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날씨가 추워졌다. 아이가 매일같이 '엄마 우리 집은 왜 이렇게 추워요?'라고 묻는다. '집이 넓어서 그렇지'라고 대답하지만 그것도 사실이기도 하고, 주택은 원래 좀 춥기도 하고, 요즘 기름값이 워낙 비싸기도 때문에 아껴서 그렇기도 하다.
아이를 등교시키고 창고로 보일러의 기름을 체크하러 갔다. 조금 남긴 했는데 아무래도 기름을 채워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이사는 앞으로 한 달 정도 남았지만 가진 것으로 부족하다. 미리 한번 더 채워놓고 넉넉하게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달 만에 주유소 사장님과 전화통화를 했다. 통화기록을 보니 지난 5월에 넣고 여태껏 지냈다. 여름에는 샤워할 때만 보일러를 트니 기름을 많이 쓸 일이 없기 때문이다.
제주로 처음 이사할 때가 10월. 그때부터 기름을 채워 넣기 시작했으니 4년 전 그때는 22만 원 정도였던 것 같은데 조금씩 오르더니 28만 원까지 올랐다. (지난주 기준 한 드럼 288000원) 요즘 유가가 올랐다고 하더니 어마어마하다.
오늘은 그나마 날씨가 따뜻해서 그런지 바로 도착하셨다(추운 날은 더 바쁘시다) 주유소 사장님께 20만 원만 넣어달라고 말씀드리니 곤란한 표정을 지으신다. 그렇다 원래 한번 채울 때 최소 40만 원~50만 원씩 넣었으니 놀라실만하다. 그러나 '사장님 저희 이제 이사 가서 그 정도면 될 것 같아요' 말씀드리니 깜짝 놀라신다.
그동안 말 한마디 걸지 않고 무뚝뚝하셨던 분이 말을 하기 시작하신다. 어디로 이사 가는지 왜 이사를 가는지 물어보신다. 이제 육지로 이사를 간다는 말에 왜 제주에 더 살지 떠나냐고 물어보신다. "여기 아무도 없어서요..."라고 말하니 대답이 없으시다.
등유를 다 넣으시고 차에 올라타려는 사장님이 말씀하신다. "나중에 제주에 오면 주유소에 한번 놀러 와~ 오면 커피라도 타줄게"
무뚝뚝하신 사장님께서 그리 말씀해 주시니 왠지 목이 메어온다.
처음 사장님 사모님 내외를 만났을 때가 생각난다. 그때도 이미 할아버지, 할머니셨으니까 일하시는 모습이 왠지 안쓰러웠다. 그리고 매년 등유를 넣으려고 뵐 때마다 사모님은 오실 때도 안 오실 때도 있었지만 사장님만큼은 매일 오셨다. 일 년에 겨우 4~5번 기름을 채울 때만 뵈었지만 그래도 그렇게 4년을 뵈었으니 그 누구보다 자주 뵌 것 같다.
그렇게 인사를 드리고 뒤돌아서는데 눈물이 핑 돈다. 진짜 이제 떠날 날이 가까워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처음 주유소에 전화를 걸고 기름통에 등유를 채워 넣은 기억이 선하다. 그날의 설렘, 새로운 시작... 겨우 등유하나 주문해 넣었을 뿐인데 제주 생활의 낭만 같고 신나고 좋았다. 그 후로 겨울마다 몇 번이고 등유를 채워 넣었다.
그러나 슬프게도 등유를 채울 때만 배가 잠깐 부르고, 커다란 집을 덥히려니 정말 등유가 많이 들었다. 결코 따뜻하게 살지 못했다... 사실 서둘러 겨울을 지나기 전에 떠나려는 이유도 집이 추워서다.
주택이 춥다...라는 소리는 이사하고 들었다. 엄마는 그것을 알고 있었으면서 말해주지 않았을까 아니면 내 멋대로 집을 구하고 집이 너무 춥다고 하니 주택은 원래 추워라는 소리를 했던 걸까.
이제는 아파트로 가고 싶다. 사방이 막힌 곳에서 따뜻하게 살고 싶다... 그런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주유소 사장님을 시작으로 이제 나의 정들었던 것과 인사를 나눠야 하는 시간이 왔다.
제주살이 4년 차 이렇게 저렇게 스쳐왔던 인연들.
그리고 다녔던 병원 선생님들... 특히나 정말 자주 가던 소아과 치과... 그리고 자주 뵙던 낯익은 도서관 사서 선생님들... 그리고 그 밖에 많은 사람들...
내가 사랑하던 카페, 자주 가던 카페, 즐겨 사 먹던 빵집, 마트... 하나씩 다 떠오른다.
모두를 찾아뵙고, 모든 곳에 들려 인사드리진 못했지만 우리가 제주에 있는 동안 너무 감사했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덕분에 그동안 제주에서 참 잘 지냈다고...
모든 게 다 오래도록 기억될 추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