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홍보팀장이자 작가로서 내 이야기를 들려주던 순간
지난주, 강의 요청이 들어와 제주로 출장을 다녀왔다.
평생 누군가에게 30분 동안 강의를 해본 적이 없었기에 조금은 낯설고 긴장되는 자리였다.
전국의 홍보인이 참여하는 협의회에서 ‘홍보인의 자기 계발’에 대해 이야기해 달라는 부탁이 왔다.
첫 개인전 당시 실렸던 인터뷰를 보고 연락을 주신 건데
늘 긴장 속에서 일하는 홍보인들에게
내가 어떤 방식으로 몸과 마음의 균형을 찾아왔는지 들려달라는 것이었다.
섭외를 맡은 분은
내가 대학 홍보팀장이면서 그림을 그리는 작가라는 점이 흥미롭다며
그 과정에서 내가 겪어온 솔직한 이야기를 들려주면 좋겠다 했다.
나에게는 숨 쉴 틈을 찾기 위해 자연스럽게 시작된 일이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다소 낯선 조합으로 보였던 것 같다.
바로 섭외에는 응했지만, 사실 고민이 많았다.
20년 넘게 홍보일을 하면서 그림이라는 다른 길을 찾았지만
지금의 내가 누군가에게 조언할 만큼 잘살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물음표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섭외에 응하고 두 달 정도의 시간 동안 강의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또 마무리에 어떤 메시지를 담아야 할지에 대해 정말 오랫동안 고민했다.
강의의 흐름은 다른 이를 빛내느라 스스로는 잘 못 챙기는 홍보인들이
일이 아닌 다른 것의 몰입을 통해 나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고
나를 더 알게 되고 삶의 균형을 잡아갈 수 있다는 것으로 이야기를 풀어내기로 했다.
그리고 내가 왜 ‘스마일미러볼’을 그림 주제로 삼았는지,
어떤 작품들을 그려내고 있는지 작품을 소개할 수 있는 순서도 만들었다.
마무리에는 일도 하고 그림도 그린다 하면
주변에서는 '대단하다' 란 이야기를 먼저 하지만
알고 보면 몰입할 수 있는 어떤 것을 찾은 것뿐이며
여전히 내가 잘 살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그렇다'고 답하기 어렵다고.
나는 여전히 불안과 방황 속에서 방황한다는 이야기까지 솔직히 얘기했다.
하지만 그래도 지금은 나를 잃어버리지는 않는 것 같다는 이야기까지.
그림을 그리는 동안 스스로와 싸우며 나를 더 잘 알게 되었고
홍보 일을 하며 나 이외의 모든 것에 대해 고민했다면
그림은 나에 대한 고민을 해나가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홍보일은 나를 더 단단하게, 그림을 나를 더 유연하게 만들어
내 삶의 균형을 조금씩 찾아나가고 있다는 이야기도 전했다.
강의는 처음이었는데, 이야기를 시작하니 정말 말이 꼬이지 않고 술술 이어졌다.
아마 내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할 수 있었던 자리라 그랬던 것 같다.
그리고 꽤 오랜 기간 동안 강의를 준비하면서 나에 대해 좀 더 깊게 알 수 있었던 기회가 된 것은 확실했다.
강의 내내 맑은 눈빛으로 경청해 주시는 분들이 곳곳에 보였다.
그 눈빛이 얼마나 고맙던지,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마음속으로 감사의 인사를 보냈다.
그대들도 언젠가 일의 무게에서 잠시 벗어나
자신만의 세계에 깊이 몰입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게 되길 바란다고
그리고 그런 당신들의 모습에 나는 찬성이라고, 그렇게 강의를 마쳤다.
돌아오는 길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참 신기하다. 라고.
나는 작년 이맘때만 해도 지금의 내 모습을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누군가 앞에 서서 내 이야기를 강의라는 형태로 전하게 될 줄은 더욱 몰랐다.
그래서 인생이 재밌는 것 같다.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그래도 꾸준히 나를 데리고 어디론가 흘러가는 것.
그렇다면 내년 이맘때의 나는 또 어떤 모습일까.
조금은 설레는 마음으로, 그 미래의 나를 기대해 보고 싶다.
★ 스마일미러볼 윤지선 작가 인스타그램 : https://www.instagram.com/sunthing_a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