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 그리고 외할머니. 우리 모두에게는 이렇게 두 명의 할머니가 있다.
나의 친할머니 그러니까 아버지의 엄마는
내가 내 아이만 할 때 아니 내가 기억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때부터 늘 침대에서 앉아계셨다. 할머니는 그때부터 여태까지 몇십 년을 앉아계시다가... 내가 제주에 내려온 해의 늦은 가을 돌아가셨다.
할머니는 우리(오빠와 나를)를 아주아주 예뻐하셨다. 그리고 우리 가족을 챙겨주셨다. 그러나 나는 성인이 되어서야 가끔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할머니는 내게 늘 할머니였으니, 그리고 늘 아파 앉아계셨으니 언제 돌아가실지 몰라서 일부러라도 때마다 전화를 걸어 안부를 확인했던 것 같다.
그러나 제는 나는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 수 없다. 할머니는 이제 전화를 받으실 수 없으니까.
대신에 외할머니에게 전화를 걸기시작했다. ㄱ사실 아주 오랫동안 외할머니는 외손주인 우리에게 관심이 없어 보였다. 외할머니에게는 우리 엄마와 이모 말고도 아들인 삼촌이 둘이나 있고 그 아들이 낳은 친손주들이 셋이나 있었는데... 내 눈에도 그들을 더 예뻐하는 것이 눈에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그래서 그랬는지 친할머니에게는 늘 안부를 전했는데... 외할머니에게는 전화할 줄 몰랐다. 아니면 외할머니는 늘 바쁘고 외출을 많이 하시던 분이라 내가 챙기지 않아도 아니 내가 전화를 걸어도.... 음... 아무튼 처음부터 걸지 않던 전화는 쉽사리 걸기 어려웠다.
그러다 친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이제 나에게는 외할머니 한분 밖에 (친할아버지, 외할아버지는 오래전에 모두 돌아가셨다.)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때부터 나는 외할머니에게 전화하기 시작했다. 외할머니도 언젠가 돌아가실 테고 그러면 나는 정말로 전화를 걸 조부모님이 하나도 없는 것이니 훗날에 후회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전화를 건지 4년쯤 되었나... 그러니까 제주에 와서 친할머니가 돌아가신 후에서야 비로소 외할머니와 가까워진 것이다.
여기서 흥미로운 사실은 내가 겨우 일 년에 세네 번 전화를 거는데 그때마다 제주로 쌀이 한가마씩 배달되어 왔다는 사실이다.
'전화 한 통에 갑자기... 쌀이...?'
전화를 걸 때마다 쌀이 도착하니 부담스러웠다. 할머니가 생각나 전화드리는 나의 순수한 마음이 쌀에 가려지는 것 같아 싫었다.
그 후로도 매번 전화해서 제발 쌀을 보내주지 마시라 했는데 오히려 쌀이 계속 도착하니 마치 쌀을 보내주세요 해서 연락드리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던 중 쌀을 보내주시는 분과 (할머니는 연로하셔서 택배로 쌀을 혼자 보내시지 못하고 보내주는 쌀농사 짓는 옆집이 있었다) 크게 다툼이 있어서 쌀을 보내주지 못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오히려 잘되었다고 생각했다. 제주에 사는 내내 쌀을 사 먹을 일이 없을 정도로 쌀을 보내주셨으니 차라리 잘되었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정말로 쌀은 도착하지 않았고 이제는 마트에서 주문해서 먹고, 가까운 마트에 가서 사 오기도 하며 쌀을 사다 먹기 시작했다.
매번 쌀을 받는 것이 죄송스러워 할머니를 제주로 모셨었다. 2년 차에 한번 그리고 4년 차인 올해 봄에 한번... 모두 고사리가 많을 계절이었다. 할머니는 이제 연세가 많으셔서 그때도 이번에도 거동이 많이 불편하셨다. 그러나 제주도의 고사리를 보며 많이 즐거워하셨다.
할머니가 엄마가 고사리를 꺾어오면 함께 삶고 말리고... 겨우 며칠 계시며 고사리를 꺾고 삶고 할머니는 참 재밌어하셨다.
그게 벌써 지난 5월이다. 그리고 뭐가 그렇게 바빴는지... 전화는커녕 할머니도 잠시 잊었다. 지난 추석에도 육지에 갔었는데 인사도 드리지 못했다.
그러다 며칠 전 문득 할머니가 꿈에 나왔다. 그 꿈을 꾸니 할머니가 생각이 났고 나는 아침이 되자마자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날씨가 추워졌으니 할머니에게 감기 조심하시라고 안부를 묻고는 전화를 끊었다. 겨우 1~2분 내의 전화통화였다.
그게 어려웠다. 겨우 그 잠깐의 전화를 하는데 몇 달이 걸리다니...
그런데 며칠 후 집에 택배가 도착했다. 그것은 바로 육지에서 보내온 쌀이었다.
생각도 하지 못했는데 또 쌀이 도착했다. 나는 당장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왜 또 쌀을 보내셨냐며, 쌀을 또 어디에서 보냈냐며 물었다. 그러니 할머니는 햅쌀이 나왔다길래 보내주고 싶었다며 말끝을 흐리셨다.
전화를 끊고 할머니 생각이 나서 한참 눈물이 났다.
겨우 전화 한 통에 쌀 한 가마니라니...
할머니... 우리 할머니.
오늘은 할머니가 보내주신 쌀로 밥을 지었다. 밥이 윤기가 흐르고 꿀맛이었다. 할머니가 보내주신 쌀이라 그런가 보다.
이제는 내가 육지로 가니 할머니에게 더 이상 전화만 하지 말고 자주 찾아뵈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이제 절대로 쌀은 받지 말아야지...
할머니... 우리 할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