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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을 자주 떠올리곤 해

by Blair

오늘은 문득 아주 오래전 그러니까 내가 어릴 적 아홉 살, 열 살이나 되었을까... 아버지를 데리고 읍내의 시장에서 빨간 구두를 샀던 날이 생각났다. 읍내의 시장은 할머니 댁 근처였고 아빠를 데리고 갔던 것은 엄마는 그 당시 지독한 구두쇠(엄마 미안...) 여서 사주지 않을 테니까 라는 이유였을 것 같다. 검은색과 빨간색을 놓고 한참 고민했다. 물론 내가 고민하는 구두는 반짝이다 못해 번쩍이는 에나멜 재질이었다. 검은색 반짝이는 구두를 살까 하다가 이왕이면 빨간색 반짝이는 구두가 예쁠 것 같아서 그것을 샀었다. 그날은 정말 정말 기뻤다. 그 기억이 여태 나는 것을 보니 엄청 신났던 것 같다.



그 후 기억 안나는 부분을 상상해 보자면 빨간 에나멜 구두를 가슴에 품고 할머니 집으로 갔는데 엄마는 그 신발을 보고 황당하지 않았을까? 아빠에게 잔소리도 했으려나? 지금 내 딸이 아빠와 외출해서 빨간 구두를 사 온다고 상상한다면 조금 많이 당황스러울 것 같기도 하고...




어린시절 빨간 구두는 사랑이었다




나는 유난히도 지난 과거를 자주 생각하는 것 같다. 말하자면 과거... 그러니까 그리운 추억.

하나하나 내 마음속에 저장된 그림이 많아서 그런 걸까. 혼자 있는 순간이면, 잠시 머리가 쉬는 순간이면 꼭 그렇게 과거로 돌아가곤 한다.



정말 많은 순간이 생각난다. 마치 미래는 없는 사람처럼... 현재는 살지 않는 사람처럼.

당연하게도 과거의 기억이... 그 추억이 너무도 즐거웠고 신나고 행복했던 기억만 남겨놔서 그런 걸까.







얼마 전에는 어릴 적에 아빠가 "결혼하지 말고 아빠랑 같이 살자" 했던 날이 떠올랐다. 나는 그 순간 얄밉게도 "아니 아빠~나는 결혼은 꼭 할 거고 그러면 옆집에 살래~~" 했던 것 같다. 혼자 그 순간을 상상하다가 아빠엄마가 몹시도 그리워져서 가족 채팅방에 그 얘길 남겼더니 T의 감성을 가진 아빠와 엄마는 본인들은 괜찮다며, 앞집이고 옆집이고 거부하겠다는 의사를 밝혀서 조금은 속상했던 기억이 있다.



정말 감성이라고는 콩만큼도 없는 어른들. 그래도 아빠는 술 먹으면 옛날이야기를 종종 하고는 한다. 얼마 전에는 아빠가 내 아이에게 '네 엄마가 어렸을 때...'라고 시작하며 한참 동안 아이에게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을 보았다. 아빠도 사실은 옛날 생각을 하나보다...









왜 툭하면 이렇게 옛날 기억이 나는 것인지 곰곰이 생각을 해봤다.



이번 이사를 기점으로 나는 내 미래를 잘 모르겠어서 그런 것 같다. 지금은 겨우 내년 일 년을 바라보고 고민과 계획 중이고, 그 후에 그러니까 2027년을 생각하면 도대체가 어떤 그림을 그려야 할지 모르겠어서 상상조차 할 수가 없기 때문일 테다.



얼마 전 2026년을 상상하며 그렸던 그림이 모두 수포로 돌아가면서 더 이상 상상조차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때 일은 그때 생각하자...'

결국은 당장 눈앞의 큰 불만 조금씩 끄는 상태로 살아가고 있다.



아무래도 미래를 계획하는 게 어려우니 자꾸만 지나갔던 과거가 그리고 추억이 생각나는 것 같다. 미래는 잘 그려지지 않으니까 차라리 추억을 꺼내는 편이 더 확실하고 빠르기 때문이겠지...









왠지 추억을 떠올리며 상상하는 것을 자주 하는 것을 보니 내 예상이 맞을 것 같아서 챗gpt에게 물어보았다. 역시나 그랬다.




역시나 행복했던 과거가 자꾸 떠오르는 것은 불확실한 미래보다 안정적인 과거가 마음을 더 편하게 해 주기 때문이었다.


안정적인 과거...



어쩌면 짬을 내어 단풍 구경을 다녀왔던 오늘도 내가 만든 안정적인 과거일지도 모르겠다. 다시 새롭게 기억할 나의 추억말이다.







나의 기억은 모두 미화되어 이제 좋은 추억만 남았다. 당연하게도 슬프고, 힘들고, 화가 나고 그런 것들은 모두 기억에 남지 않았고 재밌고 신나고 즐거웠던 추억들만 모두 간직하고 있다.



미래도 상상해 보면 그렇다. 최악의 상황을 상상하기보다 좀 더 아름다운 풍경, 조금 더 희망적인 그러한 것들을 상상하게 된다. 애써 밝은 미래를 그려보고 있다. 그래야 상상만으로도 지금 웃음 지을 수 있을 테니까...



오늘을 열심히 살다 보면 분명 미래에는 그에 상응하는 결과가 오겠지. 그러니 추억보다 조금 현실에 집중해 보기로 한다.



지나간 과거는 돌아갈 수 없지만 분명 아름다운 추억만 남았으니... 앞으로 다가올 미래도 밝고 따뜻할 수 있도록 현실을 열심히 지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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