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이 잃어버린 질문 : 겸손
인터넷에 떠도는 유명한 인생 교훈이 있다. '갈까 말까 할 때는 가라. 살까 말까 할 땐 사지 마라. 말할까 말까 할 때는 말하지 마라. 줄까 말까 할 때는 줘라. 먹을까 말까 할 때는 먹지 마라.' 골치 아픈 선택의 갈림길이 찾아올 때마다 이 말을 떠올린다. 몇 번 따라 해 보니, 의외로 후회 없는 결정을 내리는 데 꽤 쏠쏠한 도움이 되었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나는 이 문장을 내 인생의 지침처럼 마음속에 품고 살고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건 뭘까. 내게는 단연 ‘말할까 말까 할 때는 말하지 마라’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잘 아는 것을 말할까, 말까'이고 조금 더 솔직히 말하자면 ‘자랑할까, 말까’ 하는 순간이다. 그리고 그때마다.. 말하고 싶은 마음을 누르는 게 참 어렵다!
부끄럽지만, 나는 자랑의 역사가 꽤 깊은 편이다. 앎과 경험, 성취를 보여주고 싶은 욕구와 내세우지 않는 것이 미덕이라는 생각이 기싸움을 벌이다가 결국 내세움의 욕구가 승리하는 모습을 방관하며 지낸 편이었다. 요즘 같은 자기 PR의 시대에, 아는 것을 말하는 게 뭐가 문제냐고 묻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부끄러운 이유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자랑’이 종종 주변을 곤혹스럽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대학교 때 간단한 프로그래밍 수업이 있었다. 그런데 나는 이미 과제에 사용할 프로그램을 배운 경험이 있어 동기들보다 능숙한 상황이었다. 동기들이 헤매고 어려워하는 걸 보면서도 나는 자중하지 못하고 동네방네 자랑하는 걸 선택해 버렸다!(지금도 반성하고 있다) '내가 더 잘한다'는 걸 말하고 싶은 충동에 시야가 좁아진 것이다. 하필이면 교수님은 자신의 수업에 강한 프라이드를 가지고 계셨고, 깐깐했으며 학생에게 엄격하셨다. 공교롭게도 나는 그의 애제자가 되었고, 결국 그 수업의 과제 난이도와 양을 끌어올리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어떤 동기에게는 내가 악역이었을지도 모른다.
또 한 번은 대학원에서 교재를 집필할 때였다. 일 년짜리 프로젝트였는데, 나는 맡은 부분을 삼 개월 만에 끝내버렸다(일을 몰아서 하는 스타일이라서 금방 끝낼 수 있었다). 그리고 일 진척 상황을 공유하는 중간 미팅 자리에서, 나는 뿌듯한 표정으로 ‘교수님, 저는 다 끝냈습니다!’라고 아주 신나게 떠들었다. 교수님의 칭찬을 받고 싶었던 것인지, 아니면 ‘나는 이미 다 끝냈다’는 느낌을 주고 싶었던 건지, 둘 다 인지 잘 모르겠다. 다만 그 순간, 함께 일하던 동료들의 곤란스러운 표정은 선명하게 기억난다.
자신을 드러내는 여러 방법이 있겠지만, 나는 꽤 오랜 시간 동안 '내세움'으로 존재를 인정받으려 했다. 그 과정에서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키던 다른 사람들을 들러리로 만들어 버리곤 했다. 잔뜩 기고만장해진 내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아오르려 할 즈음, 나를 멈춰 세운 것은 우리 반 열두 살 아이의 한 마디였다.
