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씀'의 공간을 내어준 브런치
난생처음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나 자신이 무척이나 낯설게 느껴졌던 기억이 난다.
책을 옆구리에 끼고 다닐 줄만 알았지 머릿속의 생각을 글의 형태로 조형해 볼 생각은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기에, 불현듯 떠오른 '글을 쓰고 싶다'라는 마음은 단발적인 것이라 생각했다. 살다 보면 갑자기 '마카롱이 먹고 싶다'라던가 '수영을 다녀볼까' 정도로 그치는 아주 가볍고 단순한 생각들처럼 말이다.
그런데 그다음 날도, 다다음 날도, 일주일이 지나도록 '쓰고 싶다'라는 마음은 흩어지기는커녕 가슴 한쪽에 단단히 머물렀다. 엄지손가락에 박힌 작은 나무 가시처럼 톡톡 건드리며 제 존재감을 드러냈다. 더 이상 외면하지 말라는 뜻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일순간 깨달았다. '쓰고 싶다'는 하면 하고, 말면 마는 선택사항이 아니라는 것을. 내게 글은 써내지 않으면 결코 해소되지 않을 지독한 욕구의 일종이었다. 그리고 그 욕구를 기꺼이 받아줄 공간이 필요했다.
하고 싶은 이야기는 있었다. 교사가 되어 첫 발령을 받은 학교는 소위 말하는 학군이 좋지 못한 곳이었다. 어렵고 힘든 아이들이 참 많았다. 가난, 소외, 경제적 어려움이 그들의 키워드였다. 교사로서의 한계를 맞닥뜨렸고 어린 시절부터 눈에 띄게 드러나는 불평등과 차이에 다 큰 나도 덩달아 마음을 앓았다. 5년의 시간을 채운 후, 다른 학교로 도망치듯 떠나왔지만 이상하게도 마음 한편에 그때 그 아이들이 계속 머물렀다.
이 이야기를 쏟아낼 곳이 필요했다. 더 나아가 누군가 읽고 이해해 준다면 참 좋겠다 생각했다. 나의 그 첫 발자국을 받아준, 바로 그 '씀'의 공간을 내어준 곳이 바로 브런치였다. 삼수 끝에 브런치 작가가 되었고, 열여덟 개의 글을 썼다. 가끔 브런치 메인에 등장할 때 뛸 듯이 기뻤고, 지나가는 이가 공감 어린 댓글을 남겨주었을 땐 직접 찾아가 감사인사를 드리고 싶을 만큼 행복했다.
써야 해서 쓴 글인데, 나를 위해 쓴 글인데 누군가의 마음에 가 닿아 공명하는 모든 순간이 경이로웠다. 종국에는 출판사 문까지 두드렸다. 더 많은 이들에게 닿고 싶은 욕심이었는데 마침 운이 좋았다. 브런치북으로 손수 엮었던 추억이 있는 내 글들은 지난 8월, 출판사의 도움을 받아 <어느 교실의 멜랑콜리아>라는 단행본으로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작가라는 이름도 선물 받았다.
"써야 하는 사람은 써야 한다"
장강명 작가의 말이다. 마음속에서 토해내야 끝나는 이야기들이 있다. 누구나 그런 이야기를 마음속에 한 두 개쯤 품고 살 것이라 생각한다. 꾹꾹 참다가, 도저히 쓰지 않고는 해소되지 않을 것만 같은 그 순간이 오면 '그리 겁먹지 말고 글을 써봐도 괜찮다'더라는 게 나의 결론이다. '씀'의 공간을 기꺼이 내어주는 브런치도 곁에 있다.
써야 하는 사람은 써야 편해지고, 내 손 끝에서 시작한 글은 돌고 돌아 다양한 모습으로 필요한 이들의 마음에 가 닿는다. 이 모든 게 작가의 삶이라면, 나는 앞으로도 기꺼이 그 길 위를 뚜벅뚜벅 걷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