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선생님, 왜 박재우만 안 해요?

어른들이 잃어버린 질문들 : 이해

by 박단단

이 이야기는, 아주 오랜만에 교실에서 마주한 부끄러운 착각에 관한 기록이다. 나도 모르게 마음 한 구석에 오래도록 숨겨두었던 지레짐작과 편견에 대한 소회이기도 하다.


교직에 발을 들인 이후로 나는 한 번을 제외하고 줄곧 통합학급을 담임을 맡아왔다. 통합학급은 특수교육대상 학생이 또래와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며, 일부 교과를 함께 배우는 학급을 말한다. 내가 특수교육에 남다른 전문성을 갖고 있거나, 특별한 사명감을 품고 있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솔직히 말하면 우연히 맡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굳이 표현하자면, '종종 필수이기도 한 우연'이었다.


그 해 5학년 담임을 맡았을 때, 나는 재우를 만났다. 재우는 특수교육이 필요했지만 모든 수업을 원교실에서 듣는 완전통합 학생이었다. 국어와 수학을 포함한 전반적인 학습 수준이 또래보다 두세 해 정도 늦었고, 신체발달도 조금 더뎠다. 수업시간마다 미처 채우지 못한 교과서를 혼이 날까 봐 손으로 숨기듯이 가리고 있던 재우가 눈에 밟혔다. 도와주고 싶었지만, 현실은 냉정했다. 가정에서 특수학급을 신청하지 않는 이상 담임이 할 수 있는 일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같은 반 아이들도 재우가 조금 느린 아이라는 사실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였을까. 재우가 반에서 크게 소외되지 않고 지낼 수 있었던 건 아이들의 호의도 분명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모든 순간을 매끄럽게 지날 수 없었다. 한 번씩 필연적인 삐걱거림이 생겼다. 특히 짝활동이나 모둠활동처럼 함께 결과를 만들어내야 하는 시간이 그랬다. 빠릿빠릿하게 퀴즈 정답을 외쳐야 하거나, 정해진 시간 안에 모둠원이 협력해서 결과물을 만들어내야 할 때는 재우도, 다른 아이들도, 그리고 그것을 지켜보는 나도 곤란해지는 순간이 찾아오곤 했다.


"선생님, 왜 박재우만 아무것도 안 해요?"


아이들의 불만이 터져 나오는 것은 더 이상 공기를 채울 수 없을 만큼 커진 풍선이 펑하고 터지듯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다른 아이들도 고작 열두 살이었다. 어린아이들이라고 해서 잘하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게 아니다. 나는 재우를 조금 더 남겨 지도하고, 다른 아이들을 독려하며 어찌어찌 끌고 갔지만 불만은 계속 새어 나왔다. 가을이 지나고 있을 즈음, 나 역시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있었다. 통합학급의 본질이라고 믿었던 '다양성과 조화'를 끝내 포기해야 하는 걸까, 갈등이 됐다. 현실의 벽은 생각보다 높았고 함께 배우는 경험 자체에 대한 의문을 품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해야 한다고 믿어온 사명감이 자꾸만 미끄러졌다.


그래서 나는, 나만의 정답지를 만들기 시작했다. 앞으로도 재우는 어려울 것이고, 다른 아이들도 재우를 기다려줄 여력이 없을 것이라는, 아무에게도 묻지 않은 독단적인 해답이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그 생각이 얼마나 부끄러운 착각이었는지 알아차리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 계기는 아주 순간이었는데, 우리 반 아이들이 재우를 여전히 '5학년 2반 박재우' 그 자체고 있는 장면을 눈앞에서 마주했을 때였다.




두 가지 터닝포인트가 있었다.