교실에는 꼭 한 명씩 '에이스'가 있는 법이다. 우리 반의 5학년 한울이가 바로 그랬다. 응원하던 야구팀이 연패를 거듭할 때, 에이스 투수가 마운드에 올라 분위기를 바꾸듯, 한울이는 어떤 상황에서도 선생님과 친구들의 무한한 신뢰를 받는 든든한 해결사였다. 운동선수처럼 바짝 깎은 머리에 복스럽고 통통한 얼굴, 얇은 테의 도수 높은 안경을 쓴 한울이의 서랍에는 늘 읽던 책이 가득했다. 생일 선물로 받은 리처드 도킨스의 책 <이기적 유전자>를 보며 기뻐하던 모습이 선명하다. 배경지식이 풍부하고, 리더십도 있으며, 다정한 성격까지 갖춘 한울이 주변에는 늘 도움을 청하는 친구들로 붐볐다.
"한울아, 이 문제 이렇게 푸는 거 맞아?"
"한울아, 저기 보드게임 하는 애들 싸운다. 네가 좀 해결해 줘"
수학 문제집에서 어려운 문제를 발견했을 때도, 보드게임을 하다 사소한 다툼이 생겼을 때도 아이들은 늘 한울이를 먼저 찾았다. 어른인 내 눈에도 한울이는 분명 해결사였으니, 아마 아이들의 세상 속에서도 특별한 친구로 보였을 것이다. 그런데 가만히 대화를 들어보면 한울이가 친구들에게 입버릇처럼 덧붙이는 말이 있었다. '정확하지 않아' 혹은 '나도 틀릴 수 있어'라는 말이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이 문제 이해가? 근데 나도 확실히 아는 건 아니니까 한번 찾아봐"
"근데 나도 정확히는 몰라. 다른 애들한테도 물어봐"
"내 말이 틀릴 수도 있으니까 너도 잘 생각해 봐"
잘 이야기해 놓고도 꼭 뒤에 한 마디를 덧붙였다. 말의 여운을 남기는 것처럼, 혹은 무언가 우려스러운 마음에 선을 긋는 것처럼 보였다. 당당히 말해도 괜찮을텐데 굳이 이런 말을 꼬박꼬박 덧붙이는 이유가 궁금했다. 그리고 한울이가 습관적으로 내뱉던 그 말들이 단순한 '회피'나 '자신 없음'이 아님을 깨닫게 된 것은, 생각보다 시간이 지난 후였다.
어느 가을날의 수업 시간이었다. 5학년 2학기 사회시간에는 아이들이 그토록 기다리던 한국사를 배운다. 호기심으로 반짝이는 아이들의 눈빛을 보는 것은 즐거웠지만, 역사 수업 때마다 늘 겪는 애로 사항이 한 가지 있었으니, 바로 '알고 있는 내용을 냅다 말해버리는 아이들'이 너무 많았다는 점이다. 나는 역사를 하나하나의 작은 이야기로 접근하며 수업을 진행하는데, 이미 알고 있는 아이들이 기승전결의 '승' 단계에서 다짜고짜 스포일러를 터뜨려버리곤 했다. 먼저 말하지 않으면 도저히 못 참겠다는 듯 외치는 몇몇 아이들의 입을 막는 것이, 내게는 중요한 과제였다.
그날은 후삼국을 통일한 고려 태조 왕건이 지방 호족들을 어떻게 안정시키고 통합했는지에 대해 수업하던 중이었다.
"태조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하면서 지방 호족들을 어떻게 자신의 편으로 만들었을까요?"
"..."
오랜만에 교실에는 정적이 흘렀다. 평소에 수다스러웠던 아이들은 입을 꾹 다물고, 아리송한 표정으로 딴청을 피웠다. 잘 모르는 듯했다. 그런데 맨 앞에 앉아 있던 한울이가, 짝꿍에게만 들릴법한 아주 작은 목소리로 나지막이 무언가를 읊조렸다.
"결혼.."
귀 기울여 들어보니, 내가 원하던 대답이었다. 평소 책을 워낙 즐겨보는 아이인지라 놀랍지 않았다. 나는 한울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한울이가 이야기해 볼래?"
"아, 아니요!"
그런데 한울이가 손사래를 치며 거부하는 것이 아닌가. 발표를 좋아하는 아이라 당연히 자신 있게 말할 줄 알았는데 의외였다. 나는 다시 다른 아이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자, 생각해 볼게요. 만약 여러분이 왕건이라면 지방 호족들이 세력을 키우지 못하도록 어떤 방법을 썼을 것 같나요?"
