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성수동의 갤러리 가우디움에서 참여했던 그룹전이 마무리 되었다.
9명의 작가가 각자의 그림을 한 공간에서 선보였다.
개인전도 아닌 그룹 전인데도 전시가 끝나고 나면 며칠은 기운을 차리기 어렵다.
전시는 단순히 작품을 걸어두는 일로 끝나지 않는다.
그림과 굿즈, 캡션 보드까지 모두 직접 포장해 끌차에 실어 옮기고
반입과 설치, 그리고 철수까지 나의 일이다.
대부분 평일에 이루어지기 때문에 나는 어김없이 반차를 쓴다.
작품 하나를 벽에 거는 일조차 쉽지 않다.
낯선 전시장의 조명과 벽의 질감, 동선과 시선의 흐름을 혼자 계산해 가며
내 그림을 선보일 자리를 정돈한다.
작품과 함께 놓일 캡션보드와 설명 역시 매번 새로 다듬는다.
전시 콘셉트에 따라 작가노트를 새롭게 다듬고 폰트 하나하나를 신중히 고른다.
그 과정은 생각보다 에너지 소모가 크다.
몸과 마음의 에너지가 쭉쭉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든다.
그리는 것만이 ‘작업’이 아니라는 걸, 직접 몸을 던지며 매번 깨닫는다.
그래서일까.
사람들은 내가 퇴근 후 그림을 그린다고 하면 대부분 “힐링”이라는 단어를 먼저 꺼낸다.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린 말이다.
어쨌든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아, 일과 일 사이의 틈에서 다시 나를 꺼내는 사람이니까.
하지만 말하지 않는 고됨이 분명히 있다.
단순히 “그림을 그린다”는 말로는 결코 설명되지 않는 세계가 있다는 것을
굳이 설명하려 하지 않을 뿐이다.
말해도 잘 전달되지 않고,
무엇보다 나는 내 작업을 징징거리는 하소연의 언어로 소비하고 싶지 않다.
직장을 다니며 작업을 병행하는 일은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버겁다.
평일 퇴근 후 2~3시간, 주말 대부분을 작업에 쏟아붓는 구조 속에서
신작의 구상, 재료에 대한 고민, 포트폴리오 정리까지 머릿속은 좀처럼 쉬어갈 틈이 없다.
그러다 문득 불안이 찾아온다.
예정된 초대전이나 아트페어에서 내 그림들이 선택받지 못한다면,
이 작품들은 결국 내 작은 작업실에 먼지만 쌓인 채 남겨지는 게 아닐지.
쓰나미 같은 걱정이 몰려온다.
그래서 더더욱 생각한다.
이 과정 자체를 좋아하지 않으면 끝까지 갈 수 없다는 사실을
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는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고
그림을 좋아하는 감정을 잃어버리지 말아야 한다고
창작은 결국 나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나는 책임감을 가지고 이 과정을 견뎌내야 한다.
열심히 그린다고 유명한 작가가 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그림을 좋아하는 마음을 잊지 말자고 다짐한다.
문득 1년 전의 내 모습을 돌아봤다.
그땐 이렇게 전시회를 열고, 그룹전과 아트페어에 참여하게 될 줄도 몰랐다.
힘들었고 버거웠지만, 어찌 되었든 나는 여기까지 왔다.
그래, 잘하고 있다.
속도에 쫓기지 말고, 한 작품 한 작품에 더 정성을 기울여
나 스스로 설득될 수 있는 그림을 그려야지.
오늘도 퇴근 후 작업 시간이 기다려진다.
★ 사진은 이번 그룹전의 풍경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