 배수구, 태양광, 방수 등등 이런 커다란 것들을 고쳤기 때문에 당분간은 고치지 않아도 될 일이었나. 적어도 내가 고친 것은 다시 고장 나지 않을 테니 이 정도면 괜찮은 마음도 있었고 말이다.




그러니까 애증의 이층 집은 제주에 내가 제일 살고 싶게 해 준 집이자, 동시에 더 이상 고치고 살고 싶지 않아 떠나고 싶은 가장 1순위의 이유이다.




평화로워 보이기만 하는 정원





몇 년간의 제주생활에 가장 좋았던 것도 이 집이고 정말 귀찮았던 것도 이 집이다.



햇살이 가득 들어오던 정원은 언제 보아도 흐뭇했지만 그 정원을 가꾸기 위해서 흘린 땀은 한 트럭이었고, 커다란 벌레와의 싸우며 지냈지만 적어도 모기는 없다며 기뻐했고, 정원에 피는 꽃과 열매를 보며 늘 흐뭇한 마음으로 즐겼다.



나는 영원히 제주 이층 집에서의 추억을 잊지 못할 것이다. 내 생애 가장 그리워할 기억 중의 하나로 남겨놓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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