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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unclesay Jun 06. 2022

비 오는 날 산책, 어때?

열네 번째 밥상: 비 오는 날 산책, 어때?


오늘은 참으로 오랜만에 촉촉하게 비가 내려요. 새벽녘에 잠깐 잠이 깨었어요. 투둑 되는 노크 소리에 잠이 살짝 달아났답니다.

나도 모르게 커튼을 저치고 창밖을 보되었지요.

부슬부슬 내리는 비 때문에 잠시 고민했어요. 아침 운동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곤히 잠들어 있는 아내의 잠이 깰까 조심 스러 웠어요.

주섬 주섬 옷을 챙겨 입었어요. 빈손으로 나오기가 허전해서 커피도 한잔 준비했답니다. 비가 내리지 않아 다면 커피를 든 한 손이 번거롭지 않았을 거예요. 한 손에는 우산 또 다른 손에는 커피 그렇다고 우산과 커피 둘 중 어느 것도 포기할 수가 없었답니다.


조금은 거추장스럽게 집을 나섰어요. 비가 와서 그런지 매일 마주치는 할머니들의 아침 수다는 들을 수 없었지만, 맑고 투명한 까치들의 환영을 받았답니다. 그러고는 금세 비가 와도 나오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지요.

정해진 루틴 속에 비라는 자연이 스며들었어요. 모든 것이 촉촉해지고 어제 보다 더 푸르른 낙엽과 조금씩 안녕을 말하는 붉은 장미의 생을 보았답니다. 한 손에 전해지는 따뜻한 커피의 촉감을 느끼며 연신 입맞춤을 해댑니다. 날씨가 맑을 때에는 작은 연못 안에 있는 물고기들의 왈츠를 볼 수 있었는데 오늘은 아직도 단잠 중 인가 봅니다.

대신 오늘은 짙은 낙엽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의 교향곡을 느끼는 아침입니다. 연못 앞에서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혼잣말을 주절거립니다.


''비 오는 날 산책도 나름 괜찮구나''  


연못 사이 짧은 다리를 지나 잠시 비를 피 할 수 있는 곳에 앉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식어가는 커피를 입 안으로 넘기고 있습니다.

바람은 쉬지 않고 낙엽과 협주하고, 그 사이는 새들의 오페라로 채워집니다. 잠시 잦아들었던 비는 다시 낙엽의 목청을 적시고, 새 들의 오페라는 점점 클라이맥스를 향해 달려갑니다.


아무 생각 없이 멍해질  있는, 참 좋은 비 오는 날 아침입니다. 동요에 서 듣던 대로 빨간 우산 파란 우산......

오늘은 아버지 우산 아들 우산으로 바꿔 불러도 좋을 것 같습니다.


오들은 양들이 늦잠을 자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여유 있는 아침 산책은 처음인 듯합니다. 비 오는 날은 우산을 들고나가야 한다는 사실을 알기 전에는 하루 종일 비를 맞으며 놀기도 했었는데, 어느새 동네 친구 녀석들의 재잘거림도 흐릿하게 뿌연 연기로 남아있네요.


인터넷도 휴대전화도 없던 그 시절 고무신과 굴렁쇠는 참 좋은 놀잇감이었는데......

어느새 지천명이 되어 돌아가지 못할 시간들을 머릿속에 그려 봅니다. 자꾸만 망설여지고 생각이 많아집니다.

비는 계속 내리는데 이제 이 자리를 떠나야 할까! 비가 잦아들기를 좀 더 기다려야 할까. 비를 맞으며 하루 종일 작은 작은 개울을 서성거리던 그 시절에는 망설임이

없었습니다. 행동하는 것보다 생각이 많아진 지금, 가야 할까요, 좀 더 기 다릴까요.

여전히 길은 여러 갈래로 열려 있는데 발길은 도무지

어디로 가야 할지 답을 찾지 못하는 정말 센티한 시간입니다.


비, 바람, 낙엽, 새소리 그 들의 연주는 아직 끝나지 않았고 오페라의 주인공은 아직 무대 위에서 연기를 하고 있습니다. 결말을 기다리는 관중들은 고요히 숨을 인 채 무대가 끝나기를 기다리지만, 그들 중 어느 누구도 자신의 연기가 언제 끝이 날는지, 어느 틈에 박수를 치고 환호해야

하는지 알지 못합니다.


"비 내리는 날 산책"이라는 주제로 연기를 펼친 주인공은 이제 곧 긴 연기를 끝내고 관객들의 환호와 박수를 받으며 무대의 뒤편으로 조용히 사라지겠죠. 그리고 다시 혼잣 말로 속삭일 겁니다.


"긴 시간이었지만 참 좋은 시간이었어. 비는 오지만 그래도 밖으로 나오길 참 잘한 것 같아"


극장 밖은 여전히 비가 내리지만 배우의 한 손에는 비를 막아줄 우산과 긴장으로 가득한 몸과 마음을 따뜻하게 감싸 줄 커피 한 잔이 들려 있답니다.

"비 내리는 날 산책"

"처음 무대에 오른 신인 배우의 연기 치고는 참 괜찮았어!

왠지 공감이 되더군......

주인공의 삶의 모습이 왠지 나와 닮아 있는 것 같아 위로가 되더라고.


공연을 지켜본 관객들의 수군거림을 들으며 주인공은 생각했어요.


"연기 아무것도 아니군"


양 떼가 깨어났어요. 목동 아저씨가 양들을 부르는 소리가 왠지 o.k 소리로 들리네요! 어느새 비도 잦아들고 협주도 끝난 것 같아요.


분명히 o.K 라고 하셨다?

나도 이제 일어나야 할 것 같아요.

아직 돌아봐야 할 곳이 많거든요. 비록 작은 공원 같아도. 

볼 것도 많고 갈 곳도 많답니다.

이제 곧 편백나무 숲이 나올 거예요.

약간 오르막이지만 쉴 수 있는 긴 의자도 있고, 공기도 아주 시원해요. 그렇게 한 바퀴를 돌아 내가 있던 이 자리를 다시 지나겠지만 그래도 이제는 일어나야겠어요.

조심해!

"이제 커피를 다 마셨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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