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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제

안녕하지 못해서

by 야식공룡


내 시간이 소중하면 타인의 시간도 소중하다. 이 당연한 사실이 천민자본주의 괴물들 앞에서는 당연하지 않다. 다른 나라를 비교할 것도 없다. 대한민국은 시대적 상황이 특수한 탓에 독재자가 들어서자마자 순박하고 욕심 없는 서민들을 희생시켜 가며 근대를 통과해서 빠르게 경제적 발전을 하고 현재까지에 이르렀다. 발전을 명목으로 희생을 강요해 가며 약자들을 철저히 짓밟고, 먼저 사다리를 기어올라 위쪽으로 올라선 이들이 한 일은, 자기들이 사용했던 사다리를 걷어차서 남들은 사용하지 못하도록 한 일이었다. 그것으로도 모자라서 어떤 사고가 나면, 책임을 은폐하거나 희생자에 뒤집어씌우는 짓들을 서슴지 않고.

이렇게 고운 아이들을 잡아먹고, 늙은 괴물들은 잘도 살아있다. 어리고 연약한 것들을 더 많이 잡아먹으면서.

하지만 나도 죽을 수 있었다. 단지 그 나라엘 안 갔고, 그 비행기를 타지 않았고, 그 배를 타지 않았고, 그 가습기 살균제를 쓰지 않았으며, 그 장소에서 일하지 않았었다. 현재는 60이면 잔치씩이나 했었던 과거가 아니다. 인생이 항상 러시안룰렛게임 같으면 피곤해서 어떻게 살까.

6개월 3개월 쪼개기 계약을 맺게 만든 업체는 나쁜 업체다. 망해야 마땅하다. 그런데 그 계약이 가능하도록 만든 법은 누구의 생각이며 누구의 손이었을까.

피 묻은 빵(밥)을 먹고 피 묻은 물건을 쓰고 피 묻은 옷을 입으면, 대체 뭐가 좋은가. 나는 싫다.

꽃처럼 피어나는 젊은 청춘들을 희생시키는 거, 어른이 아니다. 자격 없는 누추한 목숨줄을 움켜잡고 추악한 늙은 괴물로 죽지 말자.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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