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호흡의 글을 두 편 써서 응모했다. 가능성이 거의 없을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그런 길이의 글을 영영 써보지 못할 거 같아서였고, 응모 주제 역시 억지스럽게 애쓰며 쥐어짜는 느낌이 아닌, 오랜 시간 뭉텅뭉텅 떠 다니는 생각들을 잡아다가 가지런히 앉혀볼 수 있는 좋은 기회 같았다. 그렇게 두 편을 완성하여 보낸 뒤, 큰 업적을 이룬 것처럼 다소 행복해하며 긴 여름휴가를 맞이했다.
휴가가 시작되자마자 작은 아이의 생일 파티를 해주었고, 큰 아이와 작은 아이 친구들을 각각 초대해 플레이 데잇을 해주고, 단기 선교를 다녀왔으며, 한국에서 언니도 다녀갔다. 누군가에겐 별 거 아닌 일일 수 있지만 극내향인인 나로선 큰 일들을 많이 치른 느낌이었다. 바쁘게 지낼수록 쓰고 싶은 순간들은 상대적으로 적어지는 느낌이다. 생각이 차오르고, 고인 채 내버려 둔 후 소화해 낼 여유 없이 다음 스텝을 밟기에 급급해서일까. 하긴 마음이 버거운 상태에서 바쁠 때는 쓰면서 숨을 고르고 싶은 순간들도 있었으니 같은 바쁨이라 해도 그때 그때 마음의 결에 따라 달라진다고 보는 것이 더 맞겠다. 그 마음의 결이 다를 수 있었던 이유는 휴가 중이었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을 테다. 집에 있는다고 방학한 두 아이와 하루 종일 같이 있으니 널브러져 쉴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늦잠을 잘 수 있고, 화장실을 원하는 시간에 마음대로 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삶의 질이 매우 높아진 느낌이니 전에 어른들이 아기 키울 때 잘 먹고, 잘 자고, 잘 싸면 됐다고 하시던 말씀이 비단 아기에게만 적용되는 건 아니지 싶다.
그리고, 지금은 한국이다. 망설이고 망설이다 결국엔 왔다. 오늘은 지난번 다녀왔을 때 기억을 더듬어 제법 능숙하게 혼자 버스도 타고, 지하철도 갈아타며 언니가 다니는 미용실에 다녀왔다. 더운데 오시느라 고생하셨다고 묻는 선생님께 별로 힘들게 안 느껴졌다고 답 했더니 ”휴가라서 그러신가 봐요. “하고 웃으셨다. 맞는 거 같다며 같이 웃었다. 지하철의 인파도, 밀리는 버스 길도, 습한 더위도 견딜만하게 느껴지는 것도 다 같은 이유겠지. 언제 돌아오는 거냐며 재촉하는 작은 아이의 성화에 다른 곳 들려 볼 여유도 없이 바로 돌아와야 했지만,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반겨주는 아이도, 앉자마자 밥을 차려주는 엄마도 있는 한국의 여름이다. 마지막으로 왔을 때가 브런치에 처음 글을 올리기 시작한 시점과 비슷한 거 같아 괜스레 감회가 새롭다. 꾸준히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그렇게 꾸준하진 못 했지만, 그래도 그만두진 않길. 계속해서 꾸준함을 향해 나아가길 바라본다.
‘ 손을 풀고 그저 담담하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쓰자.
하고 싶은 이야기가 없다면 떠오르는 이야기를, 재미있게 쓰자. 나는 쓰면서 나와 세계를 더 들여다보았고 내 삶을 그저 흘러가기만 하는 삶으로 두지 않았다. 붙잡았다. 견고한 악수처럼. 그 시간을 믿어보자.
…
청소와 정리 정돈이란 뭘까. 자신의 자리를 돌보는 사람, 우리의 일상을 정돈하는 사람이 가진 힘 같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그것이 매일매일의 삶을 가능하 게 한다는 것도. 이 영상을 보고 힘이 났다고 하는 친구의 말이 이해가 되었다.
글을 쓰는 일도 주변을 쓸고 닦고 정리 정돈하는 일과 비슷한 부분이 있다. 잘 소화되지 않고 헝클어져 있던 마음이나 생각을 문장을 통해 정리할 수 있다는 점에서. 구석구 석 쌓인 먼지를 털어내며 물건이나 장소 본래의 빛깔을 되찾는 것처럼, 못 보고 지나쳤던 내면을 발견하게 된다는 점에서. 다 하고 나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에너지를 얻는다는 점에서.‘
‘조금 더 사랑하는 쪽으로‘- 안미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