첫 번째는 수학 시간에 있었던 일이다. 한 단원이 끝날 때마다 수학 놀이를 하는데 이번 주제는 분수의 곱셈이었다. 두 사람이 주사위를 던져 나온 숫자로 분수를 만들고, 곱한 값이 큰 사람이 이기는 간단한 규칙이었다. 하지만 '둘이 함께'라는 조건은 재우에게 부담이었다. 둘 중 한 명이 제대로 따라오지 못하면 진행 자체가 되지 않을 것이었다. 재우가 그나마 수학을 좋아하는 편이었지만, 해낼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섰다.


우리 반은 스물세 명. 짝을 이루고 나면 한 명이 남게 되어 있었다. 나는 아주 당연하게 재우의 짝을 선생님인 내가 맡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재우의 의사는 묻지도 않고 말이다. 나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그게 맞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마침 그날, 한 명이 결석했다. 아이들의 짝이 딱 맞아떨어졌다. 그렇다면 재우도 반드시 짝꿍과 이 놀이를 무사히 해내야 했다. 랜덤 뽑기로 정해진 재우의 짝은 민지였다. 교실 뒤편에 자리 잡은 재우와 민지는 놀이를 시작했다. 수학 뒤에 '놀이'가 붙었을 뿐인데 그렇게나 즐거운지 아이들은 왁자지껄 웃고 떠들며 주사위를 던졌다. 재우랑 민지도 하나씩 문제를 풀기 시작했다. 이십 분쯤 지나자 놀이를 마친 팀들이 우르르 앞으로 몰려나왔다.


"선생님, 제가 이겼어요! 한 판 더 해도 돼요?"


환한 표정으로 묻는 아이들 틈에 재우와 민지는 보이지 않았다. 수업종이 울릴 때까지 재우와 민지는 처음 자리에 그대로 앉아 바쁘게 손가락만 움직였다. 다른 아이들이 화장실을 다녀오는 사이에도 놀이는 끝나지 않았다.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재우와 민지도 이쯤에서 누군가 끝내주면 좋겠다고 생각할지 몰랐다.


"민지랑 재우, 지금까지 한 부분까지만 해서 점수 낼까? 누가 점수 더 높니?"


"아.. 지금까지는 저요."


민지가 조금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그러더니 곧바로 덧붙였다.


"선생님, 그런데요.. 재우가 문제 푸는 데 시간이 좀 걸려서요. 이제 두 문제 남았는데.. 끝까지 해봐도 돼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얼굴이 확 붉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문제라고 여겼던 것이, 사실은 문제가 아닐 수 있었다. 조금 느린 게 뭐가 그리 대수라고, 잘 흘러가던 놀이를 괜히 서둘러 끝내려 했는지. 조급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민지도, 재우도 아니었다. 민지는 재우가 천천히 풀든, 오래 고민하든 그저 있는 그대로 기다려주고 있었다.


"그래요. 계속하세요"


대답이 끝나자마자 민지는 주사위를 집어 재우에게 주었다.


"야, 재우야 너 차례야. 얼른 주사위 던져"


특별히 다정하거나 상냥한 모습은 아니었다. 그저, 친구의 차례가 끝날 때까지 담담하게 기다려주는 얼굴이었다.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재우의 몫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주는 민지의 표정. 나는, 재우의 기회를 빼앗을 뻔했다.





두 번째는 사회 시간에 있었던 일이다.


한국사를 배우던 때라, 소단원이 끝날 때마다 퀴즈로 복습을 하곤 했다. 그날의 퀴즈는 옆반 선생님이 "아이들이 무척 좋아한다"며 추천해 주신 자료였다. 단, 모둠별 협력이 필수라는 점이 한 가지 걱정이라면 걱정이었다.


규칙은 네 명이 한 모둠이 되어 각각 한 개의 힌트를 보고 그 힌트를 모아 답을 제출하는 방식이었다. 특히 네 개의 힌트가 화면에 동시에 나타났다가 단 1초 만에 순식간에 사라진다는 점이 나름 재미있고 흥미진진한 포인트였다. 자신이 맡은 부분의 힌트를 반드시 기억해 친구들에게 알려줘야만 정답에 가까워질 수 있었다.


