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복치와 잉어킹
며칠 전, 조각가의 작업실에서 사람을 구한다는 공고를 봤다.
잉어모양 조명등 제작을 도와줄 바느질이 능숙한 사람을 찾는다고.
스케줄을 보니 일정이 얼추 괜찮을 것 같아서 지원을 했다.
친구랑 카톡을 주고 받다가
주말에 잉어 조명등 만드는데 삯바느질을 간다고 했더니
친구가 잉어킹 만들러 가냐고 농담을 했었는데
약속한 날짜에 작업실에 도착해보니 일단 작가님이 유명하신 분이라 놀라고
진짜 만들고 있는 잉어등이 잉어킹이어서 놀랐다.
청계천 빛초롱 축제에 전시될 잉어킹 조형물을 만드는 작업이었는데
작가님이 철제로 뼈대를 만들고 꼬리와 지느러미가 움직일 수 있도록
내부에 기괄장치와 조명이 설치되어 있었다.
그 입체적인 뼈대에 딱 맞도록 신축성 있는 원단으로
손바느질을 해서 캐릭터의 외형을 입히는 것이 해야 할 임무!
단순히 바느질땀이 일정하고 곱게 꿰맬 수 있는 능력이 아니라
오차가 있는 입체물에 딱 맞게 패턴을 변형해 가면서 꿰매야 해서
꽤나 쉽지 않은 일이었는데 나는 중간에 업무가 바뀌었다.
바느질이 끝난 조형물등의 외관에
캐릭터의 외곽선이나 무늬선들을 직접 그려넣는 작업이었는데
이 또한 신축성이 있으며 매끄럽지 않은 재질의 원단에 틀리지 않고
무늬를 그려넣는 일도 만만치 않은 작업이었다.
전시날까지 시간이 촉박해서 작업 마지막 날은 아침 7시부터 밤 11시 반까지
점심 시간을 제외하고 쉼없이 달렸더니 작업은 마쳤으나 집에 도착하자마자
코피가 주르륵 흐르더라는 웃픈 사연도 생겼다.
그리고 잉어킹들은 현재 청계천에서 나름 큰 화제가 되어 전시중!
잉어킹은 포켓몬 중에서 최약체이며
기술이라고는 의미없이 튀어오르는 것 뿐이다.
생김새도 둔해보이는 몸통에 커다란 지느러미가 달려 있는 모양새인데
등과 배 지느러미가 왕관같은 모양이라 이름에 킹이 붙었다는 설정이다.
눈동자는 커다랗고 하얀 안구가 민망할 만큼 조그마한 점처럼 찍혀있어서
도통 영혼이 없어 보인다.
정말이지 약해빠진데다 쓸모없는 몬스터인 잉어킹이지만
레벨업을 차근차근 하다보면 진화를 하게 되는데 무려 용, 갸라도스로 변신하게 된다.
잉어킹 작업을 하면서 예전에 개인적으로 스토리를 만들고 작업했던
나의 3점짜리 연작 개복치 시리즈가 생각났다.
개복치는 어이없을 정도로 사소한 스트레스로 죽는다고 알려져있다.
그러나 성체까지 성장하면 압도적인 무게와 크기만으로도
자연계에 실질적으로 천적이 없을 정도로 강한 개체가 된다고 한다.
사람이든 물건이든 약해져 있을 때는
사소한 충격에도 상처받거나 손상되고, 죽거나 망가질 수 있으니
이런저런 사정으로 개복치처럼 쪼그라든 상황에는
돌봐주고 도와주진 않더라도 그냥 내버려둬 주는 것만으로도
큰 배려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날의 작업이었다.
세상의 개복치와 잉어킹들이 오늘 하루도 잘 버텼으면 좋겠다.
다 자란 개복치가 될 때까지, 갸라도스가 되는 날까지.
세상의 약한 것들아, 힘내자!