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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깔이 다르면, 더 예쁘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

어른들이 잃어버린 질문 : 받아들임

by 박단단

부끄러운 고백을 하나 하려 한다. 나는 결혼식에 대한 로망이 딱 하나 있었다. 아름다운 비즈가 달린 드레스도, 누가 봐도 감탄이 나올 만한 멋진 예식장도, 화사한 꽃장식도 아니었다. 갖고 싶던 예물이 있다거나, 오랫동안 꿈꿔온 신혼여행지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내 유일한 결혼식 로망은 바로 ‘화창한 날씨’였다. 미세먼지가 조금 끼어도, 하늘이 약간 흐려도 상관없었다. 그저 비나 눈이 내리지 않는 날이면 충분했다. 그런 날씨 속에서 결혼식을 올리는 것이 내 소박한 로망이었다.


나는 한여름에도 선글라스나 모자, 선크림을 잘 챙기지 않을 만큼 햇빛 받는 걸 좋아했다. 햇살의 찬란함과 따뜻함을 온몸으로 느끼는 그 순간을 너무 사랑했다. 아마도 가장 기다려온 그날, 세상에 내리쬐는 밝은 빛이 곧 축복이라 믿었던 것 같기도 하다. 혹시 이쯤에서 야외 결혼식을 꿈꿨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다. 그래서 더 부끄러운 고백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나는 날씨와는 전혀 상관없는 실내 예식장을 예약해 두고도, 그날만큼은 꼭 바깥 날씨가 맑기를 원했다.


서론이 다소 장황한 걸 보면 눈치챘겠지만, 한 달 전부터 검색했던 일기예보에는 불길하게도 딱 결혼식이 있던 주에만 회색 구름과 비 내리는 표시가 있었다. 네이버 날씨도, 아큐웨더도, 하다못해 노르웨이 기상청 날씨까지 번역해 찾아봤는데도 모두 짜 맞춘 것처럼 비 표시였다. 하늘이 이렇게까지 나를 외면하다니! 그렇게 나는 결혼식을 앞두고 다른 이유도 아닌 ‘날씨’ 때문에 시름시름 앓는 신부가 되었다. 얼마나 앓았느냐 하면(아니, 얼마나 민폐를 끼쳤느냐 하면) 본가를 떠나기 전 한 달 동안, 가장 소중하고 애틋했어야 할 그 시간에 부모님께 짜증을 냈다. 멀리 있던 예비 남편에게도 전화를 걸어 투덜댔다.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 우울에 잠식된 사람처럼 지내기도 했다.


‘실내 결혼식인데 날씨가 무슨 상관이야’, ‘날씨는 그날 가봐야 알아’ 지인들의 위로 아닌 위로도 통하지 않았다. 결국, 어지간하면 큰 소리를 내지 않는 엄마께서 보다 못해 버럭 화를 내신 뒤에야 날씨를 포기했다. 정확히 말하면 받아들인 게 아니라 포기한 거였다. 비 오는 날씨도 괜찮다고 스스로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주변 성화에 어쩔 수 없이 놓아버린 것이다. 미련은 끈적끈적한 딱풀처럼 마음 한구석에 붙어있었다. 그리고 다가온 5월의 결혼식 날, 예상대로 비가 내렸다. 햇빛 한 줄기 없는 회색 하늘 아래에서 추적추적한 빗줄기가 쏟아졌다. 식은 무리 없이 끝났지만, 비가 오긴 왔다.


다시 그해의 결혼식을 떠올려본다. 결혼식을 앞두고 설레하거나 분주히 준비하던 모습보단 진짜 비가 올까 봐 전전긍긍하던 내 모습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왜 그 소중한 시간을 불안함으로 채울 수밖에 없었을까. 특히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날씨’라는 불가항력에 매달려 시간과 마음을 낭비했을까. 인생에서 어쩔 수 없는 일들은 늘 있는데, 왜 그 앞에서 자유롭지 못했을까. 스스로를 좀먹게 놔두었을까.