스스로 왕건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 보자고 하자, 아이들이 하나둘씩 입을 열었다.
"집이나 돈 같은 재물을 많이 줘서 자신의 편으로 만들었을 것 같아요."
"나라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관직을 줬을 것 같아요."
상상력을 펼치는 아이들 사이로 대답을 피했던 한울이가 슬며시 손을 들었다. 이제 조금 전 생각했던 내용에 대해서 말하려는 듯했다.
"한울이, 이야기해 볼래?"
"그.. 병사들을 좀 나누어주었을 것 같고요, 각자의 지역을 잘 지키면 상을 주는 식으로 통제했을 것 같아요."
그런데 한울이는 또 다른 대답을 하는 것이 아닌가. 마치 자신은 처음 들어본 내용이라는 듯 장황하게 설명했다. 왜 답을 알고 있으면서도 말하지 않는 걸까. 한울이의 생각이 궁금했다. 6교시 수업이 끝난 뒤, 하교 시간을 틈타 청소하던 한울이에게 넌지시 물었다.
"한울아, 아까 사회시간에 선생님 질문에 대해 알고 있었던 것 같은데, 왜 발표하지 않았어?"
"아, 그거요. 알고 있긴 했는데.."
한울이는 빗자루를 땅에 내려놓더니 잠시 뜸을 들인 후 말했다.
"저는 한국사 검정시험공부 때문에 알고 있긴 했는데요, 뭔가 저만 자꾸 말하면.. 친구들이 자기는 모른다고 생각할까 봐요"
예상치 못했던 대답이었다. 그리고 한울이는 한마디를 덧붙였다.
"그리고 저는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니까 상관없지만, 친구들도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서요."
정답을 맞히는 것보다, 함께 공부하는 친구들의 마음을 먼저 헤아리는 것이 우선이었다는 뜻이었다. 이 열두 살 아이의 대답이 너무나도 사려 깊고, 성숙하게 느껴졌다.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내세우고 싶은 마음이 없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을까. 게다가 한창 인정받고 칭찬받고 싶어 하는 나이였다.
그제야 한울이가 습관적으로 덧붙이던 '정확하지 않아'와 '나도 틀릴 수 있어'의 의미가 이해됐다. 그것 또한 자신을 기꺼이 낮추는 마음이자, 친구의 마음을 한 번 더 헤아리는 넉넉한 시선의 일부였다. 그 다정한 겸손함과 사려 깊음이, 점점 가벼워지던 내 자아에 묵직한 돌을 달아주는 듯한 기분이었다.
별일 아니라는 듯 뒤돌아 다시 빗자루를 잡고 청소를 시작하던 한울이의 모습이,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난다.
이 마음은 단순히 교실 안에서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요즘도 가끔, 지인들과 한창 수다를 떨고 난 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왠지 모를 부끄러움이 느껴질 때가 있다.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을 남을 배려하지 않고 드러낸 것은 아닌지, 자랑을 위한 자랑은 아니었는지, 내 말로 다른 사람을 들러리 세운 건 아닌지 오늘도 다시 돌아보게 된다.
마티아스 뇔케의 책 <나를 소모하지 않는 현명한 태도에 관하여>에 이런 문장이 나온다.
'겸손은 허공이 아니라 현실에 발을 붙인 채 스스로 중심을 잡고 단단히 서 있으려는 노력이다'
어쩌면 열두 살 아이가 정답을 알아도 말하지 않는 이유는 현실에 단단히 서기 위한 부단한 노력이며, 동시에 다른 이와 함께 숨 쉴 수 있는 공간을 한 켠 내어주는 사려 깊은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었을까. 겸손과 사려 깊음은 결코 무력함을 의미하지 않는다. 눈치를 보자는 말도 아니다.
스스로 중심을 잡고 타인과 함께 공존하기 위한, 진정한 여유가 필요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