몸풀기 삼아 연습 문제를 풀었다. 아이들은 1초 만에 사라지는 힌트를 외우기 위해 화면에 두 눈을 고정하고 숨도 쉬지 않는 기세로 집중했다. 그리고 힌트가 사라지는 순간, 모둠별로 힌트를 공유하며 열띤 토론이 시작됐다. 그런데 역시나 재우가 속한 모둠에서 짜증 섞인 원성이 들려왔다.


"야, 박재우 너 안 외웠어?"


"...."


재우는 난처한 상황에서 제대로 의사표현을 하지 못하는 아이였다. 승부욕이 강한 준서가 답답하다는 듯이 목소리를 높여 재우를 다그쳤다.


"아니 재우야, 네가 본 걸 우리한테 알려줘야지 답을 찾지!"


"재우야, 왼쪽 아래 있지. 거기 나오는 글자를 네가 보고 알려줘야 해"


옆에 앉아있던 예원이도 거들었다. 재우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다음 문제도, 그다음 문제도 힌트를 외워 말하지 못했다. 다른 모둠의 점수가 쑥쑥 올라가는 동안 재우네 모둠 아이들의 표정은 점점 굳어갔다. 재우 주변의 공기가 서서히 무거워지고 있었다. 어쩔 줄 몰라하는 재우 뒤로 조급함과 짜증이 쌓여갔다. 그 험악한 분위기가 조금씩 커져가는 걸 보면서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규칙을 바꿀 계획이었다. 이제부터 나오는 문제는 준서나 다른 친구들이 재우 몫까지 대신 봐도 된다고 바꿀 생각을 했다. 재우의 역할이 사라지더라도 어쩔 수 없었다. 그때, 준서의 목소리가 들렸다.


"야, 박재우. 너 쉬운 건 외울 수 있어? 숫자 같은 거나 두 글자짜리"


재우는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잠시 후 준서가 씩씩대며 내 앞으로 다가왔다.


"선생님, 재우가 이거 외우는 거 어려워하는데요. 혹시... 외우기 쉬운 힌트 위치 미리 알려주실 수 있어요?"


"어?"


"재우가 쉬운 거 외워서 저희한테 알려주면 될 것 같아요"


준서는 재우가 할 수 있는 역할을 스스로 찾아온 것이었다. 그리고, 한 마디 덧붙였다.


"재우도 할 수 있대요. 저희 모둠만 그렇게 해도 되나요?"


재우의 역할을 다른 아이들에게 넘기려고 했던 내 판단이 오만하게 느껴진 건 바로 그 순간이었다. 아이들은 재우가 할 수 있는 일을 알고 있었고, 그 영역만큼은 감히 대신하지 않으려 했다. 재우를 불쌍하게 여기 지도, 특별 대우를 하려 하지도 않았다. 그저 재우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주는 것. 아이들에게는 그런 마음이 살아있었다.




'선생님, 왜 박재우만 안 해요?'


돌이켜보면 이 질문을 해석할 때도 나는 철저히 어른의 입장이었다. 아이들이 말하는 '왜 박재우만 안 해요'는 재우가 하지 않는 것을 탓하는 게 아니라 '박재우도 할 수 있는데, 왜 기회를 주지 않아요?'에 가까웠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교실을 넘어 나의 삶을 돌아보게 된다. 조급함에 쫓겨 다른 이의 기회를 빼앗은 적은 없었는지, 내 몸이 조금 더 편하고자 억지스러운 합리화를 한 적은 없는지, 있는 그대로를 존중하지 못한 적은 없었는지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다른 이를 있는 그 자체로 바라봐주는 시선.

기꺼이 받아들이되 선을 넘지 않는 마음. 아이들에게서 또 하나 배운다.

keyword
이전 06화친구들도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