세월이 쌓이면서 조금은 무뎌졌지만, 아직도 나는 교통사고처럼 불쑥 찾아오는 인생의 사건들을 잘 받아들이지 못한다. ‘왜 내가 원하는 대로 잘 안 되는 거지?’라는 생각이 뼛속 깊이 새겨져 외부에서 부지불식간 찾아오는 변화 앞에서 반발을 일으킨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을 현명하게 받아들이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내게 그 방법을 처음으로 보여준 아이가 있다. 아직도 내 롤모델로 남아 있는 그 아이는 초등학교 3학년, 열 살 주아였다.




그 당시엔 학예회를 크게 했다. 요즘처럼 학급별 장기자랑 무대 하나로 끝나는 행사가 아니었고, 학예회와 전시회를 동시에 했다. 강당의 무대를 제외한 벽면을 반별로 나눠 미술작품으로 화려하게 꾸며야 했다. 원래 의도는 일 년 동안 만든 아이들의 작품을 자연스럽게 보여주자는 것이었겠지만, 옷차림에도 TPO가 있듯 학예회에도 그 분위기에 맞는 '전시용 작품'이 필요한 법이다. 문제는, 반마다 주어진 벽면이 생각보다 넓었다는 것. 아무 작품으로는 그 공간을 채울 수 없었다. 그래서 우리 3학년은 고민 끝에 '책 인형'을 만들어 걸기로 했다.


책 인형은 말 그대로 인형이 손에 작은 책을 들고 있는 모양의 만들기 작품이다. 색지를 정사각형으로 잘라 몸통을 만들고, 길쭉한 직사각형 종이로 팔다리를 붙인 뒤 얼굴을 그리면 완성된다. 3학년 아이들에게는 정교한 가위질이 쉽지 않다. 그래서 선생님들이 미리 몸통용 정사각형 색지와 팔다리용 종이를 잘라 준비해 두었다. 아이들은 몸통 한 장과 팔다리 두 쌍을 짝지어 가져가면 됐다. 아이들은 이 작업에 진심이었다! 진짜 인형을 만드는 것처럼 몸통과 팔다리의 색깔을 똑같이 맞춰서 가져가려고 했다. 예를 들어, 분홍색 몸통에는 분홍색 팔다리를, 개성 있게 만들려는 아이들은 분홍 몸통에 보라색 팔다리를 가져가는 식이었다. 대체로 색감의 분위기를 통일해 가져가는 편이었다. '부모님이 오셔서 보실 거니까 열심히 만들어보자'라고 하니 아이들 얼굴마다 설렘과 의욕이 번졌다.


그런데 그때, 작은 문제가 하나 생겼다. 아직 종이를 고르지 못한 아이가 한 명 있었는데 남은 색지가 제각각이었다. 몸통은 노란색, 팔은 분홍색, 다리는 파란색이었다. 남은 건 낱개뿐이었고, 여분의 색지도 없었다. 그 아이는 평소 미술을 무척 좋아하던, 주아였다.


"주아야, 색깔이 이것밖에 안 남았는데 괜찮겠니?"


주아가 차례를 기다리며 마음속으로 이미 어떤 인형을 그려놓았을 것 같았다. 원하던 색을 가져갈 기회를 공평하게 주지 못했다는 생각에 혹시라도 속상해할까 봐 다른 학년에서라도 색지를 빌려와야지 생각하던 참이었다. 그런데 주아는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이내 명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 저 그냥 할게요!"


혹시 선생님 눈치를 살피며 애써 태연한 척하는 건 아닐까 싶어 한 번 더 물었다.


"이걸로 정말 괜찮겠어?"


“네, 원래 노란색 인형을 만들려 했는데요..”


“응?”


"음, 색깔이 다 다르면 더 예쁘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


“정말?”


“네, 이렇게 해도 괜찮을 것 같아요!”


주아는 발랄하게 대답하더니, 종이를 집어 아무렇지 않게 자리로 돌아갔다. 상상도 못 한 반응이었다. 이렇게 쉽게 상황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다니! 삶에서 일말의 빈틈도 놓치지 않으려 애써온 내 마음이, 어쩌면 '강박'이 아니었을까, 혹은 모든 것을 통제하려는 이기적인 욕심이 아니었을까 의심되는 순간이었다. 주아는 결코 욕심이 없거나 무기력한 아이가 아니었다. 그 짧은 순간에 어쩔 수 없는 상황을 이해하고, 아쉬운 마음을 불만이나 짜증으로 바꾸지 않았다. 그 대신 받아들임으로 바꾼 것이다. 오히려 어른인 내가 주아의 앞에서 더 전전긍긍했다는 사실이 조금 우스웠다.


주아는 자리로 돌아가 묵묵히 책 인형을 만들기 시작했다. 두 시간 동안 최선을 다해 만들고, 완성된 작품을 바라보며 상당히 흡족해했다. 학예회 날, 우리 반 스물여섯 개의 책 인형 중 몸통과 팔다리 색이 모두 다른 책 인형은 단 하나뿐이었다. 그 무지개색 책 인형이 가장 눈에 띄었고, 가장 예뻤다.




'뜻대로 되지 않기 때문에 인생이다' 이 말을 받아들이기까지 나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어린 시절부터 나는 변수를 견디는 법이 서툴렀다. 날씨가 됐든, 시험이 됐든, 가족관계가 됐든 내가 미처 예상하지 못한 일이 닥치면 마음이 초겨울 나뭇잎처럼 흔들렸다. 세월이 쌓여 굳은살이 박였음에도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받아들이지 못함'은 주변 사람들도 무척이나 곤란하게 했다. '너는 융통성을 발휘할 수 있다면 덜 괴로울 텐데!'라는 말을 진지하게 들어본 적도 몇 번 있다. 유연하게 생각하려고 연습하고 또 연습하지만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인생의 파도가 몰아칠 때마다 마음 한 편에서 주아의 말을 꺼내본다.


“색깔이 다 다르면 더 예쁘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


경우의 수가 수천 가지인 인생사,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 당연한 법이다. 그런데 요즘 세상은 '받아들임'을 어려워하는 어른들로 가득하다.(물론 나를 포함해서다.) 심지어 받아들이지 못해 나이 불문하고 민폐를 끼치기도 한다. 규칙과 절차가 분명한데도 관공서에서 뜻대로 일 처리가 되지 않으면 폭언을 하는 경우라던가, 인간관계가 뜻대로 풀리지 않으면 앙심을 품고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이라던가 말이다. 받아들임이 필요한 상황에서 받아들이지 못해 표출되는 미성숙한 화풀이는 많은 이를 힘겹게 한다. 타인과 나를 동시에 학대하는 일이다.


주아의 모습은 교사로서의 나에게도 큰 울림을 주었다. 아이들 입에 꼬박꼬박 밥숟가락을 넣어주면서 '예상치 못한 상황도 받아들여야 해'라고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 아이들이 스스로 헤쳐나갈 수 있도록 맷집을 길러줄 필요가 있었다. 그래서 그 이후로 나는 몇 년째 수업 속에서 '예측 불가능한 상황'을 일부러 만들어 준다. 읽기 자료나 미술 도안을 무작위로 나누고, 토의 주제도 제비 뽑기로 정한다. 물론 하고 싶은 것을 할 때도 있지만, 그렇지 못할 때는 받아들일 필요도 있음을 가르친다. 모둠 활동도 늘 무작위로 짝지어 새로운 친구들과 해보는 경험을 쌓게 만든다. 아직도 받아들임이 서툰 한 어른으로서, 원하는 대로 일이 흘러가지 않더라도 그 속에서 새로이 마음을 재정비하고 최선을 다하는 법을 아이들이 배우길 바랐다.


세상은 개인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영역이 분명 존재한다. 자연현상이 그렇고 사람의 마음이 그렇다. 이미 만들어져 돌아가는 사회 질서나 제도가 그렇다. 당장 바꿀 수 없는 상황이나 관계를 끈질기게 붙잡고 되묻는 일은 결국 해답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끈적이는 집착이 되어 나와 주변 사람의 정신을 갉아먹고 소중한 시간을 허투루 흘려보내게 만든다. 하지만 만약 우리가 '어찌할 수 없는 일'을 눈 딱 감고 받아들일 용기를 낼 수 있다면 어떨까. 새로운 가능성의 문이 열리고, 예상치 못한 흥미로운 순간이 찾아올지도 모른다.


몇 년 전, 강당 나무 벽에 걸려있던 스물여섯 개의 책 인형 중, 유일하게 색이 제각각이던 주아의 작품이 있었다. 그 인형이 가장 눈에 띄고, 가장 예뻤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인생은 오히려 더 다채로워진다.

나는 이제 그렇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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